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야매’가 ‘공인’에게 묻는다

리첫 2009. 11. 16. 12:47

야매’가 ‘공인’에게 묻는다 / 이범
한겨레
» 이범 교육평론가
스스로 교육평론가라고 소개하고는 있지만, 사실 나는 전문적인 교육학 공부를 해 본 적이 없다. 일종의 ‘야매 교육학’을 한 셈이다. 나 같은 야매 교육학자가 활개 치는 것은 ‘공인 교육학’이 기초적인 질문에 대해서조차 제대로 답변을 내놓지 못해왔기 때문이다. 이게 정상적인 학계인가 하는 회의감이 들 정도이다. 대표적으로 서로 연관된 질문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질문. 수능대학에서의 수학 능력을 변별하기 위한 시험인가, 고교 교육과정상의 성취도를 측정하기 위한 시험인가? 교육학자에 따라 전자라고 답하기도 하고 후자라고 답하기도 한다. 현실은 ‘어정쩡’이다. 전자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국·영·수 중심에 객관식으로 설계되어 있어 다양한 전공별 학업 적합도를 평가하기 어려우며, 후자라고 보기에는 수리(가)형을 배우는 이과생이 수리(나)형을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고 응시 과목 개수가 제한되어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과 괴리가 일어나는 등 허점투성이다.

 

두 번째 질문. 인문계 고등학교는 대학 입학을 전문적으로 준비해줘야 하는 곳인가, 아니면 그와 별도로 이른바 ‘정상적인’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운영해야 하는 곳인가? 전자의 대표적인 예가 영국이며, 후자의 대표적인 예가 미국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사회적 합의는 고사하고 교육학계 내에서조차 합의가 없다. ‘교육과정’이라는 명분과 ‘대학 입시’라는 현실 사이에 어정쩡하게 끼어 있는 일선 고교에서는 ‘정상적인’ 고교 교육과정을 허겁지겁 끝마치고서 수능 문제집을 풀어대느라 정신이 없다.

 

세 번째로 가장 중요한 질문. 대학은 전문교육을 하는 곳인가, 보편 교육을 하는 곳인가? 학과별로 학생을 선발하는 걸 보니 전자 같기도 하지만, 문학을 전공할 학생이나 기계공학을 전공할 학생이나 상관없이 동일한 국·영·수 문제 위주로 평가하는 걸 보면 후자 같기도 하다.

 

이처럼 기본적인 질문들에 대하여 교육학계 내에서 체계적인 비평과 토론이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 초등·중등·대학교육 전공자들간에 교류나 협력이 미약하고, 교육과정, 평가 제도, 학제, 교육 재정… 여기에 과목별 구분까지 더해서 교육이라는 총체적 분야를 완전히 찢어발겨 파편화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것들을 포괄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교육철학과 같은 분야는 주류에서 밀려나고 교수 정원도 축소되고 있는 형편이다. 철학이라는 것의 성격상 교육과학기술부나 교육청의 프로젝트 연구를 수주할 처지가 못 되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 학문이 세분화되면서 서로 높은 장벽을 둘러친 ‘따로국밥’ 신세가 되어버린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교육학에만 국한된 현상도 아니다. 하지만 자칭 타칭 교육 전문가들이 당면한 교육 문제에 관한 논의를 전혀 주도할 수 없다면, 도대체 사범대와 교대는 무엇하러 있단 말인가?

 

일단 현장 경험을 통하여 당면한 교육 문제가 무엇인지를 범주화하는 작업부터 필요하다. 교사들이 어떻게 살아가며 학부모들이 뭘 놓고 고민하는지에 대하여 무관심한 교육학자는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의대 교수들은 심지어 직접 환자를 상대로 진료하면서 후학을 양성하는데, 왜 사범대나 교대 교수들은 초·중·고교에 찾아가거나 학생들을 만나보는 일을 일 년에 한 번도 안 해 보면서 그토록 떳떳할까? 사범대와 교대 교수들을 일 년에 몇 개월씩은 초·중·고교에서 근무하도록 정기적인 ‘하방’이라도 시켜야 하는 것 아닐까? ‘야매’ 교육학이 사그라들도록, ‘공인’ 교육학계의 분발을 촉구한다.

 

이범 교육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