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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마흔에 영어학원

리첫 2011. 9. 16. 16:25

"누구나 자기 삶에 있어서 의미 있는 그 무엇을 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누구나 다 자기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가고자 하지요. 신자유주의의 문제는 이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개인적 관점에서 예각적으로 신자유주의 문화를 살펴보는 방식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지요. 이것이 세넷의 장점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키워드로 불안을 꼽는다. 학생, 직장인 할 것 없이 매일매일 극심한 경쟁에 시달리며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불안은 항상 등에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한국사회는 왜 이런 모습이 되었을까? 이같은 질문에 대해 미국의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 <뉴캐피탈리즘>에서 신자유주의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14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뉴캐피탈리즘>을 교재로 '사회학 고전읽기' 시즌3 네 번째 특강을 열었다. 김 교수는 "세넷이 정의한 신자유주의 문화는 개인으로 하여금 자기가 뿌리박고 있는 것에서 이탈하고, 표류하게 하는 것"이라며 "그는 경험적 연구를 통해서 이를 설득력 있게 이끌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자유주의가 인간의 자유 후퇴시켜"

 

세넷은 노동사회학과 산업사회학을 전공했으며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 <불평등사회의 인간 존중>, <뉴캐피탈리즘> 등을 통해 신자유주의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심도 깊은 연구를 계속해 온 사회학자다. 사회학자이면서 독특하게도 문화인류학적인 방법론을 통해 노동자들의 일과 생활을 분석하는 작업을 게속해 온 세넷은 최근작인 <뉴캐피탈리즘>에서 관료제의 변화와 능력주의, 퇴출의 공포, 정치의 몰락, 우리 시대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자질에 대해 다루고 있다.

 

김 교수는 "<뉴캐피탈리즘>의 원제는 'The Culture of the New Capitalism'인데 여기서 문화는 인류학적인 개념으로 '특정한 어느 집단의 생활양식으로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무엇'"이라며 "세넷은 이 책을 통해 신자유주의의 문화적 특성을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이론적으로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의 새로운 버전이지요. 고전적 자유주의가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를 중시했다면,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개입에 맞서는 시장에서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래서 경쟁은 신자유주의의 기본원리이자 자본주의 생산, 재생산을 담당하는 조정원리로 자리잡았지요. 이러다보니 신자유주의 아래서 경쟁은 하나의 미덕이 되었고, 무한경쟁은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 되었습니다."

 

보통 경쟁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뛰어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21세기 노동시장에서 노동자의 뛰어난 잠재력이란 숙련된 기술, 어느 일을 맡겨도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젊은 나이와 재능을 의미한다. 김 교수는  "노동의 관점에서 볼 때 잠재력은 다양한 과제나 주제를 옮겨 다니며 처리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며 "나이 많은 노동자를 우대해주지 않는 사회 분위기와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 자체가 줄어든 마당에 전 세계의 젊은 노동자들과 무한 경쟁을 해야 한다는 현실은 어느 날 갑자기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퇴출의 공포'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실제로 최근 미국 직장인들의 연봉 분포가 30대 후반에서 가장 높은 경향을 보이도록 이동하고 있는데 이는 50대에 가장 높은 연봉을 받던 지금까지의 상황과 매우 다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은 재능과 성장잠재력이 강조된 사회를 만든다. 김 교수는 "신자유주의의 무한 경쟁 속에서 우리는 당장 생존에 급급해서 단기적인 문제에만 관심을 갖고 장기적인 문제에는 관심을 가지기 어려워진다"며 "수시로 다양한 멀티테스킹이 요구되기 때문에 조직에서 동료와 장기간 신뢰나 연대를 쌓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신자유주의 사회의 특징인 구성원들의 불안도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자기가 하던 것, 뿌리박고 있던 것에서 끊임없이 이탈을 요구받다 보니 표류하게 되고 표류의 끝은 불안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애기다. 김 교수는 "세넷은 <뉴캐피탈리즘>에서 노동, 재능, 소비의 관점에서 새로운 자본주의가 인간의 자유를 후퇴시키고 있다고 응답했다"고 말했다.

 

'자기 이야기' 만들 수 있는 사회 되어야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사회의 개인들은 어떻게 해야 표류하지 않을 수 있을까? 김 교수는 "세넷은 신자유주의 문화에 맞서기 위해 쉽게 표류하지 않을 정신적, 정서적 닻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며 "사건과 경험의 축적, 개인 유용성의 발휘, 장인정신이 그 닻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선 개인들이 자기 삶에 있어서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어야 부유하거나 표류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경험의 지속적인 축적이 필요한데, 신자유주의 문화에서는 개인이 혼자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에서 국가나 사회가 제도적 지원을 해야지요. 이를테면 일을 계속 할 수 있도록 일자리 나누기, 취업지원을 하거나 여성노동자에게는 탁아 보조를 해주는 것입니다. 한 개인에게 장기적 관점에서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계속 구성하고 진행시켜 나가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김 교수는 "공공서비스 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집에서 일하는 주부를 포함한 일련의 사회적 활동에 사회가 정당한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도 꼭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이 일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대가를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의 기쁨을 느끼거나 사회적 존재로서 자신의 유용성을 확인하기 위한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세넷은 이와 더불어 일에 대한 헌신 속에서 성취감과 기쁨을 느끼는 '장인정신'이 발휘될 수 있도록 이런 가치들이 주목받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며 장인정신을 체험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회운동으로 귀농활동을 꼽았다. 그는 "현대 자본주의 하의 노동과정 속에서 쉽지 않은 과제지만 사실 퇴출의 공포를 몰아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장인정신의 회복"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신자유주의 사회로서의 한국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김 교수는 "한국은 소수의 사회적 강자가 다수인 사회적 약자들의 삶 전체를 신자유주의가 강제하는 경쟁력 증진에 헌신하게 만드는 사회"라며 "이런 사회의 특징인 내적인 불안감의 증대가 우리 사회에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불안하지요. 우리 사회에 최근 등장한 대박주의나 영웅주의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곤궁한 현실을 일거에 해결해 경쟁의 사다리를 단숨에 올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밤 10시가 넘어야 집에 돌아오는 아이들, 취업 못하는 청년들, 마흔이 되어서도 영어 학원을 들락거려야 하는 장년 세대의 삶 등이 신자유주의 하의 우리 사회의 현주소지요. 신자유주의가 가지고 온 인간적인 삶의 상실과 함께 세넷이 분석한 능력주의, 퇴출의 공포가 한국사회 현실에서도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신자유주의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시스템임은 분명하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차원에서 신자유주의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사회 시스템이 있어야만 한다"며 "한국의 경우 적극적인 재벌, 노동, 복지 부문을 통합하는 개혁 패키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사회 제도적인 개선 이외에도 각각의 개인이 경쟁 지상주의와 물질 만능주의 등 신자유주의 문화로부터 과감히 결별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신자유주의를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하며 강의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