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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사회의성립3

리첫 2010. 6. 26. 17:07

소학교 취학률이 올라가자, 모두가 더 좋은 급료를 받으려고 중학교나 고등학교, 대학 등 더 상위과정을 목표로 삼는다. 이런 진학경쟁이 이제 메이지 말이나 다이쇼(大正)시대에는 일부에서 문제가 될 정도로 심해졌지만, 전전의 의무교육은 소학교 뿐이었으므로, 경제적인 여유가 없고 "상급 학교에 갈 정도라면 논에 나가서 손질을 해라"는 말을 부모에게 듣는 아이들이 아직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시대에는 학력이 없어도 실력만으로 지위가 껑충 뛰어오른 사람도 적지 않았다. 예를 들면,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隆藏)나 식물학자 마키노 도미타로(牧野富太郞)는 학교에 가기 싫어서 소학교를 중퇴했지만, 독학으로 공부해서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큼 훌륭한 학자가 되었다. 학문의 세계에서조차 그러했으므로, 실업계에서는 더더욱 그런 사람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후에는 교과서 국정제가 폐지되고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 되었다. 그렇지만 고등학교까지 가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1960년까지도 고등학교 진학률은 약 50퍼센트였다. 중학생, 바꾸어 말하자면 전국 아이들의 절반 가까이가 시험 따위는 자신과 관계없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고등학교 진학률이 90퍼센트를 넘어서 사실상 거의 모든 사람이 고등학교에 간 것, 즉 시험경쟁 속에 말려들게 된 것은 1960년대의 고도성장을 거쳐 1970년대 전반 정도부터였다. 그 이전에 시험을 치르고 고등학교에 가는 것은 동세대의 중학생들이 부러워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던 것이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시험을 통해 고등학교에 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고, 시험을 보지 않으면 '뒤떨어진 사람'으로 간주되는 사회가 되었다. 일본사회가 그렇게 된 것은 결코 먼 옛날 일이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불과 30년 전의 일인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학교에서 교내폭력, 등교거부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역으로 말하면, 아이들 대부분이 시험경쟁에 휘말리면서, 학교폭력도 등교거부도 집단 괴롭힘(왕따)도 존재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등교거부나 집단 괴롭힘 등은 당연히 있어야 할 것처럼 되었다. 전국의 아이들 거의 전원이 시험경쟁에 휘말린 상태에서 아이들에게 아무런 스트레스나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하다.(R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