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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장수 비결

리첫 2014. 3. 6. 17:43

 

영조의 장수 비결

 

영조의 특이 체질에 숨겨진 비밀

 

조선시대 여러 왕 중에서 가장 ‘문제적 인간’은 누구일까? 나는 영조를 꼽고 싶다. 무수리 출신의 아들로 신분 콤플렉스에 맞서서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한 시대를 살았던 인물, 당쟁의 폐해를 일찌감치 간파하고 그것을 극복할 탕평책을 제시한 인물.

 

몇 가지만 열거해도 영조가 얼마나 ‘문제적 인간’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삶을 살피면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신을 형인 경종의 살해범으로 규정한 ‘임인옥안(壬寅獄安)’을 작성한 소론 세력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민 부분이다. 그가 만약 소론 세력을 척살했다면, 탕평책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으리라.

 

어머니 숙빈 최씨가 무수리 출신이다 보니 영조의 출생을 놓고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는 진짜 숙종의 아들이엇을까? 아니면 숫빈 최씨와 유난히 가까웠던 김춘택이 진짜 아비는 아닐까? 많은 야사는 영조가 숙종의 아들이 아닐 것으로 추정한다. 가장 큰 근거는 영조의 외모가 숙종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조는 특별했다. 그는 아버지 숙종, 형 경종은 물론이고 아들 사도세자, 손자 정조와 성격과 체질이 전혀 달랐다. 또 그는 여든세살까지 살아 조선 시대 왕 중에서 가장 장수했다. 비교적 단명하는 왕이 많았던 것을 염두에 두면 이 역시 특별한 일이었다. 체질을 들여다보면 더욱더 흥미롭다.

 

몇 차례 살펴봤듯이 조선 시대의 왕들은 불같은 성질을 이기지 못해 화병을 앓았고, 심지어 화병의 결과인 종기로 죽는 경우가 많았다. 영조의 아버지 숙종부터가 그랬다. 실록은 숙종 14년(1688년) 7월 16일 숙종의 건강 상태를 이렇게 전한다. 전형적인 화병 증세다.

 

이때에 왕의 노여움이 푹발하고 점차로 번뇌가 심해져, 입에는 꾸짖는 말이 끊이지 않았고, 밤이면 또 잠들지 못하다, 마음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곤란할 정도로 번뇌가 심했다.

 

숙종이 평생을 두고 호소한 질병은 산증(疝症)이다. 산증은 아랫배에 병이 생겨서 배가 아프고 대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증상이다. “동의보감”은 이 병의 원인을 이렇게 설명한다. 전형적인 화병의증상이다.

 

대체로 성을 몹시 내면 간에서 화가 생긴다. 화가 몰린지 오래되면 내부가 습기로 차가워지며 통증이 심해진다.

 

숙종의 장남 경종도 아버지의 체질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경종 2년(1722년)에 이런 기록이 있다. 그 역시 화병을 앓은 것이다.

 

왕이 도승지의 공사를 읽다가 화열이 오르고 심기가 폭발했다.

 

그러나 영조는 화병을 앓는 이들에게 상극인 인삼 처방을 가장 애용했다. 그가 노년에 10년 동안 복용한 인삼이 100근에 달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영조 41년(1765년)의 기록을 보면, 매일 8.8돈(30그램)이나 되는 엄청난 양의 인삼을 복용했다. 영조가 다른 왕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았던 것도 아니다. 이복 형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혹을 평생 안고 살았을 뿐만 아니라, 무수리 출신인 어머니에 대한 콤플렉스도 엄청났으리라.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 죄책감은 또 어떤가. 평범한 인간으로는 감내하기 어려운 스트레스에 평생 시달렸다.

 

그렇다면 영조의 체질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것을 가지고 영조가 숙종의 아들이 아니라는 속설을 받아들일 수 는 없다. 조선 왕실의 계보를 따라가며 병력을 조사해 보면 영조의 손자였던 정조는 숙종, 경종, 등 전대 왕과 똑같은 체질을 가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도세자도 마찬가지로 화가 가득한 체질이었다. 손자인 정조는 말할 것도 없다. 그는 화를 내리는 가미소요산, 우황, 금은화를 밥 먹듯이 먹었다. 또 화가 많아서 소량의 인삼도 극도로 경계해 복용하지 않았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인삼을 기피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영조는 숙종의 자손이되 어머니의 체질이 도드라진 이였다고 짐작할 수 있다. 영조의 체질은 소음인으로 짐작되는데, 그 이유는 평생에 걸친 그의 식습관 때문이다. 그는 소식은 기본이고, 기름진 음식과 술을 피하는 절제된 식습관을 평생 고수했다. 소화 기능이 약한 소음인 체질 때문에 자기한테 맞춤한 식습관을 실천한 것이다.

 

영조는 숙종과 동이(숙빈 최씨)라는 남다른 재주를 가진 아버지와 어머니를 둔 행운아였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로부터 건강 체질을 물려받는 행운을 누렸다. 이런 행운과 함께 그는 조선 왕으로서는 드물게 자기 절제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개인적인 장수와 조선의 르네상스로 이어졌다. 물론 그 르네상스는 손자 정조 때 꽃피자마자 지고 말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