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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폐지 진짜 이유는?

리첫 2009. 10. 27. 15:38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의 외고 폐지 법안이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외고 폐지라고 하기에는 좀 민망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외고에 대한 대대적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온 국민이 다 아는 것처럼 얼마 전까지 한나라당뿐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 역시 외고를 비롯한 특수목적고에 대해서 적대적인 감정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지난 참여정부에서 외고의 특성화고 전환을 주장했을 때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던 것이 그들이다.

 

어쨌든 그들은 외고가 사교육비 증가의 주범이라고 하면서, 더 나아가 악마라고 하면서까지 외고 폐지(정확하게는 외고 폐지가 아니라 특성화고 전환이다)를 외치고 있다.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외고가 지난 참여정부에서는 사교육비를 유발하지 않았는데 MB정부 들어 갑자기 사교육비를 유발하기 시작한 것도 아니다. 외고가 사교육비의 주범 중의 하나라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인데 그들은 지금까지 이를 모른 척 했다.

 

분명히 외고는 사교육비의 중요한 유발 요인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두언 의원을 필두로 한 한나라당의 외고에 대한 인식 변화는 그 자체로 칭찬해 줄만한 일임에 틀림없다.

 

정두언 의원은 대표적인 친이계 의원임을 고려할 때 정의원의 외고 폐지 발언은 청와대의 의중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청와대가 형식적으로라도 친서민 정책을 말하고 교육 분야에서의 사교육비 경감을 주된 내용으로 거론하는 것으로 미루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교육계에서 거의 같은 목소리를 내던 이들이 외고 폐지 논란에 대해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 이 문제의 실무 부서인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안병만), 그리고 외고 교장들이다.

 

외고 폐지 논란과 관련하여 제일 이상한 것은 교과부의 움직임이다. 왜 정작 실무 부서인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안병만)는 미적대고 있을까? 더 솔직히 말하자면 '연말까지 안을 내겠다'는 것은 시간 끌기 술책이고, 외고 존속이 교과부 장관의 솔직한 심정으로 보인다.

 

반면, 외고 폐지 반대에 가장 열성적인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외고 교장들로 보인다. 사실 내용을 들여다 보면 외고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외고라는 이름도 그대로이고, 등록금이나 교유과정 등 귀족학교의 특권도 거의 그대로 주는 자율형사립고로 전환시켜 주겠다는데도 외고 교장들은 핏대를 올리고 있다. 그들은 외고 폐지 움직임에 대하여 한편으로는 억울하다고 하면서 왜 "모든 수단을 다해서 막겠다"라고 결사항전(?) 태세를 보이고 있을까?

 

안병만 교과부장관 자신이 용인외고 설립 당사자

 

알려진 바처럼 안 장관은 용인외대 교수와 부총장을 거쳐 2차례나 총장을 지냈고 한국대학총장협의회 회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런데 외고와 관련하여 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불편한 진실이 하나 있다.

 

바로 그가 외대 총장으로 있던 시기에 용인시의 지원을 받아서 세운 학교가 바로 용인외고이다. 용인외고로 알려진 그 학교가 바로 정식 명칭이 한국외국어대학부속외국어고등학교(이하 한국외대부속외고)이며, 이 학교는 용인시와 외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개교한 지 불과 4~5년 사이에 (그들 표현대로 하자면) 전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신흥명문외고로 자리를 잡았다.

 

외대부속외고가 서울의 극소수 외고를 제외하고 나면 대학 입시 성적에 있어 거의 전국 최고 수준임을 부정할 수 없다. 안 장관은 한국외대부속외고의 설립과 성장을 자신의 최대 업적 중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다. 사실 김도연 전 장관이 물러날 때 교육계 내외를 막론하고 그를 교과부 장관으로 예상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어쩌면 이런 배경이 그를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교과부 장관의 자리에 오르는 큰 밑거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자신의 과거를 망각하고 안 장관 자신이 청와대나 한나라당의 장단에 맞추어 외고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다면 그것 또한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심각한 자기부정이다. 어제까지는 자신의 최고 치적이, 하루 아침에 사라져야 하는 악마로 전락한 것에 대해서 심각한 갈등을 느끼고 있음에 틀림없다.

 

안 그래도 교육계에서는 장관인 그가 아니라 차관인 이주호 제1차관을 교과부의 실세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한나라당과 청와대의 외고 폐지에 동조하고 나서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반대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교과부가 연말까지 안을 낼 테니 기다려 달라"는 타협책으로 보인다.

 

그는 남은 시간 동안 소신대로 청와대 설득에 나설지, 아니면 임기 연장을 위하여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한나라당의 외고 폐지 주장에 합류할 것인지를 고민할 것이다. 이것이 그가 청와대의 한나라당을 앞세운 외고 폐지 떠보기에 미적대는 진짜 이유일 것이다.

 

외고 교장들이 자율형사립고 전환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영세사학이라서?

