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영어란 실체없는 헛것
한국 사회에서 영어는 어떤 존재인가? 한국 사회에서 영어란 바로 존재하지 않는 헛것이고, 외계어이다. 그리고 토익은 영어가 아니다. 사이비 종교이다. 이미 굳건히 자리잡은 영어에 대한 편견은 너무나 견고해서, 무슨 말을 해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영어가 왜 스트레스가 되었나? 한국 사회를 보면 영어와 전쟁하는 피난민촌에 와 있는 것 같다. 한국이 영어와 전쟁을 했다면, 아마도 한국은 영어에 나가떨어진 것 같다. 그런데 그 영어는 진짜 영어가 아니고 헛 영어이고, 억지 영어이다. 진짜 영어는 아직 안타깝게도 한국에 상륙하지 않았다.
엉터리 영어와 억지 영어가 결합하면? 무엇이 나올까?
영어 자체가 스트레스인데, 그 이상의 스트레스를 더 선사한다. 남는 건 스트레스뿐이다. 중학교 이후로 배운 아무 짝에 쓸모없는 엉터리 헛 영어. 거기다 졸업과 취업과 진급에 필요한 억지 시험 영어. 이 둘의 환상적인 결합. 기대하시라.
중고등학교의 영어 시간은 영어 울렁증을 만드는 시간이다. 또한 진짜 영어는 없고, 머리에 헛 영어를 주입하고, 엉터리 영어에 적응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른이 되면 그 다음에는 토익이 들이댄다. 토익을 공부하는 시간은 무엇인가? 바로 억지 영어를 하는 시간이다. 중고등학교의 헛 영어와 성인이 된 이후의 억지 영어, 이 두 가지 공격이 들이댄다.
대부분 20대 후반 이상의 사람에게는 중학교부터 영어를 배웠을 것이고, 그러므로, 중학교때부터 엉터리 영어의 공격을 받았고, 성인이 된 이후로 억지 영어의 공격을 받는다. 그 결과 북한의 미사일보다 영어가 더 무섭고, 북한의 핵무기보다 영어가 더 싫다.
졸업하려면 영어 시험 통과해야 하고, 취직, 진급하려면 또 계속 영어 시험 점수를 따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영어에 미쳐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영어에 울렁증을 가지고 있다.
영어가 왜 스트레스가 되었나?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영어는 뭣인가?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현재 대한민국 기성세대의 사고를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 대기업의 회장 이하 차장 이상 고위 직급 가진 사람들의 머리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첫째, 이 분들의 머리 속에는, 영어 시험 점수가 좋으면 엘리트 인재라고 생각을 한다. 왜냐, 간단하다. 자신들이 청년 엘리트이던 시절의 형성된 사고방식이 그렇기 때문이다.
둘째, 닫힌 사회에서 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청춘을 바친 시기는 냉전 시기이다. 섬나라 아닌 섬나라이지 않았던가. 1930년대에 만주로 수학여행을 가던 것이나, 삼양사가 만주 진출을 했던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삼면이 바다에다가 북쪽은 북괴라 갈 수가 없고, 서쪽 바다 건너는 중공이고, 사방이 막혀, 마치 지구 밖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나라가 바로 이 나라였다. 외국이라는 것은 외계와 동일어에 가까웠다. 당연히 외국과 의사소통하는 영어도 외계어에 가까운 것이 어찌보면 이들에게는 자연스럽다. 그러므로 영어는 이 지구의 언어가 아닌 욕이 되었다.
지식을 받아들이는 곳은 단지 일본뿐이었다. 그러므로 당연히 영어를 배우는 방법은 일본식 교수법에 의존했다. 일본 특유의 섬세함으로 문법을 세심하게 파고 드는 것은 애당초 통큰 한국인에게 맞지 않는 것이었다. V를 "브이"라고 하는 것도 일본식이다. 외계와 차단된 나라, 오직 일본에게만 외부 문명 수입의 경로가 열린 나라. 한국인이 인식하는 세계이다. 중공을 갈 수가 있나 사할린을 갈 수가 있나.
