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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잘하기를 포기한 교사

리첫 2009. 11. 5. 13:12
작년에 나는 '선도학급' 교사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수업을 연구해서 더 좋은 수업으로 학교교육을 '선도해나가는' 일을 맡은 교사였다. 그래서 주제에 따라 수업연구도 하고 계획서나 보고서도 쓰고 다른 학교 선생님들과 교육청 장학사들까지 참관하는 수업 공개도 몇 차례 해야 했었다.

 

나는 선도학급을 희망해서 맡았다. 수업 잘하는 교사가 되고 싶기도 했고, 선도학급을 맡으면 받게 되는 지원비도 좋았다. 그 지원비로 나는 탐나던 교구들을 사서 수업에 쓸 수 있었고, 학생 전원을 위한 작은 칠판도 사서 수업 중에 골든벨 퀴즈도 많이 할 수 있었다.

 

기왕이면 '유능한 교사'가 되고 싶었다

 

  
▲ 식빵으로 하는 과학실험 지층이 미는 힘에 의해 휘어지는 '습곡' 실험
ⓒ 이희진
식빵

작년 첫 번째 공개수업은 '학교공개의 날'에 우리반 학부모님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난 그날 교사들이 공개하기 꺼리는 과학 수업을 준비했다. 준비할 것도 많고 수업 분위기도 부산스러울 게 거의 확실한 과학을 고른 나를 두고 어떤 선생님은 신기하다고 하셨다.

 

교과서에는 고무찰흙과 스티로폼을 여러 개 쌓아서 사용하는 실험으로 나왔지만, 공개수업에서는 잼을 발라 층층이 쌓은 식빵과 과자를 사용했다. 실험의 재료가 재료인지라, 학생들은 모두 흥미진진한 태도로 수업에 참여했고 실험도 열심히 했다.
 
원래 계획은 수업 후 재료인 빵과 과자를 학부모님들과 함께 먹으며 수업에 대한 소감을 나누는 것이었는데 학생들이 다 먹어버려 그렇게 하진 못했다. 하지만, 하지만 나중에 '담임교사와의 대화' 시간에 수업이 재미있었다고 말씀해주셨고, 1년 내내 습곡과 단층에 관련된 시험 문제를 틀리는 아이는 없었다.
 
  
▲ 과자로 하는 과학실험 지층이 당기는 힘에 의해 끊어지는 과정을 실험하는 '단층실험'
ⓒ 이희진
단층

더 욕심이 났다. 수업을 잘하는 '유능한 교사'가 되고 싶었다. 승진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이왕 직업이 가르치는 일이니 학생들에게도, 학부모님들에게도, 다른 교사들에게도 "그 선생 수업 잘한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교사가 학생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 수업에 노력하는 거야 당연한 거지만, 자신의 직업에서 인정받고 싶어서 노력하는 것도 당연한 게 아닌가.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보다 내 직업에서 인정받는 '유능한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지만 그게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하진 못했다. 나는 몰랐던 것이다. '좋은 선생님'과 '유능한 교사'의 차이를.
 
쇼가 된 수업 공개, 나에게 화가 났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학부모 공개 수업 모습.
ⓒ 이부영
교사수업전문성제고방안

늦가을, 마지막 수업공개를 하던 날이었다. 1년간 연구한 선도학급의 실적을 평가받고 나 역시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기회였다. 다른 선생님들은 물론, 교장 교감 선생님과 함께 교육청에서 내 수업을 보기 위해 나온 장학사님이 교실 뒤에서 수업을 참관하고 계셨다.
 
수업은 무난하게 끝났다. 처음부터 무난한 과목, 무난한 내용을 고른 수업이었다. 무난하지 않은 건 단 하나, 아이들의 모습이 달랐다. 나는 수업 중반을 지나서야 그 이유를 알아차렸고 다소 충격을 받았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도 수업을 참관하는 사람들도 모두 없는 교실에서 난 내 자신에게 화가 나 한참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앉아만 있었다. 
 
내가 나에게 화가 났다. 그때 내가 깨달은 것은, 내가, 나와 아이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날 내가 '유능한 교사'로 인정받기 위해 모든 이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던 수업은 1년간 내가 우리반 아이들과 함께 해온 수업이 아니었다.
 
나는 학생들이 수업 내내 즐거워할 수 있는 수업, 내가 설명하는 중이라도 아이들이 생각나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내 말을 끊고 말할 수 있는 수업을 나는 추구했었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그렇게 행동하라고 말했었고 그렇게 공부하는 것이 좋은 공부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러나 수업 공개 날, 나는 갑자기 정자세로 앉아서 로봇처럼 또박또박 이야기하기를 아이들에게 강요했다. 나는 나에게 유능하다고 할 만한 다른 사람들의 잣대를 아이들에게 들이댔고, 내가 유능해 보이지 않도록 행동한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야단을 쳤다. 내가 아이들과 함께 1년 동안 추구해 온 수업에 대한 이상을 버리고, 우리가 1년 동안 함께 해온 노력들을 기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는 수업 공개를 하지 않아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적어도 '잘하는 수업'에 대한 기준이 로봇 같은 학생들과 연예인 같은 교사가 만드는 한 편의 '쇼'인 동안은 '유능한 교사', '수업 잘하는 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머리에서 지웠다.
 
그리고 '유능한 교사'라는 인정은 장학사나 동료교사가 아니라 내 반 학생들과 학부모님들께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았다. 
 
'잘 가르치는 교사'는 누가 뽑아야 하나
 
'수업명인'이니 '으뜸선생님', '스타강사' 등등 각 시도교육청별로 잘 가르치는 교사를 뽑아 인정해주는 우수교사인증제를 시행한다고 한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이런 인증제를 교원평가로 연결시키겠다고 발표도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결국 잘 가르치는 교사는 학교와 교육청에서 뽑는 것이고 승진하고 연결되는 지금의 시스템을 그대로 따라서 또 하나의 제도를 더 만들겠다는 말이다.
 
교사의 전문성을 이야기할 때 의사와 종종 비교하곤 한다. 의사는 몸을 건강하게 하는 직업이고 교사는 몸과 마음과 머리를 건강히 키우는 직업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의사가 실수하면 사람을 죽일 수 있지만 교사가 잘 못하면 그 사람의 삶을 죽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교사와 의사가 참 중요하고 전문성을 갖춘 직업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진료 잘하는 의사'는 누가 뽑나? 환자들이 뽑는다. '잘 가르치는 교사'는 누가 뽑아야 하는가? 물론 공교육인 이상, 교육의 질을 관리하기 위해 관에서 잘하는 교사, 좀 더 역량을 발전시켜야 하는 교사를 평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수업 잘하는 교사를 뽑는 제도들은 '수업연구대회'니 '수업개선실천연구'니 등등 많이 있다. 그리고 그런 제도들은 승진과 연결되어 있어 이미 형식화되고 '쇼'인 수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수업명인'이니 '으뜸선생님'이라니 하는 말들은 듣기만 해도 참 아름다운 명예다. 그냥 잘하는 교사가 아니라 모든 교사가 보고 배워야 하는 '선생님의 선생님'으로 손색이 없는 이들이 그런 명예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명예라는 것는 사회의 인정과 적절한 보상이 따라야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무엇보다 '누가 선정하는가'가 중요한 게 아닌가. 퓰리처상과 노벨상이 신문사 사장이나 과학재단이사장이 뽑는 거라면 이렇게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