 

외고 교장들이 자율형사립고 전환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율형사립고로 전환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 중의 하나가 지금의 외고를 운영하는 사학재단이 재정적으로 결코 건전사학이 아니라는 점이다.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 국정감사 자료(원자료 민주당 안민석 의원,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에 의하면 중학교 성적 상위자를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선발하여 가는 특혜를 받고 있는 외국어고의 재정자립도는 충격 그 자체였다.(재정자립도=법인 기여도 : 전체 학교 예산에서 법인전입금이 차지하는 비율)

 

  
▲ 외고들의 재정자립도와 자율형사립고 기준 충족 여부 서울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대원외고, 명덕외고, 서울외고 등은 재단전입금이 0원인 것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재정자립도가 0.7%밖에 안 된다. 자율형사립고 전환 최소 기준인 납입금 대비 재단전입금 비율이 5%를 넘는 학교는 한 학교밖에 없다. 외고의 자율형사립고 전환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이것이 외고 교장들이 자사고 전환을 극구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아닐까?
ⓒ 김행수
외국어고

2008년 전국 18개의 사립 외고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0.7%밖에 되지 않았다. 서울의 대표적인 외고, 입시율을 자랑하는 대원외고, 명덕외고, 서울외고는 재단전입금이 아예 0원이다. 즉 학교운영비의 거의 대부분인 99.3%를 학생들의 등록금과 정부 지원, 이월적립금 등으로 충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 우스운 것은 이들 중 자율형사립고 지정을 위한 최소 조건인 납입금 대비 재단전입금 비율이 5%를 넘는 학교는 서울의 이화여자외고 단 하나밖에 없다는 점이다. 외고 전체의 납입금 대비 재단전입금 비율은 1.6%밖에 안 되었다.

 

2007년도 사정이 비슷하여 평균 재정자립도는 1.4%, 납입금 대비 재단전입금 비율은 평균 3.0%였다. 그리고 자율형사립고 지정 최소 기준인 5%를 충족시키는 학교는 이화여자외고와 한국외대부속외고 단 2개 학교밖에 없었다. 이것이 대한민국 사립 외고를 운영하는 사학재단의 현주소이다.

 

즉, 현재의 18개 사립외고 중에서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할 수 있는 최소 자격을 갖춘 학교가 많아야 2개, 적으면 1개밖에 안 된다는 의미이다. 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한두 개의 극소수 외고를 제외하면 전국의 모든 외고들이 자율형사립고 전환은 꿈도 못 꾸고 모두 일반고로 전환해야 하는 처지라는 의미이다.

 

충격 그 자체이다. 중학교 성적 상위자를 싹쓸이 하듯 뽑아가서, 일반 학교 예산의 2배로 운영하고, 사교육비도 훨씬 많이 쓰고 있는 외국어고가 사실은 알고 보니 학생들만 부자이고 학교를 운영하는 사학재단은 부실 사학 그 자체였던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남의 돈으로 장사"한 셈이고,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다. 이렇게 특혜를 누리던 외고들이 막상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하라고 하니까 "우리가 공헌한 것이 얼마나 많은데 폐지냐?"면서 목에 핏대를 올리면서 반대한다. 알고 보니 부실 사학들이 말이다.

 

응시 자격을 제한(서울은 50%, 지방 일부는 30% 등)하고 등록금이 일반고의 3배 이상이라는 점에서 외고의 특권적, 독점적 지위는 자율형사립고로 전환된다고 하더라도 당장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외고들의 입장에서는 스스로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하고 싶어도 할 수도 없는 '그림의 떡'이고, 이런 자신들의 실상이 국민 앞에 드러나는 것이 너무 싫은 것이다.

 

7차교육과정이 2, 3학년 과정은 선택중심 교육과정이기 때문에 일반고에서도 교육과정을 외국어 집중과정으로 운영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런데 굳이 지금의 외고로 운영하고자 하는 이유는 교육과정의 자율성이 아니라 신입생 선발의 문제이고, 등록금의 문제라는 점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이것이 외고 교장들이 외고 폐지와 자율형사립고 전환에 극구 반대하고 나서는 진짜 이유는 아닐까?

 

조중동의 외고 폐지 반대는 특목고 입시를 통한 돈벌이 때문?

 

사실 조중동은 외고 문제에 있어 지난 정부에서는 계속적인 확대를 주장했고, 지금은 폐지 반대를 외치는 점에서 일관성이 있다. 그러나 단순히 그들이 교육의 수월성, 아니 그들이 글로벌인재 양성에 기여했다는 긍정성 때문에 외고 폐지를 반대한다고 생각하는 순진한 국민은 없어 보인다.

 

26일자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에서 조중동 보수신문이 모두 자회사 또는 신문 섹션을 통하여 특목고 대비 강좌를 하고 있거나 이런 과정들을 홍보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기사에 의하면, 조선일보는 자회사인 '맛있는 공부'와 (주)조선일보교육미디어 등을 통하여, 동아일보는 동아일보교육법인 '동아이지에듀'와 디유넷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교육포털사이트 '이지스터디'를 통해, 중앙일보는 자사 홈페이지에 특목고 특강과 외고대비 파이널 등의 유료 온라인 강좌를 서비스하고 있다.

 

프레시안은 기사에서 "세 신문사가 일제히 자회사 또는 홈페이지를 통해 직접 교육 사업에 뛰어든 것은 '사교육 시장'을 통해 이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한다"라고 밝혀 조중동이 외고 폐지를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돈벌이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결론적으로 외고 폐지의 주무부서인 교과부의 장관이 외고 폐지 문제에 시큰둥한 것은 그 자신이 외고를 설립하고 성장시킨 것을 최대의 치적으로 생각하는 개인적 처지 때문이고, 외고 교장들은 부실한 재정 때문에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하고 싶어도 기준 미달인 현실적 처지 때문이고, 마지막으로 조중동 보수언론이 외고 폐지를 반대하고 나서는 것도 알고 보면 자회사와 섹션 등을 통한 돈벌이 때문이라는 의혹을 떨칠 수가 없다.

 

모두 자신들이 처해 있는 개인적 위치에서 외고 폐지 문제를 바라보고 있으니 이래서야 백년지대계가 바로 설 수 있겠는가? 그들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