그밖의 세계로는 대만, 필리핀, 그리고 홍콩이 있으나 다소 제한된 영향을 미쳤다.
"너는 영어 잘 하는데 왜 영문과를 안 갔냐?"
이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자신들이 대학을 다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70년대 또는 80년대의 사고방식이 그대로이다. 영어를 잘한다고 하면 그것을 곧 고학력자의 척도로 보던 시절. 하지만 영어로 제대로 말을 하거나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던 시절. 영문과라고 하면 그럴 듯한 전공으로 보이던 시절.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면, 나보고 "너는 영어 잘 하는데 왜 영문과를 안갔냐?"라는 황당한 질문을 아직도 종종 받을 때 실감한다. 영어와 영문학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저 영문학이면 영어를 하는 것이니 뭔가 그럴 듯해 보이던 때의 사고방식이다.
영어와 영문학을 동일시하고, 그 이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영어가 뭔지 아무런 개념이 없다. 그저 영어는 영문학과 비슷한 거겠지라고 생각할 뿐, 실제 의사소통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존재하지 않는 헛것이다. 한국의 영어 열풍은 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향한 근거없는 열풍이다. 알맹이 없는 유행이다. 다시 말해, 한국 사회에서 영어라고 할 때 그것은 영어가 아닌 것이다.
영어는 외계어인가?
대부분 사람들을 보라. 이미 중고등학교에서 최소한 6년 동안 영어로 전혀 말하기, 듣기를 해본 적이 없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괴상한 영어 교육을 받은 경력을 가지고 있다. 영어를 배우면서 영어로 말하지 않는 이상한 세계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외계에서나 있을 법한 상식밖의 영어 교육이며, 스스로 외계인이 되어 지구에서 쓰이는 영어를 가르치고 배우지 않는 것이며, 또는 영어를 외계어쯤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지구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굉장히 안드로메다적인 사고방식이다.
그 결과 대부분 사람들이 영어를 배울 때, 특히 영어로 말하고 듣는 것을 처음 배울 때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아, 왠지 외계의 언어처럼 낯설다"라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보통이며, "아, 이것도 실제로 사람이 쓰는 말이구나"라며 신기해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저녁 잘 먹었어요"라는 뜻으로 영어로 "Thank you for dinner"라고 한다 라고 말해주면, 대단히 신기하다는 듯, "아, 저녁 잘 먹었어요를 영어로 Thank you for dinner라고 한대"라고 놀라는 반응을 보인다. 마치 굉장히 낯선 것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마치 안드로메다의 언어를 접하는 것 같은 반응과 똑같다. 누가 가르친 것도 아닌데 "영어 신기해하기" 풍토는 겉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으며, "영어 외계어화"는 치유 불가능할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왜 영어가 이렇게 신기한 것이 되었는가.
이것이 대체적인 이 나라 사람들의 영어에 관한 생각이다. 아직 글로벌 시대가 아니던 시절. 실제로 적극적으로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지 않던 시절. 그저 막연히 영어 잘 한다면 지식인의 척도로 보던 시절. 그 한창 산업화하던 시절의 사고방식이다.
오로지 점수를 위해 영어를 공부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
그런데 그 부작용인지 오로지 점수를 위해 영어를 공부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를 만들어 놓았다. 영어로 대부분 고학력자들이 스트레스 받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 영어는 곧 점수가 되었다. 의사소통이 아니다. 이 외계어는 시험 점수로써만 존재한다.
한국 사회는 시험 점수를 너무 좋아한다. 시험과 실제는 별로 관계가 없다. 쓰지도 않는 영어를 왜 진급 시험에 요구하나. 대부분 영어 수험생들이 실제로 쓰지 않을 헛 영어를 뭐하러 배우는 것이며, 영국 사람, 캐나다 사람 만나 통하지 않는 영어를 왜 배우는 것이며, 영국 신문 하루치 읽는데 한 달이 걸리는 그런 영어를 왜 배우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영어 지옥이 된 한국 사회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받아야 한다.
