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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비극, 다음은 서울대?

리첫 2011. 4. 14. 10:06

카이스트 사태의 2막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1막은 2011년 들어 카이스트 학생 네 명이 자살하여 그 원인으로 지목된 징벌적 등록금 문제와 영어강의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것입니다. 새로운 국면인 2막은 카이스트의 무한경쟁을 지켜본 국민들이 현 정부의 교육 정책기조인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을 이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입니다.

 

2막은 교육 철학과 가치의 논쟁입니다. 카이스트 사태를 통해 수월성 교육으로 이루어지는 현재 교육철학을 유지하느냐, 중단하느냐의 갈림길에 선 민감한 문제입니다. 카이스트 사태는 내부 문제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교육의 철학과 가치를 둘러싼 이념 대립이기도 합니다.

 

  
굳은 표정을 한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이 12일 오전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서 최근 발생한 학생, 교수의 연이은 자살사태에 대한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 권우성
서남표

대한민국의 교육계 개혁을 뒤집게 될 정치적 화두입니다. 만약에 이번 논란에서 경쟁 중심의 교육정책들이 유턴을 하게 되면 대한민국 교육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고려대 박경신 교수 말대로 교육에서의 정의가 무엇인지 새롭게 인식될 것입니다(한겨레 서남표를 위한 변명). 한국 교육판을 새로 만드는 큰 싸움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카이스트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신자유주의 교육과의 결별 논쟁은 큰 사회적, 정치적 이슈입니다.

 

그런 이유로 제자를 4명이나 앞세운 서남표 총장은 불명예 사퇴를 거부하고 있고, 청와대에서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MB정부 교육정책은 카이스트에서 후퇴하면 커다란 전력손실을 입습니다.

 

카이스트와 서남표 총장은 MB식 경쟁교육의 아이콘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패하면 전국의 학생들을 성적으로 줄 세우던 학력평가, 일제고사도 끝장이고, 학생들의 다양화라며 학교를 서열화 시키던 자사고, 학교선택제도 동력을 잃습니다.

 

1995년부터 이어진 한국교육의 근간을 보여주는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의 한 사례인 카이스트 문제를 일단 해결하고, 이 일을 야기시킨 교육 곳곳에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고사시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서남표 총장을 지지하는 기사를 써온 <조선일보>는 그 마지막 단말마를 외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카이스트 사태에는 무자비한 경쟁문제뿐 아니라 서울대 법인화 문제가 녹아 있고, 카이스트 사태에는 로스쿨 탈락자의 그림자가 서려있습니다.

 

카이스트의 오늘은 서울대의 미래

 

  
올해 들어서만 4명의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운데, 8일 마련된 학생들과 총장의 간담회에 참석한 한 학생이 서남표 총장의 사과와 개혁폐기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카이스트

지난 연말 서울대 법인화법이 날치기 통과되었습니다. 앞으로 서울대 역시 국비를 받으면서, 이사가 권한을 갖는 카이스트와 비슷한 구조로 가게 됩니다. 울산 과기대 역시 특수법인을 약속하고, 국립대 설립 승인을 받은 케이스입니다.

 

오늘자(13일) 언론보도를 보니 온 나라 수재들이 몰린다는 서울대에서 아너스 칼리지(Honors College)를 설치해 수재 중의 수재를 별도로 선발해 교육을 시키겠다고 합니다. 이건 또 무슨 정책일까요? 아이가 똑똑하건, 아이 부모가 돈이 많아 사교육 뒷바라지를 잘했든 간에 서울대에 입학하면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여러 날 합격 턱을 내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그 애들을 열무처럼 또 솎아낸다는 것입니다. 제2의 카이스트의 비극이 우려됩니다.

 

2010년 말 날치기 통과된 서울대 법인화의 첫 시동이 걸렸습니다. 사실 카이스트는 국립대학인데, 사립대학처럼 운영되는 특수법인입니다. 국립대학자율화 명분으로 탄생한 이러한 종류의 특수법인 대학들은 국비를 지원받지만, 사립대학처럼 이사회가 있어 교과부는 관료를 이사로 지명하여 적지 않은 국가의 통제를 받으면서도 일면 기업처럼 운영됩니다.

 

과학영재를 키우는 별도 법인인 카이스트 역시 국비를 지원을 받으나, 사립대학처럼 이사회가 있어서 수익구조에 역점을 둡니다. 그리고 총장도 4년마다 업적을 평가받습니다. 업적 중심! 총장은 연임을 위해 가시적으로나마 결과를 내놓아야 합니다. 카이스트가 최근 외형은 커졌으나 경쟁으로 쫓기게 된 이유입니다. 결국 국립대 법인화는 국가발전에 기본이 되는 기초학문 육성보다는, 돈 되는 학과와 취직이 잘 되는 학과를 중시하는 지원을 통해서 대학의 부익부빈익빈, 수익구조개발에만 열을 올리게 됩니다.

