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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 정계 퇴진

리첫 2011. 5. 16. 11:45

14일, 싱가포르 리콴유 고문총리와 고촉통 수석총리가 각료직에서 사퇴한다고 발표를 했다. 건국 이후 50년 이상을 줄곧 권좌에 있었던 리콴유 총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각료직 사퇴를 보도하는 싱가포르 방송
ⓒ 이봉렬
싱가포르

 

지난 7일 실시된 싱가포르 총선에서 여당인 인민행동당(People's Action Party)은 전체 의석 87석 가운데, 81석을 차지하며 압승을 거두었다. 겉으로 보기엔 1959년 이후 지속되어 온 1당 독주가 재확인 된 선거였다.

 

하지만 여당의 입장에서는 달랐다. 야당인 노동당 (Worker's Party) 에 무려(!) 6석이나 내 준 결과에 경악했고, 그 책임을 지고 14일 리콴유(李光耀) 고문총리 (Minister Mentor)와 고촉통(吳作東) 수석총리 (Senior Minister) 가 동시에 각료직을 사임하고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리콴유는 말레이시아로부터 싱가포르를 독립시켜 지금의 싱가포르를 만든 건국의 아버지라 추앙받고 있으며, 싱가포르 초대 총리로 1959년부터 1990년까지 재직했다. 2대 수상인 고촉통에게 자리를 물려 준 이후에도 수석총리 자격으로, 아들인 리셴룽(李顯龍)이 3대 총리에 오른 후에는 고문총리 자격으로 국정에 참여해 왔다.

 

그런 리콴유이기 때문에 이번 각료직 사임은 리콴유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리는 결정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고작 6석만을 야당에 내준 여당의 압도적인 승리가 이토록 충격적인 이유는 독립 이후 리콴유가 곧 싱가포르이며, 집권 여당이 곧 정부인 나라였기 때문이다. 리콴유가 싱가포르를 독립시켰고, 경제 부흥을 이끌어 왔으며, 서울시 크기의 도시국가인 싱가포르가 동남아시아 최부국이 된 것은 전적으로 리콴유와 집권여당의 능력 때문이었다. 이제까지의 선거는 집권당의 정통성을 확인하는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었다. 집권 여당도, 명맥만 유지하던 야당도, 투표를 하는 유권자도 마찬가지였다.

 

또 하나의 이유는 싱가포르 선거제도 자체가 어지간해서는 야당이 이길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GRCs ( Group Representation Constituencies) 라 부르는 집단대표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여러 선거구를 묶어 하나의 큰 선거구로 만들고 후보가 아닌 정당에 투표를 하는 제도다. 득표수가 많은 정당의 후보 모두가 선출되는 것이다. 선거구가 큰 만큼 돈이 많고, 힘이 있는 정당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선거 포스터 - 정당에 투표하고, 다수 득표 정당의 후보자 전원이 선출된다.
ⓒ 이봉렬
싱가포르

 

여당에서 리콴유, 리센룽 등이 후보로 나온 지역구에서는 야당에서 후보 자체를 내 놓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싼 선거지참금때문에라도 승산이 없는 선거를 하려고 하지는 않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 지역구에 함께 출마한 다른 여당 후보들 역시 무투표 당선이 된다.

 

2006년 선거에서는 절반 이상의 선거구에서 야당이 후보를 내지 않아, 여당이 의석을 다 쓸어 갔다.

 

하지만 올 해는 달랐다. 리콴유가 출마한 선거구를 제외한 모든 선거구에 야당이 후보를 냈다. 오랜 독재에 따른 사회문제에 젊은 유권자들의 불만이 커진 것이다. 이러한 불만은 여당의 득표율 변화 추이를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2001년 총선에서 여당의 득표율은 75%였지만, 2006년 총선에서는 67%로 떨어졌고, 야당은 84석 가운데 2석을 차지해 여당을 놀라게 했다.

 

이 때문에 리콴유가 선거유세를 통해 "일부 선거구가 야당에 넘어간다면 유권자들은 앞으로 5년 동안 후회하면서 살게 될 것"이라며 사실상의 국민협박을 했지만, 여당의 득표율은 60%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고, 야당은 6석이나 차지한 것이다.

 

프리덤 하우스가 발표한 2011년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150위를 차지한 싱가포르 정부의 언론 장악과 검열도 인터넷과 SNS 등 새로운 매체를 통해 자유롭게 정보를 공유하는 젊은 세대가 보기에는 촌스럽고 개선되어야 할 구태였다.

 

싱가포르 독립 이후 리콴유가 장기 독재를 하고 자신의 후계자와 아들에게 총리를 이어가게 만든 힘은 경제적 풍요와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 주는 대신 정치, 사회적 자유는 어느 정도 제한되어도 좋다는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에 있었다. 하지만 싱가포르 유권자들은 풍요와 안정을 넘어서 정치, 사회적 자유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리콴유와 고촉통이 각료직을 물러난다고 해서 총리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여당은 변함없이 의회의석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권력 역시 리콴유 일가의 소유다. 다만 이번 선거와 리콴유, 고촉통의 사퇴는 싱가포르가 좀 더 젊어지는 계기가 되고, 유권자들의 목소리에 정부 여당이 귀를 기울이는 시발점이 된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리센룽 총리는 곧 새 내각을 발표할 예정이다. 2011년 5월 14일, 싱가포르 건국과 함께 50년을 이어 왔던 리콴유와 싱가포르 1세대가 역사 속으로 물러 나고, 싱가포르 2세대가 등장했다.

 

  
각료직 사퇴를 보도하는 일요일자 신문
ⓒ 이봉렬
싱가포르

 

(아래는 공동성명서 원문)

Joint Statement by SM GOH and MM LEE

 

"We have studied the new political situation and thought how it can affect the future. We have made our contributions to the development of Singapore.

 

The time has come for a younger generation to carry Singapore forward in a more difficult and complex situation. The Prime Minister and his team of younger leaders should have a fresh clean slate.

 

A younger generation besides having a non-corrupt and meritocratic Government and a high standard of living, wants to be more engaged in the decisions which affect them.

 

After a watershed General Election, we have decided to leave the Cabinet and have a completely younger team of ministers to connect to and engage with this young generation in shaping the future of our Singapore.

 

But the younger team must always have in mind the interests of the old generation. This generation who has contributed to Singapore must be well-looked af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