정답 : 한국은 남태평양의 외딴섬 같은 곳이다
세상 거의 모든 곳에서의 아는 영어와 이 외딴 이상한 섬에서의 아는 영어는 완전히 다르다. 세상에서 쓰는 영어는 언어 의사소통 수단으로 쓰는 것이고, 이 외딴섬에서 통용되고 인식되는 영어라는 것은, 이 외딴 섬에서만 이상하게 생각하는, 그 실체가 없는,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elusive),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헛것이다. 그 헛것을 영어라고 생각한다.
대체로 한국 사람들이 영어라고 할 때 그것은 외계어와 비슷한 개념을 가진다. 실용적인 개념이 아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이 세상에서 쓰는 말이 아니고, 안드로메다에서나 쓸까 말까한 머나먼 알 수 없는 세계에서 쓰는 말이므로, 그 실체를 알 수 있는 대상으로 머리 속에 다가오지 않는다.
영어로 말을 하면 "욕하지 마"라고 대답을 하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 이 나라가 유일하다. 영어로 alienate(소외시키다)라는 말이 있는데, 글자 그대로 보면 "외계의 것으로 만들다"라는 말이다. 이 나라는 영어를 외계의 것으로 만들었다. 영어가 외계에 있는 것인가, 한국이 아는 영어가 외계에 있는 것인가?
세계와 소통하는 번역가들은 3류 폐인으로 비참하게 살고 있다
소설을 영어로 번역을 못해서 노벨문학상을 못타는 나라. 매우 당연하다. 영어는 외계어이므로 당연히 할 필요가 없다. 1류 번역가 100명만 있어도 될 것을 가지고 말이다. 거꾸로 영어를 한국말로 제대로 번역한 것도 보기가 힘들다. 번역본은 읽기가 참 괴롭다. 그러나 이제, 못할 거 같던 피겨스케이팅 세계 1등도 했으니, 이제는 못할 거 같은 세계 1류 번역가 100명 양성을 하면 어떻겠는가.
출판물의 3분의 2가 번역물인데, 이것을 번역하는 사람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다. 이것은 질 낮은 번역으로 이어지고, 한국과 세계의 의사소통을 가로막고 있다. 상식 이하의 형편없이 낮은 보수로 인해 대부분의 번역가들은 3류 폐인으로 비참하게 살고 있다.
결론 : 한국 사회에서 영어란 실체가 없는 헛것이다
코끼리 다리도 짚어보지 못했는데 모두가 코끼리 이야기를 떠드는 것과 똑같다. 모두가 영어를 떠들지만, 모두 헛것을 떠들고 있다. 바로 이 헛다리 짚기에서 비롯된 헛 영어 시험 광신은 옴 진리교와 비슷한 사이비 종교로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어야 하며, 세계 최고의 토익 열풍은 인류 최고의 비웃음거리이다. 그 열풍은 실체가 없다. 사이비 종교의 결말이 어떻게 되었던가? 이 헛 영어가 이 나라에 이렇게 커다란 비극을 불러올 줄은 누가 알았는가?
교육과 기업은 무엇을 하는가? 영어 배우기가 힘들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 있어도,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다" 라고 말하는 나라는 이 세상에 한국밖에 없다. 이 스트레스는 누가 만들어낸 것이며, 누가 누구에게 이 스트레스를 주는가? 아마도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이 영어 스트레스를 주고 받는 듯하다.
확실한 것은 있지도 않는 헛 영어를 학교에서 가르치며, 실제 사용과 상관 없는 헛 점수를 요구하는 기업들, 이 둘이 그 주도세력인 것만은 확실하다.
교육과 기업은 하나로 연결된 것인데, 인재가 배우고 일하는 환경이 이렇다면, 총체적인 영어 스트레스 주기 시스템이 확립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과 기업이 영어 지옥을 만드는 일에 똘똘 뭉쳤다.
