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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전두환의 빨갱이 발언

리첫 2011. 8. 20. 12:21
  
귀뚜라미그룹이 지난 3일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공고한 무상급식 주민투표 참여 독려글, 서두에 "최진민 귀뚜라미그룹 회장이 특별한 경우가 없다면 투표에 참여하도록 하라는 지침을 주셨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 진보신당 서울시당
무상급식 주민투표

그래, 나는 빨갱이다. 등록금 못 내는 대학생 편들어도 빨갱이고, 저임금 청소부 격려해도 빨갱이며, 해고노동자 복직을 말해도 빨갱이다. 북한과 대화하자고 해도 빨갱이고, 북한과 전쟁하지 말자고 해도 빨갱이다. 김대중·노무현 칭찬하면 빨갱이고,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이명박 욕하면 빨갱이다.

 

전교조도 빨갱이, 진보정당도 빨갱이, 시민단체도 빨갱이라고 한다. <한겨레>도 빨갱이, <오마이뉴스>도 빨갱이라고 한다. 전라도도 빨갱이라고 하더니, 급기야는 어린이 무상급식에 찬성해도 빨갱이가 되는 세상이 도래하고 말았다. 죄다 빨갱이라고 한다. 그럼 너는 뭐냐?

 

이 땅에서 빨갱이로 낙인찍히지 않는 '안전빵'은 딱 두 가지다. 그것은 친일파에 동조하거나 독재자를 흠모하는 길이다. 물론 친일파에다 독재자를 겸하면 금상첨화다. 그것은 곧 신성한 '반공 파시스트'로 거듭 나는 길이기 때문이다.

 

  
최진민 귀뚜라미 그룹 명예회장.
ⓒ 연합뉴스
귀뚜라미 회장

 

'7월의 귀뚜라미' 최진민 회장

 

귀뚜라미는 보통 8월(음력)이 되어야 울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에 앞서 7월에 울면서 성급하게 가을을 알리는 귀뚜라미가 있다. 그래서 '7월 귀뚜라미'라는 속담이 생겼다고 한다. '7월 귀뚜라미'의 울음은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선(先) 징조'이다. 동시에 때를 모르고 나서는 '방정맞음'의 의미도 갖는다.

 

최진민 귀뚜라미그룹 회장은 영락없이 '7월의 귀뚜라미'다. 그는 이 땅에 반공 파시스트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을 예고해 준 귀뚜라미이며, 동시에 나설 자리도 아닌데 방정맞게 나선 귀뚜라미이다.

 

"빨갱이들이 벌이고 있는 포퓰리즘의 상징, 무상급식을 서울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로 무효화시키지 않으면 이 나라는 포퓰리즘으로 망하게 될 것이며, 좌파에 의해 완전 점령당할 것이다."(최진민 귀뚜라미그룹 회장 공지문 중에서)

 

반대자를 공산주의자로 모는 것은 반공 파시스트들의 보도(寶刀)이다. 그들은 위기를 느낄 때면 어김없이 이 칼을 사용해 국면 전환을 시도한다. 1950년 미국의 상원의원 매카시가 그랬다. 그는 경력위조, 명예훼손, 금품수수, 음주추태 등으로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을 때, "나는 297명의 공산주의자 명단을 갖고 있다"고 주장해 미국 사회를 아연 '적색공포의 시대'로 몰아넣었다.

 

게다가 민주당의 장기 집권에 대항할 수단을 찾고 있던 공화당 측은 이를 민주당과 친민주당 인사들을 공격하기 위한 무기로 이용했다. 그리하여 1950년대 미국에서는 '반공주의 광풍'의 시대가 열리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수만 명의 무고한 사람이 공산주의자 혹은 공산주의에 동조했다고 고발당하여 조사 받고, 정부나 기업의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었으며, 심지어 투옥되기도 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그러나 처벌받은 사람 대부분의 평결은 나중에 번복되었으며, 위헌적으로 공포된 법과 면직 조치 등도 불법으로 판정되었다. 놀라운 것은 매카시의 고발로 기소된 인사 중 아무도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한국은 분단 이래 매카시즘의 천국이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등은 매카시즘을 전가의 보도처럼 이용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 들어 이 망령이 부활, 창궐하고 있다. 정통성이 결여되거나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못한 정권일수록 매카시즘에 의존하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한상대 검찰총장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상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김소남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아 공개한 '국가보안법 위반자 현황' 자료에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2007년 해마다 30여 명에 불과했던 국보법 위반자가 이명박 정부 들어 급증, 지난해에는 무려 151명을 기록했다. 

 

"종북좌익세력을 뿌리 뽑아야 합니다.(중략) 북한을 추종하며 찬양하고 이롭게 하는 집단을 방치하는 것은 검찰의 직무유기입니다. 시대착오적인 위선과 기만을 외면하고 용인하는 것은 체제수호자가 할 일이 아닙니다. 이 땅에 북한 추종세력이 있다면 이는 마땅히 응징되고 제거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통일 기반을 마련하는 첩경인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공안역량을 정비하고, 일사불란한 수사체제를 구축하여 적극적인 수사활동을 전개해야 할 것입니다. 종북주의자들과의 싸움에서는 결코 외면하거나 물러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한상대 검찰총장 취임사)

 

그들이 잘 모르는 것 세 가지, 자유와 변화와 연민

 

한상대 검찰총장은 도덕적으로 하자가 많은 인사였다. 하지만 이보다 더 특기할 사실은 파시스트들은 주제 파악도 없이 거의 모두가 '체제 수호자'로 나선다는 점이다. 검사가 할 일은 범죄자를 수사하고 기소하는 일이다. 헌법과 법률 어디에서도 검찰에 체제 수호의 임무 따위를 맡기지 않았다. 그런데 한 총장은 스스로 체제 수호자임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곧 반공파시스트들이 지닌 국가주의적 속성이다.

