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스타강사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리첫 2010. 1. 27. 11:53

지난 해 3월 9일 안병만 교과부장관과 광주지역 한 초등교사가 말싸움을 벌였다. <뉴시스> 보도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안 장관: “지식 전달에 있어 학원이 학교를 앞서고 있는 것이 교육과학기술부의 숙제다.”


한 교사: “학원강사 출신 교생의 수업을 지켜본 결과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알려주는 주입식 교육이었다. 학교는 기다림과 과정을 중요시해야 한다.”


한 나라의 교육수장이 “학원이 학교를 앞서고 있다”고 한 말에 대해 한 교사가 ‘주입식 교육이 문제’라고 따진 내용이다.

 

안 장관 “수능강의, 스타강사 우대 정책 펼 것”

 

<경향신문> 26일치 1면 기사.

이로부터 1년가량이 흐른 지난 1월 21일 안 장관은 <국민일보> 기자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의 EBS 수능 강의 강화 방법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영역별 최고 수준의 스타강사를 대거 영입할 것이다. 이를 위해 스타강사 우대 정책을 펼 것이다.”(<국민일보> 1월 22일치)

 

비숫한 시기인 24일 강남의 한 강사가 경찰서에서 하소연했다. 다음은 이날 <노컷뉴스>가 보도한 내용이다.

 

“‘나도 스타강사가 되고 싶었다’. 미국 대학입학자격고사인 SAT 시험지를 유출한 혐의로 붙잡힌 학원 강사가 털어놓은 범행 동기다. …실력자로 대접받기 위해서는 범죄까지 서슴지 않는 강사들. 돈이면 다 된다는 비뚤어진 강남 사교육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모든 스타강사가 시험지 범죄자는 아니다. 하지만 시험지 범죄로 스타강사에 오른 강사들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6일치 신문들은 이 같은 ‘일그러진 영웅들’에 대해 제각기 한 마디씩 했다.

 

먼저 사설 제목만 쭉 살펴보자.

 

“일그러진 한국 교육의 자화상”<한겨레>
“SAT 不正 창피해서 견딜 수 없다”<국민일보>
“SAT 시험부정 역시 사회기강의 문제”<문화일보> 25일치
“SAT”<경향신문> 칼럼 ‘여적’

SAT 시험지 훔친 강사 “나도 스타가 되고 싶었어”


제목들로 문장을 만들어보면 “일그러진 한국교육의 자화상인 SAT 시험 부정은 창피해서 견딜 수 없는 일로, 이는 사회기강의 문제”라는 것처럼 읽힌다.

 

정말로 그럴까? 말과 글만 잘못 써도 언제 ‘때갈지’ 모르는 검경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정말로 사회기강이 무너져서 이 같은 일이 생긴 것일까?

 

<문화일보> 사설 내용을 잠깐 펼쳐보자.

 

“한국에서 SAT 부정이 속출하고 있다는 사실은 사회기강을 다잡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SAT 시험 부정 역시 사회기강 해이의 한 단면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이 신문은 ‘봐주기 온정주의식 대응이 이런 부정행위를 부채질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따라서 이 사설의 결론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될 수밖에 없다.

 

“경찰 당국의 철저한 수사와 엄정한 단죄에 더해 일부 학원 강사와 학생·학부모 등이 공정 경쟁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갖추는 일 또한 사회기강 확립의 일환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경찰의 철저한 수사와 단죄는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시험지 범죄가 ‘사회기강 해이’ 때문이라고 본 것은 다소 단순한 사고다.

 

범죄도 만남에서 시작된다. 무엇과 무엇의 만남인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스타강사가 되려는 집단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명문대에 진학하려는 집단의 만남. 이것이야말로 이번 사건 해결의 실마리다.

 

이들이 추구한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돈과 명예다. 학원강사는 스타강사가 되는 것이 이것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었고, 수험생 집단은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이 이 둘을 얻는 특효약이라고 본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점에서 스타강사의 어머니는 대한민국의 학벌주의다.

 

대한민국 스타강사의 어머니는 학벌주의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사설이 사건의 본질과 더 맞닿아 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족집게 스타 강사로 이름을 날리고 돈을 벌어보겠다는 학원 강사의 그릇된 욕망이 부른 결과다. 그 이면에는 어떻게 든 명문대학에 가야 한다는 학생과 학부모의 비뚤어진 교육열이 자리하고 있음은 물론이다.”<경향신문>

 

“국제적 망신을 부른 일차적 원인은 학벌에 목을 매는 한국의 비뚤어진 교육열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명문대학에 진학하기만 하면 된다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도덕불감증과, 그런 도덕불감증을 이용해 돈만 벌면 된다고 여기는 학원들이 합작해 벌인 추악한 놀음의 결과물이다.”<한겨레>

 

명문대만 나오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는 대학민국’. 입시제도를 고치기는커녕, 스타강사만 떠받드는 안 장관.

 

이 같은 나라에서 이런 인물이 교육수장인 한 ‘일그러진 영웅들’은 계속 탄생할 것이다.


태그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