"어떻게 하면 외계어를 잘 할 수 있어요?"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 할 수 있어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솔직히 아무 말도 해줄 말이 없다. 이것은 머리 속에 실체가 없거나 실체를 알 수 없는 것을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느냐고 묻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떻게 하면 외계어를 잘 할 수 있어요?"라고 질문하는 것과 똑같이 들리기 때문이다. 당연히 할 말이 없다.
이미 굳건히 자리잡은 영어에 대한 편견, 이것을 어떻게 바로잡을지 대책이 안선다. 그것은 너무나 견고해서, 무슨 말을 해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기업은 왜 존재하는가? 그 문화적인 이유는? 도대체가, 기업에 취직하여 열심히 일하여 수익을 창출할 사람들이 왜 여기서 점수 올리는 요령을 배우고 있는 것인가? 과연 그것이 기업이 맞는가? 의심스럽다. 인재가 이런 헛 일에 썩고 있는 것이 장래 고용주에게 도움이 되는가? 이것이 근면한 것이고, 성실한 것인가?
수익을 창출할 기업이 왜 예비 사원들에게 수익 창출과 아무 관련 없는 이런 것을 하라고 하지? 내가 보기엔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기업은 이익 창출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왜 기업이 결국 시험 점수 요령을 배우느라 시간과 인생에 한 번밖에 오지 않는 젊음과 청춘과 패기를 낭비하도록 강요하는가? 우리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토익 학원에서 최소 3년간 썩으면서 시험 점수 올리는 요령 나부랑이나 배우는 것이 사내 규칙의 의무 사항이다 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인간적으로 할 짓이 아니다. 이것은 널리 인간을 해롭게 하는 것이다. 단군 할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토익은 영어인가, 사이비 종교인가?
여기에는 경영적인 이유가 아닌 문화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시험 통과하면 훌륭한 인재이구나 라고 생각하는 과거의 사고 방식이 현재에 전혀 맞지 않다는 것, 아웃데이팃(outdated, 시대에 뒤진) 하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다. 또한 시험 점수에 시간을 낭비하도록 암묵적으로 강요한다면 그것은 상대방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고,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고 인재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입사 지원자에게 토익 950점 이상을 요구한다. 그러면, 취업하려는 젊은이는 목숨 걸고 토익 950점 이상을 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험을 공부하는 것이지 영어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거의 모든 사람은 토익 공부를 영어 공부라고 착각을 한다. 그렇다. 바로 헛 영어 미신이다. 죽기 전에 그 착각을 깼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험 점수와 실력은 별 관계가 없다.
영어는 현대 한국에서 사실상 하나의 사이비 종교가 되었다. 입사희망자는 그 점수라는 헛것을 쟁취하기 위해 인생에 한 번밖에 없는 청춘의 3분의 2를 낭비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차마고도 한켠에다가 손수건을 하나 숨겨 놓고 거기 가서 그거 찾아오라고 하는 편이 훨씬 더 인생 경험과 기업의 수익을 내기 위한 패기 함양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영어 울렁증을 만드는 주범들은 바로 25층 창 밖으로 던져 버려야 한다
대부분 대졸 이상의 사람은 20대를 토익이라는 헛 영어로 낭비하도록 강요받는다. 그것은 아무 짝에 쓸모 없는 시험이다. 그것은 영어가 아니다. 그 헛것 영어로 고생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볼 때에... 그저 안타까운 마음만... 누가 영어를 사이비 종교로 만들었는가?
이것은 누가 강요하는가? 영어의 영 자도 모르는 헛 영어 시험 점수에 걸신 들린 무식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들이다. 영어는 그냥 실용적으로 필요할 때 쓰면 되지 인재 판별의 기준으로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토익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 토익이 망해야 헛 영어라는 미신도 없어지고 진짜 영어를 비로소 알게 된다. 교육과 영어에 관한 한 이 사회는 우주 역사상 가장 우스꽝스러운 사회이다.