 

최근 <조선일보>의 EBS 강사에 대한 빨갱이 몰이(관련기사 - <조선> "역사는 최태성!" 칭송...8일만에 빨갱이?), 어버이연합의 희망버스에 대한 백색 테러 협박, 백만민란프로젝트 대표 문성근씨와 그의 부모 문익환 목사 부부에 대한 빨갱이 폭언 등은 정부가 벌이는 비정상적인 체제수호 기도와 같은 선상에 있다. 이런 분위기가 창궐하면 평범한 사람들, 속된 말로 개나 소나 나서서 빨갱이 몰이에 가담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런 점에서 집회 참석 중인 정동영 의원에 대한 한 여인의 '빨갱이 폭력'이 의미하는 바는 자못 섬뜩한 것이다.

 

마침내 정치나 이념과는 하등 관련이 없는 보일러 회사 회장까지 나서서 빨갱이 몰이에 가담하게 되었으니 우리는 참으로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치밀어 오른다. 대한민국이 낳은 걸출한(?) 파시스트 전두환의 고교 후배이기도 한 최진민 회장은 여러모로 반공파시스트의 전형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조선일보> 지난해 2월 13일 10면.
ⓒ 조섬일보PDF
조선일보

최 회장은 '사업에서 망하지 않고 인생에서도 실패하지 않는 제 나름의 지침서 16조'를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그 중 몇 가지만 들여다보면,

 

'친구를 조심해야 한다'가 제1조로 나온다. '친구는 쉽게 질투하고 변심도 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상대에게 자신의 의도를 감추라'(2조), '사업은 전쟁이다'(4조), '불행·불운한 사람은 피하고 행복하고 운 좋은 사람을 가까이 하라'(5조), '이길 수 없을 때는 즉시 항복해 다음 기회를 노려라'(8조), '고기를 잡으려면 물을 휘저어야 하듯이 상대를 분노하게 해 허점을 노려라'(12조) 등이 있다.

 

결국 이 지침은, '의심 많고 음험하며 타인을 이용의 수단으로 보고 상대를 분노케 하여 약점을 노려야 한다'는 점 등을 미덕으로 삼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이렇게 저열한 것을, 저열한 줄도 모르고 무지하게 강연까지 하고 다녔다고 하니 그의 인격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의 모습에는 그의 고교 선배 전두환의 '작은 모습'이 담겨 있다.

 

'무지'는 파시스트들의 일반적인 속성이다. 그는 OECD 대부분의 나라에서 실행 중인 '공립학교 무상급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 그는 "어린 자식들이 학교에서 공짜 점심을 얻어먹게 하는 건 서울역 노숙자 근성을 준비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같이 그들은 자유와 변화와 연민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반공 파시즘이 무서운 이유

 

반공 파시스트들은 모든 비판적 생각과 운동, 주류 이탈적 사고나 행위는 좌경·불순·종북 혐의로 즉각 연결한다. 그들의 '좌'에 대한 알레르기성 반응은 스탈린주의는 물론이고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모든 진보적 사상을 동일한 적으로 간주한다. 반공 파시즘이 무서운 것은 이것이 소수 파시스트에 국한하지 않고 평범하고 선량한 다수 국민을 급속도로 감염시킨다는 점이다.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을 폭행한 여성이 행사관계자들에게 붙잡혀 끌려 나오고 있다.
ⓒ 최윤석
정동영 의원 폭행

70년 가까이 반복, 재생산되어 온 대한민국의 반공주의 동선은 부당한 현실을 눈으로 보면서도 그저 순응하고 사는 버릇을 습득시켰고, 부당함에 대한 도전이 당사자에게는 고독과 고통을 안겨줄 것이라는 불안감을 조성했으며, 집단적 범죄 행위에 대한 동참을 조장하는 기형적인 문화를 공고히 해왔다.

 

사회학자 권혁범 교수는, '한국인에게는 아직 권력자와 국가를 분별하는 능력이 형성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국가주의의 주술은 생각보다 무섭고 놀라운 것이다. 그것은 우선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켜 반이성으로 이끌며, 인간이 지닌 영혼의 가장 중요한 능력인 연민을 앗아간다. 만일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우리의 의식을 분리시켜 내지 않은 한, 우리는 잠수정을 타고 온 북한 젊은이들을 우리의 군인들이 무자비하게 죽이는 광경 앞에서도 영혼의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권혁범 논문, '내 몸 속의 반공주의 회로와 권력' 중에서)

 

그리하여 대한민국의 평범하고 선량한 다수 국민은 흔히 이런 말을 주워섬기게 되었다.

 

"너 혼자 그래 봐야 너만 손해야. 세상이 바뀌겠냐?"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세상이 다 그런 거지."

"너나 나나 다 그렇게 뜯어먹으며 사는 거지. 도덕군자라고 별 수 있겠어?"

 

얼마 전 나는 술자리에서 '좌파'라는 말을 들었다. 오래 알고 지낸 선량한 그분이 나에게 '좌파'라고 한 이유는 내가 해고 노동자 김진숙을 두둔하는 글을 썼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그들은 대체로 심성과는 상관없이 '이념 지향적'이다.

 

"선생님은 수구꼴통입니다."

"내가 왜 수구꼴통이냐?"

"나를 좌파라고 한다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나는 여태 글을 쓰면서 나에게 '빨갱이'라고 하는 댓글을 수도 없이 접했다. 빨갱이라고 쪽지나 메일을 보낸 부지런한 독자도 적지 않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분들께 답변하련다.

 

"그래, 나는 빨갱이다. 그럼 너는 파시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