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양심적인 척하는 언론과 지식인들은 또 양비론으로 일관한다. 선거에서 특정 후보에 대한 용공조작이 일어나고 지역감정이 문제가 되어도, '정치란 더러운 것'이라는 둥 '정치 과잉'을 경계해야 한다는 둥 '국민이 무섭지도 않느냐'는 둥 '모두 반성해야 한다'는 둥 하나마나한 소리만 잔뜩 늘어놓기 일쑤다. 요컨대, 자기 한 몸의 안녕과 영달을 위해 '뜨거운 감자'는 결코 건드리지 않겠다는 거다.
그런 문제의식으로, 김대중의 지난 대선 패배를 다시 한번 보자. 많은 사람들이 용공조작과 지역감정 때문에 김대중이 패배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건 올바른 진단이 아니다. 그건 정작 책임져야 할 누군가를 은폐시키는 것이다. 예컨대 성수대교를 건너다 죽은 사람이 다리 때문에 죽은 건 분명하지만, 그렇게 이야기 하기보다는 부실 공사와 무책임한 행정 때문에 죽었다고 해야 옳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니 다시 물어보자. 김대중은 왜 대선에서 패배했는가? 그건 우리의 선거판과 정치판에 공정한 심판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작 해야 할 말은 하지 않고 하나마나한 소리만 떠벌리는 언론과 지식인들의 그 '핵심 파해가기' 어법이 어찌 환멸스럽지 않겠는가. 그들은 열린 가슴으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그저 머리로 요것조것 재가며 이야기할 뿐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이 이런 판인데다가, 현재 김대중이라고 하는 이 '뜨거운 감자'는 민주당 내분을 비롯한 전반적인 정계재편이란 불 속에서 더욱 뜨겁게 달구어지고 있다. 그 누구든 잘못 건드렸다간 손을 데는 봉변을 당하기 십상인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에겐 바로 그런 상황이 오히려 김대중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더 좋은 찬스라고 여겨졌다. 현재 김대중과 관련해 진행중인 여러 이야기엔 과거의 김대중에 관한 무지와 편견이 증폭되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를 필요 이상으로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RW)
글:강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