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시대의 문장은 읽기 어렵다. 그러나 당대의 사람과 다르게 후쿠자와는 일부러 노력해서 읽기 쉽게 쓰고 있었다. 나중에 정치가가 된 오자키 유키오(尾崎行雄:미기행웅)<필명은 가쿠도(--옮긴이)라는 사람은 <<가쿠도 자서전>>에서 후쿠자와를 만났던 일을 다음과 같이 적어두었다.
그때 선생(후쿠자와)은 족집게로 코털을 뽑으면서 이상한 눈초리로 비스듬히 내 얼굴을 바라보며 "자네는 누구에게 읽히려고 저술 따위를 하려고 덤벼드는가"라고 물었다. 나는 그의 태도와 말투에 화가 치밀었지만, 노여움을 억누르고 옷깃을 여미면서 의연하게 "일반 식자에게 보이기 위함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선생은 "바보 같은 놈! 원숭이에게 보여줄 작정으로 써! 난 말이지, 언제나 원숭이에게 보여주려고 쓰는데, 세상은 그걸로 족해"라고 질타하며 시람을 비아냥거리듯 웃었다.
후쿠자와의 문장은 좀 읽기 어려운 듯이 보이지만, 원숭이에게 읽힐 작정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들도 원숭이가 된 셈치고 읽어보도록 하자.
인간은 동등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공부하는 놈은 성공해서 부자가 되고, 공부하지 않는 놈은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공부해라. 이것이 <학문의 권장>의 내용이다. 알기 쉬운 이야기지 않은가? 이러한 원리가 지배하고 있는 세계는 매우 '살맛 안나는' 세상이다. 공부하면 훌륭하게 된다. 공부하지 않으면 비천하게 된다.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경쟁사회이다.
그뿐 아니라, 후쿠자와는 꽤 '실학(實學)을 중시한 사람이었지만, 요즘 (2차 세계대전 전에도 그랬지만)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부분의 내용이 실제 사회생활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의사나 기술자가 되거나 선생님이나 관료가 되어서, 학교에서 배운 이과(理科)와 사회 지식들이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공부의 대부분은 현재 일본 사회생활에 직접적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누구나 알고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