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 부모는 매우 편안한 얼굴로 아이를 경쟁의 세계로 몰아 부치며 아이가 일류대생이 되길 소망한다. 좌파 부모는 매우 불편한 얼굴로 아이를 경쟁에 몰아 부치며 아이가 좌파적인 일류대생이 되길 소망한다."
7년째 국내 유일의 어린이 진보 교양 월간지 <고래가 그랬어>를 발행하고 있는 진보논객 김규항씨가 본 한국의 교육 현실은 '아수라장'이었다. 'B급 좌파'라는 별명으로 친숙한 그는 "패닉상태에 빠져서 그저 내 자식을 살려보겠다고 다른 사람들이 몰려가는 대로 우왕좌왕하다가 모두 함께 죽어가는 모습이 한국의 교육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인터뷰집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를 펴낸 김규항씨는 22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나의 삶, 나의 글'이란 주제로 60여 명의 독자들과 '저자와의 대화'를 진행했다.
'오마이TV'를 통해 생중계 된 이날 강연에서 김씨는 "오는 5월부터 인터넷 공간에 돈이 없어도 다닐 수 있는 대안학교를 만드는 서명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MB교육 아니어도 아이들은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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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강연에서 김씨는 "초등학생의 사회적 임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교육문제에 대해 말을 꺼냈다. 그가 생각하는 초등학생의 '사회적 임무'는 '행복하게 잘 노는 것'. 문제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놀 수 있을 만한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저는 박정희 정권에서 초·중·고를 다 다녔는데 그때는 학교에서 선생님을 마주치면 거수경례를 하면서 '건설합시다'라고 인사를 했어요. 대부분의 남자 교사는 폭력교사고 학교는 군대였지만 그때도 오후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놀았습니다. 요즘은 초등학교 아이가 오후 3시경 한 시간쯤 소재가 파악이 안 되면 사고 상황이 되죠. 우리 아이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후에 한 시간 정도 여유도 없을 만큼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그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아이들이 오후 시간을 이렇게 보내고 있는 국가는 남한밖에 없다"며 "아이들이 이렇게 오후 시간을 지내면 병든 아이로 자라게 된다"고 말했다.
청소년 교육에서 과열 경쟁이 문제로 지적되고 청소년들의 자살율은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경쟁이 점점 더 심해지는 이유는 뭘까. 김씨는 "우리 아이들이 경쟁에 시달리는 이유가 전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탓만은 아니다"라며 학부모들의 모순적 행태를 지적했다.
"촛불집회에서 '이명박 물러가라', '이명박이 우리 아이들을 다 죽인다'고 외치는 학부모들 자정쯤 되면 아이에게 전화해서 학원 다녀왔는지 확인합니다. 현실이 그런 걸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말할 거면 왜 이명박 정권을 욕해요? 우리 아이들이 착하고 순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부모들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당신들 때문에 이미 죽어가고 있어'."
진보진영에 몸담고 있는 부모들도 자식 교육에 있어서는 보수와 차별점이 없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김씨는 "이명박 정부의 시장주의 교육을 반대하는 사람도 자기 자식의 경쟁력 확보에는 알뜰하다"며 "그러다보니 보통의 서민들이 진보적인 교육구호에 대해서 더이상 믿지 않는 부작용이 생겼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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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꼭 가야 하는 거 아니잖아요?"
극성스러운 지역에서는 중학교 때부터 대학 입시가 시작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것이 한국 교육의 현실이다. 여기서 열심히 경쟁하는 것 이외에 어떤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을까.
김씨는 "모든 교육문제는 대입 문제"라며 "공부도 (일종의) 적성이고 재능인데, 부모들은 자녀들이 대학을 꼭 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충고했다.
김씨는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에서도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이 90%에 가깝고 독일은 40% 정도인데 한국이 독일보다 두 배 이상의 고학력 노동을 필요로 하는 사회는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대학 가는 사람이 20% 정도였을 때나 대학 졸업장이 도움이 되지, 지금은 전혀 아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내)딸이 대학 진학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도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설명했다. 일러스트와 만화, 에니메이션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김씨의 딸은 미대에 진학하기 위해 장기간 거쳐야 하는 획일적인 입시 미술이 창조적인 재능을 계발해야 하는 자신에게 어떤 효용성이 있는지 충분히 고민한 뒤 얼마 전 김씨에게 "입시 미술은 하지 않기로 했어"라고 선언했다고.
"대학은 꼭 가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는 말을 하면 사람들은 대안이 뭐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그 때 대안을 묻는 것은 적절치 않죠.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새로운 교육의 출발선에 선 것이고 정답이 바로 옆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부터 좋은 답을 만들어야 하는 거죠."
김씨는 이어 "오는 5월부터 인터넷 공간에 대안학교를 만들기 위해 부모들에게 서명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교육을 해보고 싶어도 내가 맨 앞에 서 있다거나 혼자라고 생각될 때는 어렵죠. 내 아이가 15년 후에 나를 원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두렵잖아요. 동네에서는 함께 할 사람도 찾기 힘들고, 아이를 특별한 교육을 하는 대안학교로 보내려면 비용도 많이 듭니다. 하지만 우리가 서명운동을 벌이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겠죠. 인터넷을 이용하면 비용 없이도 누구나 새로운 교육을 받을 수 있고요. 그러면 교육의 역사가 바뀔 수 있고 진짜 교육을 받기 시작한 새로운 엘리트들이 등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우리가 하기에 따라 멋진 신세계가 올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국서 교회 다니는 것 '비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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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이날 강연에서 한국 사회의 좌·우 구분과 한국 교회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도 좌파고, 유시민 전 장관도 좌파면 저 같은 좌파는 인간 축에도 못 들어가게 된다"고 웃으며 말했다. '좌파'라는 호칭이 남발되면서 누가 진짜 좌파인지, 어느 기준에 의한 좌파인지 개념이 모호해졌다는 얘기다.
"개념이 모호해지는 상태는 우리로 하여금 사회를 지배하는 확고한 체제를 바로 보지 못하게끔 만듭니다. 우리 사회의 정치가 정말 변화되려면 단지 이명박 정권이 물러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지배체제에 대해 명백한 구분이 있어야 합니다. 지배체제를 신자유주의라고 한다면 그 범주는 이명박 정부뿐만 아니라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포함해야 하는 거겠죠."
지배체제와 갈등을 하는 진보가 제대로 싸움을 하려면 명확하게 자기편이 누군지 구분하는 작업이 먼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김씨의 기준에 따르면 신자유주의에 찬성하는 사람은 우파,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사람은 좌파가 된다. 이 경우,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파다.
또 김씨는 "종교적인 삶은 권하지만 교회 다니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며 이유로 "한국에서 교회를 다니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종교적인 삶을 사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난 2009년 예수의 삶을 다룬 <예수전>을 출간한 바 있다.
"한 번은 아주 순진한 청년들이 교회에 문제가 너무 많은데 비판을 하자니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기분이 든다고 상담을 해왔습니다. 저는 이렇게 충고를 했죠. 먼저 그것이 교회인지 아닌지 생각을 해봐라. 교회라고 주장되는 상점일 가능성도 있으니까. 제대로 알고 보니 이게 교회가 아니라 교회를 빙자한 가게나 마트였다면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가서 '이것은 교회가 아니고 당신은 목사가 아니다'라고 말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