이 정도의 인간 에너지 낭비를 일삼는 일을 도모하는 인간들 및 그 주범에게 어떤 벌을 내려야 할 것인가? 아무래도 그냥 무식이 죄인 것 같으니 의도적인 범죄라고 보기에는 어렵고, 무식이 죄라면 영어에 관련한 모든 결정 권한을 박탈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면 영어 울렁증을 만드는 주범들이 영어와 관련된 모든 일에서 손을 떼게 하는 것이다. 그냥 입다물고 가만히 있고, 영어의 영 자도 입 밖에 못 내도록 한다. 영어 교육 과정, 영어 시험, 진급때 영어 점수 기준 등등. 영어에 관해서 조금이라도 끼어드는 낌새가 보이면 바로 25층 창 밖으로 던져 버려야 한다. 발목에는 전자 발찌를 채워 영어에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곳이라면 반경 50km 이내에 접근 금지시켜야 한다.
그럼 나같이 토익을 가르치는 사람은 뭔가?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시험 보는 요령을 가르치는 것이다. 요령을 잘 못 가르치면 학원 학생들한테 푱~ 하고 튕겨나가버린다. 영어는 점수이고 점수는 요령인 것을 학생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것은 영어가 아니다. 진짜로 영어 하는 사람이 보았을 때 기절초풍할 만큼 이건 영어가 아니다. 영어 학원? 아니다. 요령 강습소이다. 토익 강사는 시험 점수 올리는 요령 나부랑이나 전수하는 얄팍한 저질 지식인이다.
그 걸 배우기 위해 돈내고 수업을 들으러 꾸역꾸역 학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젊은이들을 보면 여러모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대기업 인사 담당자가 뺏어가는 돈이다. 그것은 피같은 돈이다. 이것이 피를 빨아먹는 것이 아니고 뭔가?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은 이거보다 더 나은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스피킹 테스트는 도움이 될까?
요새 유행하는 토익의 그 스피킹 테스트라는 것도 나같이 비판적인 사고를 강조하는 영국에서 공부한 사람이 보면 까무라칠만한 단무지 같이 단순 무식한 미국식 사고방식을 듬뿍 담고 있는 시험 방식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사람을 단무지로 축소시킨다.
대부분 한국인들은 미국 사람들이 얼마나 가공할 만큼 단순무식하고 단편적인지 모른다.
니들은 우리 편 아니면 테러리스트편이다 라고 떠드는 조지 부시만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스피킹 시험은 그냥 둘 중에 하나 고른 다음에 난 이게 왜 더 좋은지 말하면 되는 단순무식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인간의 사고를 단편적으로 만드는 굉장히 위험한 단무지 시험이다. 예를 들면, 출퇴근할 때 대중교통과 자가용 중에 어느 것이 더 좋은가? 라는 문제가 나오면, 둘 중에 하나를 고른 다음, 그것이 더 좋은 이유를 짧게 이야기하면 된다. 그냥 그렇게 단순한 시험이다. 영국의 IELTS 시험의 말하기 시험에서 시험관과 둘이 거의 종합 토론을 하는 것과는 천지차이이다.
프랑스어 시험인 델프 시험처럼 자기 의견, 감상, 사고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시험 체계를 도입한다면 훨씬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대한민국 교육계의 핵심 인사들이 그런 것을 사고하고 평가할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텝스나 펠트 같은 시험을 만드는 수준으로 보아 말 다했다고 보면 된다.
텝스는 거론하고 싶지도 않다. 그건 영어 시험이 아니다. 콩글리시 시험이다. 이 시험에 나오는 문장을 보면 화가 난다. 영어라고 볼 수 없는 이상한 말들만 있다. 실제로 영국, 미국과 국제사회에서 쓰이는 영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한국에서만 쓰는 이상하고 어색한 엉터리 콩글리시 문장이 가득하다. 이 시험에 나오는 문장을 만든, 또는 어디서 베낀, 사람의 머리 속에 있는 영어에 관한 지식은, 어디서 한두 가지, 많아야 서너 가지 철지난 케케묵은 미국 책을 입수하여 가지고 본 것, 그것이 그 사람 인생을 통틀어 본 영어로 된 책의 전부이다. 미국 영화라도 가끔 보는지 의심스럽다.