 

이런 대학 운영이 이번 카이스트 자살사태를 불러온 것입니다. 서울대학교 구성원들은 서울대 법인화를 극렬히 반대했지만, 2010년 연말 한나라당은 국회에서 서울대 법인화를 날치기 통과시켰습니다. 카이스트의 비극이 앞으로 서울대에서 일어날 비극이 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서남표 총장 개인이 저지른 대학 내 전횡들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대학 곳곳에서 경쟁을 명분으로 인사비리, 입시비리, 연구비 전횡 등을 일삼았다는데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대학 체제인지' 의심을 가지게 합니다. 그래도 그는 사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MB정부의 아이콘이기 때문입니다.

 

카이스트학생과 외국대학생의 자살이 다른 이유

 

올 한해만 학생이 세 명 죽어 나갈 때 까지만 해도 서남표 총장은 "미국 명문대는 자살률 더 높다"라는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학생들 자살은 개인적 자살이 아닌 사회적 타살이 명백합니다.

 

특히 평생 과학영재, 수재 소리 들으며 살아온 아이들이 카이스트 학생들입니다. 입시 경쟁을 뚫고 들어온 모든 학생이 장학금으로 다닐 수 있었던 카이스트에 입학해 상대평가로 징벌적 장학금 제도를 겪어낸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예민한 문제입니다.

 

한국 교육에서는 징벌 장학금 제도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의 자존심에 달린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대학에 입학은 대한민국에서는 가문의 영광입니다. 개인적인 실패는 가족의 기대까지 짊어진 학생들에게는 더욱 부담스럽습니다. 동양적인 교육열은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책임지는 서구 개인주의 문화와는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경쟁이 학생들에게 더욱 힘겨울 수 있습니다.

 

대학 내에 그런 아이들에 대한 정신상담 프로그램을 제대로 진행하고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하는 한국의 교육 문화 속에 과도한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에 대한 기본적인 예비 자세도 우리는 되어있지 않습니다.

 

자살한 학생 중 한 학생의 아버님이 남편의 지인인데 동창회에 나갔다가 그 소식을 접하고 동창생 모두 할 말을 잃었다고 합니다. 참혹한 이 땅의 교육 현실인 것입니다.

 

영어 몰입교육효과 25%?

 

전 과목 영어수업만 해도 그렇습니다. 명문대 경영학과를 다닌 학생의 말을 빌리면 "전공 영어수업은 효과가 25%"라고 하더군요. 일단 교수가 자신이 아는 내용을 영어로 50% 밖에 표현하지 못하고, 학생은 그중 50% 밖에 알아듣지 못하니 수업효과는 25%라는 것입니다. 그런 반의 반쪽짜리 수업을 왜 해야 합니까?

 

지금 강남지역에서는 초등학생 엄마까지 영어몰입교육을 대비하느라 허리가 휘어지고 아이들은 격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영어 수업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엄마들은 사교육 부담에 따르는 경제적인 이유로 아기를 낳지 않습니다. 조용하고 섬뜩한 출산 파업입니다. 공교육을 강화하겠다고요? 고등학교에서 영어도 영어로 가르치지 못하면서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영어로 전공수업을 하면서 학생의 선택권이 전혀 없다는 현실은 영어 못하면 죽으라는 말입니다.

 

고3 내내 밤새고 공부해도 대학가서 영어전공 수업을 따라갈 수 없어 낙오자가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공교육이 강화되겠습니까? 모국어로도 이해하기 힘든 지식을 주입하는데 신경을 쓰는 에너지를 교양과목을 공부하고, 기초학문을 닦는데 돌려야 합니다. 멀쩡한 수재를 데려다가 불행하게 만들고, 미래의 과학자를 타살한 학교가 아직도 뻔뻔한 말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그들의 변명은 파렴치한 말이고, 언어도단입니다.

 

카이스트 문제로 조국 교수 등이 트위터에 이러저런 글을 올리자 카이스트 내부에서 외부간섭이라고 느끼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카이스트는 이번 사태 이후 보여준 총장의 대처 자세는 한심합니다. 세 번째 학생이 자살한 이후 지금까지 카이스트 내부에 해결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총장을 포함한 관리직 교수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다가 오히려 문제를 해결할 시간을 놓쳤습니다.

 

무한경쟁으로 곪아터진 MB 정부 방식의 신자유주의를 방패 삼아온 그들은 자신의 환부를 빨리 도려내기 보다는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나 봅니다. 결국 이제는 치료를 위해 교육계 전반의 전체적인 외과적 수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전 국민이 알게 되었습니다. 카이스트의 무한경쟁시스템은 단지 그 학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경쟁력과 수월성을 표방하는 MB식 신자유주의적 영어 식민지적 교육의 종말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났습니다.

 

학생들은 이로 인해 '불안한 미래, 불행한 삶, 위기의 대학'이라는 상처만 받았습니다. 경쟁교육에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기가 왔습니다. 성적이 아닌 새로운 개념의 학력이 중심이 되어야합니다. 학생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소중한 일상을 가꾸면서 협동하며 창의적인 공부와 연구에 매진하는 교육 환경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임무는 우리들 몫입니다.

 

덧붙이는 글 | 김명신 기자는 서울시 교육의원이자, 교육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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