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사람만이 이런 능력을 키울 수 있어

리첫 2009. 10. 29. 20:01

한국 교육 ‘외고 문제’ 넘어서야 / 우종원
한겨레
» 우종원 일본 사이타마대 교수·경제학
외국어고 폐지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고교 교육이 정상화되어야 한다는 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폭발성이 강한 소재이니만큼 찬반양론이 들끓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우리보다 ‘정상화’된 일본의 교육 현실을 눈앞에 보고 있는 입장에서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왜 우리는 교육 하면 항상 학교와 외국어인가.
 

지난 월요일,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공개 강의가 있었다. 연장자가 많은 탓에 화제는 자연히 청년층에 관한 얘기로 좁혀졌다. 몇몇 탄식에 이어 한 사람이 최근 벌어진 일을 소개했다. 신입사원의 장래성을 본 모 과장이 키울 요량으로 말을 건넸다 한다. “며칠 뒤에 시간 좀 내주지.” 하지만 그 며칠이 지나기 전에 신입사원은 회사를 관두고 말았다. 꾸중 들을 것으로 지레짐작했다는 것이다. 이 얘기에 모두들 “요즘 젊은애들이란” 하고 실소했다.

 

하지만 난 정색을 했다. 그리고 물었다. “중고생 자녀와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대화 나누신 분 손들어 보세요.” 분위기가 숙연하게 변했다. 질문의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 중에서 노동시간이 제일 긴 반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가 일본이다. 그간 부모가 자식 교육을 팽개치고 학교에만 떠넘겨 온 대가가 그들의 사회성 부족으로 되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일본 사회는 아프게 깨닫고 있다.

 

이런 자각은 생존이 필요한 ‘열등생’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경쟁을 이끌어갈 ‘우등생’에 관해서도 생각이 바뀌고 있다. 지식 위주에서 종합력과 다양성 중시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일류 기업은 이미 ‘자격’이나 ‘스킬’을 따지지 않는다.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과 협력해 이를 해결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일본의 선구적인 지자체에서도 비영리법인 등에서 경험을 쌓은 다양한 인재를 복지 분야 등에 등용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결국 엘리트에게도 평범한 사람에게도 다양성 속에서 함께 성장을 추구하는 능력이 제일 중요하다는 진리가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능력이 어떻게 육성되는가다. 교실이 이를 제공해 주지는 않는다. ‘사람’만이 이를 제공한다. 따라서 진정 교육이 백년대계라면 우리도 아이들이 가족, 친구, 선생, 이웃 속에서 부대끼며 크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 세 가지만 실천하자.

 

하나, 대학에 적은 수의 학생과 교수가 함께 토론하는 연구수업을 널리 보급시키자. 예를 들어 현재 내 수업에서는 2학년 7명, 3학년 11명이 조를 짜 ‘대학생과 기업 간의 미스매치’를 주제로 토론과 설문조사 및 인터뷰조사를 병행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한 성장이, 영어는 서툴지만 제 몫은 해내는 일본인을 만든다. 교육에 있어 일본이 우리보다 유일하게 앞서 있는 이 방식을 배울 필요가 있다.

 

둘, 기업도 교육에 기여하자. 먼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상을 분명히 발신하자. 내가 만나본 바에 따르면 우리 기업도 사실은 문제해결력을 가장 원하고 있다. 그럼에도 단지 선별을 위해 실제로는 그다지 쓰이지도 않는 외국어 점수를 계속 이용한다면 이는 교육을 왜곡시킬 따름이다. 다음으로 일주일에 한 번은 잔업 없는 날로 정해 아이들에게 부모를 돌려주자.

 

셋, 지역이 활약하도록 하자. 난 조그마한 도시에서 자랐는데 당시 시립도서관의 젊은 사서들이 자원봉사자로 독서회를 만들어 운영했다. 중1에서 고3까지 다양한 멤버가 주말이면 함께 모여 책을 보고 감상문을 쓰며 토론했다. 이 경험이 현재의 나를 있게 했다. 30년 전 내가 누린 교육환경이 지금 일본에서 교육받고 있는 내 아이의 그것보다 낫다는 것이 우리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학원이 아니라 지역이 논술을 가르치게 하자.

 

우종원 일본 사이타마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