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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영어

리첫 2010. 1. 21. 11:56

대통령의 영어 / 이태숙
한겨레
» 이태숙 경희대 사학과 교수
‘ODA’나 ‘PKO’가 무슨 말인지 아시는지? 명색이 대학교수인 나도 금방 알아차리지 못했으니 그 뜻을 아는 분은 매우 유식한 소수 축에 든다고 하겠다. 그런데 그런 단어를 거침없이 사용할 뿐 아니라 ‘잡 셰어링’(job sharing)이나 ‘미 퍼스트’(me first) 같은 영어도 곁들이며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격려 차원에서 ‘영어의 달인’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그러나 이런 영어가 대통령이 연초에 한해의 국정 방침을 국민에게 밝히는 자리에 동원된 사실 앞에서는 ‘영어의 달인’ 운운할 마음이 싹 달아난다. 비록 대통령은 연설 중에 G20을 굳이 ‘지 트웨니’라고 읽고 유럽연합 대신에 EU라는 영어 약자를 써서 영어 실력을 자랑하려는 듯했지만 그 실력을 칭송할 생각도 없다.

 

대통령의 새해 국정연설에서 영어 사용을 문제삼는 이유는 그것이 언뜻 보기처럼 지엽적인 사안이 아니라 문화적 정치적 심각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영어를 중시하는 풍조가 영어광풍이라는 심각한 문화적 질병으로 깊어진 데에는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부터 드러낸 이 대통령의 ‘영어 편애’ 탓이 크다. 이 대통령은 외국에서도 기회만 되면 영어 연설문을 읽는 듯 텔레비전에 비친다. 다른 정치인도 ‘나라고 못할쏘냐’라는 듯 외국에 나가 영어 연설문을 읽으니 이 대통령은 그 부면에서 유행을 선도한 모양이다.

 

그러나 대통령을 위시하여 우리나라 정치인이 외국에 나가 영어 연설문을 읽는 것이 무슨 이점이 있을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다. ‘나 영어 잘하지요?’라고 외국인의 평가를 좇는 자세가 문제인데다 영어 상용자인 외국인이 연설 내용을 차치하고 웬만해서는 ‘영어 잘한다’고 평가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영어 실력이 뛰어났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에서도 확인한 사실이다. 1980년대 김 전 대통령이 전두환 정권의 핍박을 받아 미국으로 쫓겨났을 때 나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그의 강연을 들었다.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 없이 모인 청중 앞에서 김 전 대통령은 영어로 된 연설문을 읽어 내려갔다. 나는 그가 한국 민주화의 당위성과 방안을 제시할 뿐 아니라 동북아의 긴장완화 효과까지 설명하는 데에서 그 폭넓은 시야에 감복하였다. 그런데 주위에서 한 미국인이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연설문을 배부했으면 됐지 그것을 왜 굳이 영어로 읽느라 애쓸까?’ 김 전 대통령의 영어 발음이 듣기에 상당히 거북했기 때문이었다.

 

청중이 김 전 대통령의 영어 실력을 확인한 때는 영어 연설 즉 영어 낭독이 아니라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한국어로 말할 때였다. 통역을 자원했던 한국인이 김 전 대통령의 답변을 통역하면서 계엄령이란 단어가 생각 안 난 듯 머뭇거리자 김 전 대통령이 옆에서 “마샬 로, 마셜 로” 하고 거들었다. 통역을 도와주는 김 전 대통령의 모습에 청중 사이에 애정과 존경의 웃음이 퍼졌다.

 

이명박 대통령의 새해 국정연설에 등장한 영어를 두고 던지고 싶은 질문은 ‘대통령님의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은 국민 속에 끼워주지 않는 겁니까?’다. 덧붙여 이 대통령이 개신교 장로라니까 더욱 상기시키고 싶은 사실이 있다. 개신교의 종교개혁에서는 제국의 언어인 라틴어 대신에 각 지방 토착어를 신과 소통하는 효과적 언어로 내세운 일종의 언어혁명이 핵심적 요소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대통령님께 다음과 같이 조언을 드린다. 국내에서는 심각한 정치적 문제를 일으키므로 영어를 사용하지 마시라고, 외국에 나가서도 유능한 통역을 채용하고 영어를 사용하지 마시라고, 나아가 개신교 신과의 소통에서도 영어를 사용하지 마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