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문제 해법은 바로 이것이다.
등록금 마련을 할 수 없어서 피눈물을 머금고 자식들 교육을 포기해야 하는 학부모들, 허리띠를 졸라 매면서 입을 것, 먹을 것 절약해 가면서 사학재단에 바칠 돈을 모아야 하는 학부모들이 있다. 한 학기 대학 다니다가 한 학기 휴학하면서 사학재단에 바칠 돈을 마련하기 위해 하루에 3개의 알바를 하면서도 등록금 마련을 못해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자식들이 있다.
하지만 사학재단들은 그들의 자식과도 같고, 장차 국가의 큰 자산이 될 그 학생들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인간 이하의 심보를 가지고서 부른 배를 더 채우려는 욕심으로 등록금을 한없이 올려 왔다. 그리하여 지난 한 해 동안 그들의 금고에 쓰지 않고 저축해 놓은 돈이 8700억원이나 된다고 한다.
그렇게 힘들게 졸업장을 쥔 그들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교 교문을 나설 때 과연 그들 중 몇명이나 제대로 된 직장에 취업이 되어 청운의 꿈을 쫓을 날개를 활짝 펴고 있을 것인가?
모두 다 아는 사실이니 더 이상 구차하게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조차 없다. 그들 대부분과 그들 가족의 가슴에는 시베리아 벌판에서 불어오는 듯한 차디 찬 바람만 불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무엇을 위해 그토록 고생을 했던가? 휴지 조각에 불과한 이 졸업장을 얻기 위해서 그리도 모진 고통을 감수했던가? 오라는 직장도 없지만, 갈려 해도 갈 곳이 없다.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칭송될 정도의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 왔다. 성장과 더불어 일자리의 수요가 넘치고, 넘쳐 대학은 전공에 관계없이 일자리 공급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성장은 지속되고 있으나 산업구조가 바뀌었다. 공장 자동화와 컴퓨터의 도입 등으로 극도로 고도화된 기업들의 일자리 수요는 격감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대기업의 일자리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우리의 교육은 참으로 왜곡되어 있어서 학력 인플레 현상이 심하다. 교육열이 낮은 나라 입장에서 보면 그러한 현상은 축복일 수도 있겠으나, 늘어만 가는 고학력 청년실업과 외국인 노무자들을 볼 때, 앞으로 인력 수급 왜곡현상은 더욱 더 심해질 것이다.
이 모든 원인은 국가가 장기적인 인력수급 계획을 세우지 못한 채 대학 수와 대학생 수를 조정하지 못하고, 무한정으로 그 숫자가 확대되는 것을 방기한 탓이다. 하기사 인력 공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하는 현상이 계속되어 왔으니 역대 정권을 탓해 무엇하랴?
유럽에서는 그러한 현상이 상대적으로 적다. 왜일까? 거기에서는 고등학교 때에 이미 대학을 진학할 것인가, 아니면 전문 기술학교로 갈 것인가를 결정한다. 고졸이나, 전문대졸이나, 대졸자들 간의 임금 격차가 그리 크지 않고, 직업에 따른 귀천을 따지지 않기 때문에 자기 취미와 적성에 가장 알맞은 진로를 택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최근 통계를 보면 중졸자의 월평균 소득이 250만원, 고졸자의 소득이 350만원, 대졸자의 소득이 500만원으로 나타나 있다. 학력에 따른 소득의 차별화 현상이 뚜렷하다. 더군다나 오랜 유교와 봉건적 관료주의 전통이 아직도 자리 잡고 있어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무조건 대학에 보내고 보자는 경향이 만연하여 있어서 그야말로 죽도 밥도 안 되고 있는 꼴이다.
대학 나와서 비정규직으로 월 88만원 받는 것 보다는 아예 기술고등학교를 진학하여 일찍부터 기술을 익히거나, 고졸 후에 전문대학에 진학해서 전문 기술을 배우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전문대졸 취업률이 대졸보다 월등해서 심지어 대학을 졸업한 후 다시 전문대를 다니는 경우까지 있다 한다.
대학을 졸업하면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이 거의 보장되던 시대는 이미 갔다. 신규 일자리 창출에 있어서 중소기업은 1999년부터 2009년 까지 347만 개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했으나, 대기업은 정반대로 49만 5천 개의 일자리가 감소함으로써 대기업 정규직 취업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를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대학 졸업장을 출세의 필요조건으로 생각해 왔는데, 이제 그 생각을 바꿔야 한다. 원래 서양에서의 대학은 사회에 진출해서 사회인으로 살아 갈 수 있는 기본 소양을 기르기 위한 인문학 교육기관이었다. 전문적인 학문을 연구하는 곳도 아니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해서 회사에 들어가서 국문학이 과연 무슨 소용이 되는가? 필자는 영문학을 전공했다. 영문학과 과정 중에 회사 취업해서 도움이 되는 것은 거의 없다. 영문법 강의라는 것이 있는데, 그 짧은 강의 시간으로는 영문법에 관한 원론 수준도 다 배울 수 없다. 학원 강사 또는 학교 교사하는데도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학원 강의를 하기 위해 다시 영어 공부를 계속해야 했던 필자처럼 졸업 후에 사회에 진출하면 자기와 관련된 기술과 지식을 다시 공부해야 한다.
정말 학문을 하려면 대학원에 진학해서 하는 게 옳다. 그렇다고 해서 대학공부를 소홀히 해서 좋다는 말은 결코 아니지만, 대학에서 전문지식을 교육하지는 않는다는 말을 강조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다.
학문을 하려는 학생들은 대학과 대학원을 거쳐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해서 전문 지식을 익혀야 하나, 그 밖의 학생들은 취직을 위해 구태여 대학에 반드시 진학할 필요가 없다. 특히 그 비싼 등록금과, 4년이란 긴 시간을 투자하고도 취업할 수 없는 요즘에 이르러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실제로 유럽의 경우에는 대학 진학률이 3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등록금도 거의 내지 않는다고 한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우리 교육의 모순점을 살펴보았다. 공급 과잉의 고학력자들과 이로 인한 청년실업 문제가 이로 인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 현장 상황도 그러하다.
중소기업이 1999년부터 2009년 까지 347만 개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했으나, 대기업에서는 정반대로 49만 5천 개의 일자리가 감소하였다. 이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현명한 정책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답은 나왔다. 대학 수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기술계 고등학교와 전문대학 수를 대폭 늘리며, 사회가 그때, 그때 필요로 하는 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퇴직자, 실업자를 위한 재교육 기관의 대폭 증설이 필요하다. 바로 이 방법만이 현재의 국가 전체에 미치고 있는 혼란과 절망의 고리를 끊는 일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마땅히 중소기업 종사자들, 특히 기술자들에 대한 처우 개선이 우선해야 한다는 것은 새삼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자리 문제에 여러 숙제는 남는다. 청년 실업자 문제가 가장 심각하지만, 최저임금제라든가, 비정규직 문제가 그것들이다. 모든 일을 일시에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의 청년 실업과, 그리고 일자리 문제의 근본 원인이 교육구조의 모순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국가의 100년 미래를 위해서 전반적인 대한민국 교육구조에 일대혁신을 해야 할 것이다.
이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어서 정말 소신 있는 지도자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과연 그러한 능력과 소신을 가지고 이를 추진해갈 지도자는 누구인가? 한나라당적인 어정쩡한 진보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지도자로서는 결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머리부터 발 끝 까지 대담한 진보의 생각으로 무장하고 있는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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