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DJ죽이기--김대중은 '뜨거운 감자'다<2>

리첫 2010. 6. 15. 20:11

김대중 문제를 김대중 개인의 문제로 끝내려는 시도의 대표적인 예는, 그가 사라지면 지역감정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잖겠냐는 견해다. 즉, 김대중을 포함한 이른바 '양김 구도'가 지역감정을 악화시켜 왔다는 얘기다. 이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정치에 대해 한두 마디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주장이다. 이 주장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서, 이 주장 밑에는 이런 전제가 깔려 있다.

 

우리 국민은 형편없이 어리석거나 집단이기주의적 탐욕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이니까, 그들의 어리석음이나 집단이기주의적 탐욕이 발휘될 여지를 아예 없애버리자는 것이다. 그래서 '양김'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대중의 정계 은퇴는 몹시 반가운 일이었고, 그래서 그에게 '거인'이니 '영웅'이니 하는 호칭을 붙여줘도 아깝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 몇년간 한국의 내로라 하는 언론인들과 지식인들이 한국 정치에 관해 쓴 모든 글들이 일사분란하게 그런 주장을 펴왔다.

 

그러나 그건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회피다. 물론 세상을 살다보면 문제의 해결보다는 문제의 회피가 더 효율적인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제는 김대중이 정계를 은퇴했으니 안심하고 국민의 어리석음이나 집단이기주의적 탐욕을 꾸짖을 법도 하니 않은가? 그래야 앞으로 한국 정치가 더 나아질 수 있는 것 아니냐, 이 말이다. 그러나 언론과 정치학자들은 김대중의 정계복귀 시나리오 따위의 기사와 논문을 발표하기에나 바쁠 뿐이다.

 

이렇듯 제대로 된 '심판'이 없다는 게 한국 정치의 비극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정치인과 유권자들은 둘 다 위험한 집단이다. 탐욕과 편견의 포로가 되기 쉽다는 점에서 말이다. 언론과 지식인들의 견제는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어떻게 된 게 언론과 지식인들이 더 위험한 짓을 해왔다. 그들은 누가 규칙을 어겨도 판정을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일부 언론과 지식인은 스스로 규칙을 어겨가면서 특정 정치인에게 유리하게끔 유권자들의 감정과 편견을 부채질하기도 했다.(RW)

 

글:강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