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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무상교육을 꿈꾸며

리첫 2011. 4. 19. 14:07

2011년. 잔인한 봄날은 또 다시 우리 곁을 찾아왔습니다. 유난히도 추웠던 이번 겨울의 날씨도 등록금을 동결시키진 못했습니다. 어김없이 봄은 찾아왔고, 기다렸다는 듯이 등록금은 올랐습니다. 그리고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전국의 대학생들은 등록금 동결 혹은 등록금 반값 실현을 위해 오늘 이 시간에도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잔인한 봄날은 낭만적인 캠퍼스를 거닐며 시궁창같은 현실을 생각해야 하는 때,

좋은 수업의 강의실을 찾기보다 좋은 수입의 알바 자리를 찾아야 하는 때, 미친듯이 솟아오르는 등록금을 향해 미친듯이 투쟁해야 하는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나는 지금 돈이 필요합니다. 이런 제목으로 이런 내용의 글을 단지 '반값 등록금'을 위해 쓰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비통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캠퍼스의 낭만, 꿈을 향한 도전, 미래로 세계로 뻗어나가야 할 우리의 모습은 지금 '반값 등록금'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돈이 필요합니다. 약속하신 분의 실천 불이행으로 우리는 지금 '돈이 필요합니다.' 멈출 줄 모르고 올라만가는 '미친 등록금의 나라'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미친 세상'에서, 대학을 나와도 살아가지 못하는 '답도 없는 나라'에서 우리는 지금 우리의 모든 것을 버려도 좋으니, 필요한 돈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주길 원합니다. 우리는 지금 돈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주인 되는 날"...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외침

 

저는 24살, 지방 사립대를 다니는 학생입니다. 2007년 소위 '돈' 되는 전문대를 다니다, 거기서 박차고 나와 세상에서 쓸데없다 말하는 인문학을 배우러 대학에 다시 들어온 11학번 늦깎이 신입생입니다. 혹시 이 글을 씀으로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떤 피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걱정했지만, 3월 29일 저희 학교에서 일어난 한 사건을 보며 글을 써야겠다 마음 먹었고, 사랑하는 그들도 이 글을 보면 저를 이해해주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전북 완주에 있는 우석대에 다니고 있습니다. 3월 29일 저희 학교 학생들은 학생총회를 열었습니다. 수없이 대화를 요청했고, 또 다른 방법으로 우리의 요구를 전달하였지만 항상 침묵으로 일관한 학교를 향해 우리는 우리의 마지막 희망을 던졌습니다. 소수가 아닌 다수의 목소리였고, 희망이었고, 힘이었습니다. 천 명이 모여야 성사되는 학생총회에 약 천백여 명의 학생들이 모여 우리의 희망을 외쳤습니다.

 

  
정문
ⓒ 권영근
등록금

 

  
정문2
ⓒ 권영근
등록금

아무도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그래서 그들이 더 이상 우리와의 대화를 피하지 못하도록

우리는 먼저 정문을 점령했습니다.

 

  
머리를 자르다.
ⓒ 권영근
등록금

이미 수많은 도망과 침묵 속의 외침을 경험한 우리의 대표들은 삭발식을 준비했습니다.

우리의 총학생회장은 스물셋 꽃다운 여대생입니다.

 

  
머리를 자르다.
ⓒ 권영근
등록금

우리는 울었습니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사람이나 잘리는 사람이나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나 분명 울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잘려나간 머리'칼'이 펜보다 강한 칼이 되어 그들을 향하길 바랐습니다. 그녀의 흘러내린 눈물이 우리 모두의 눈물이 되길 바랐습니다.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우리가 한마음이 되길 바랐습니다.

 

  
아무도 듣지 않다.
ⓒ 권영근
등록금

그렇게 우리는 울음을 그치고 곧장 대학본부로 향했습니다. 또 다시 우리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모두 떠나간 그 자리에서 우리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외침을 목이 터져라 외쳤습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외침을 목이 터져라 외쳐만 댔습니다.

 

  
막을 내리다.
ⓒ 권영근
등록금

학생총회는 성사되었고 우리는 안건을 의결하였고 요구안 전달식을 가지길 바랬지만, 3월 29일 우리가 주인이 되는 날은 이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렸습니다.

 

"역사 앞에 부끄러워지진 맙시다. 힘냅시다."

 

우리뿐만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의 대학에서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해 수많은 투쟁들을 하고 있습니다. 혹자들은 우리에게 너무 꿈같은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비아냥거리기도 합니다. 꿈같은 요구일지는 모르지만 마냥 꿈만은 아니라 생각해봅니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공약 중 하나로 '반값 등록금'을 내걸었습니다.

 

대선 공약은 계획성과 타당성 그리고 실현 가능성을 가지고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때는 실현 가능했는데 4년 동안 '엄청난 경제 발전을 한' 지금의 대한민국이 그것을 실현시킬 수 없는 상황이 된 걸까요? 아니면 애당초 실현 가능성이 없었는데 단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무리수를 던진 걸까요? '경제가 성장해서 나라는 더욱 부유해졌는데 교육에 쓸 돈은 없다.' 물론 이것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안타깝겠지만요.

 

그리고 등록금 인상을 말할 때면 항상 교육의 질도 함께 거론되곤 합니다. 반값 등록금이 되면 교육의 질이 떨어지니,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등록금은 이 상태로, 혹은 인상되어야 한다고 합리화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은 대한민국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 부담은 학생들이 모두 져야 하는 것입니까? 교육의 질은 학생만의 책임이 아니라 국가와 학교 모두의 책임입니다.

 

"청소년, 대한민국 미래의 일꾼!"

 

혹시 이런 슬로건을 기억하시나요? 우리의 학창 시절을 굉장히 괴롭혔던 것들 중에 하나일겁니다. 대한민국의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 박 터지고 피 터지게 싸워온 우리는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과 싸우고 있습니다. 아마 좋은 일꾼이 될 순 없겠죠.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어른들은 항상 말합니다. 꿈을 크게 가지라고,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나아가 세계를 이끌어갈 글로벌 리더가 되라고. 그래서 말인데 우리 '반값 등록금'이 아닌 대학 '무상교육'을 꿈꿔보는 건 어떨까요? 어른들 말이면 자다가도 떡이 나오는 줄 알고 무조건적으로 들은 우리. 지금 우리 그들의 말을 빌어 다시 꿈을 좀 더 크게 가집시다. 우리는 'G20세대', 우리가 가질 큰 꿈이 어디 글로벌 리더뿐이겠습니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투쟁이 곧바로 어떤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한두 번의 '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그런데,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싸우고 싸우다 보면 언젠가 한 번쯤 이기는 날이 오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와 같았던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행동하여 일궈낸 수많은 일들을.

 

새총에 짱돌 하나 얹어서 저기 멀리 보내려 고무줄 세게 당겼는데, '틱' 하고 끊어진 고무줄은 우리의 손을 때리고 말았고, 짱돌은 힘없이 바닥에 나뒹굴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겐 이런 상황이 무한 반복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우리 포기하지 맙시다.

 

우리가 더 나이가 들어 아이가 생기면, 그래서 그 아이가 이 일에 대해 우리에게 물으면, 우리 조금은 당당하게 "나도 그때 싸웠지" 하고 말합시다. 물론 "그런데 우리의 뜻대로 되진 않았어"라는 말을 덧붙이더라도 말입니다.

 

역사가 묻는다면, 우리의 아이들이 묻는다면, 우리 역사 앞에 미안해질지언정 부끄러워지진 맙시다. 우리 끝나지 않는 우리의 이야기를 써내려갑시다. 힘냅시다.

 

출처: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