이러한 남태평양의 외딴 섬에나 있을지 모르는 일이 세계 10대 무역국인 한국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으며, 예전에 국경이 봉쇄되어 아무나 해외여행 못하던 시절에나 있을 법한 것인데, 시험도 엉터리 영어이고, 그 시험을 공부하는 것도 점수 올리는 요령 위주로 하고, 여기에는 영어가 없다. 영어는 어디에 있는가? 안타깝게도 여기에는 영어가 없다.
그러니 무엇을 하더라도...
그러니 무엇을 하더라도 실력과 관계 없이 시험 요령 및 점수 위주로 하면 그게 사람을 원숭이 취급하는 것이지 어떻게 인간이 하는 것이라 볼 수 있겠는가?
게다가 한국 같이 인구 밀도 높은 도시화지역에 사는 곳에서 치러지는 극심한 경쟁이라면, 무엇을 하든 피터지는 경쟁이 따라온다. 땅넓고 사람 없는 나라로 이민을 가든가, 아니면 더 적극적인 인구 분산을 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일상, 둘째 업무
만약 기업에서 업무에 영어를 쓰기 위해 영어가 필요하다면, 가장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은 기업이 싱가폴에서 사람을 수입해서 업무 영어를 초고속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한사람 앞에 한 사람씩 친구 붙여주고 같이 업무도 하고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담배도 피고 음료수도 마시고 수다도 떨고 같이 24시간 놀게 하라.
싱가폴 사람들이 업무에 쓰는 영어는 단순화된 말이기도 하면서 국제적으로 통용되기도 한다. 단기 집중 과정(crash course)으로는 짱이다. 물론 템(temp, 임시직원) 같은 줄임말에 익숙해져야 한다.
영어를 업무에서 쓰는 순서는 첫째, 간단한 일상을 영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이것이 바탕이 된다. 둘째, 업무에 영어를 쓸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비교적 단순한 업무이고, 다른 하나는 조금 더 복잡한 섬세한 의사소통을 필요로 하는 업무인데, 비교적 단순한 업무라면 일상 영어가 바탕이 되면 이것의 연장선 상에서 단기 집중 교육만 조금 받아도 될 것이고, 복잡한 의사소통을 필요로 한다면 조금 더 섬세하게 구사하는 교육을 필요로 하는데, 이 정도 단계까지 필요한 사람은 실제로는 극소수이다.
이 정도를 분별하는 데에는 자판기 커피 마시며 단 3분 동안만 영어로 이야기를 나눠 보면 어느 레벨인지 바로 구별이 된다. 이걸 가지고 무슨 시험이 필요한지, 아마도 시험 신을 집 뒤의 산신각에 모시는 모양이다. 얼마 전 영주의 괴헌고택에 묵었을 때에도 산신각을 그냥 방으로 개조하여 쓰던데.
이미 닫힌 마음의 문을 열기란
그런데 무엇보다 이미 닫힌 마음의 문을 열기란 쉽지 않다. 이미 영어라면 낯을 가리는데 무엇이 소용이 있으리오.
난 영어가 싫은데, 대한민국에 살면서 왜 영어 해야 하나? 라고 한다면, 그렇다 바로 그거다. 영어 못해도 전혀 상관 없다. 영어 울렁증에 걸린 사람한테 또 영어를 들이대면 멀미만 가중시킬 뿐이다.
단지 필요한 거라면, 길 가르쳐 주는 것, "20분 뒤에 오시면 됩니다" 정도를 말하는 지극히 간단한 것으로, 간단한 일상 영어는 구구단 할 줄 아는 머리이면 누구나 할 수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물론 이 영어는 당신이 지금까지 알던 그 헛 영어가 아니라는 점, 진짜 영어라는 점, 다시 말해 새로 만나는 알고 보면 이렇게 쉬운 거라는 것을 새로이 알게 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