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달인전(200년전 이땅의)--윤태헌(尹泰憲)
윤태헌은 토목국장 윤진석(尹瑨錫)의 아들로서 1894년 10월 22일 영어학교에 입학하여 졸업 후 부교관에서 교관으로 승진(1906.9.1)하여 서기를 겸임(1906.9.11-1907.12.1)하다가 교장 대리로 있었으며 외국어학교 때는 학원감을 지냈는데 폐교 뒤에는 중앙, 중동, 휘문고보의 영어선생과 보성전문학교(고려대학교 전신), YMCA학관, 수창동(需昌洞)에 있던 협성(協成)학교의 여름 영어 강습회(1920.7.15-8.30)의 영어강사도 지냈는데 성품이 순박하고 평생을 영어교육에 헌신한 그는 “영문전자통(English Grammar for Private Students)”을 남겼다.
중동학교의 1회생으로서 22세부터 10년간 모교의 영어 선생을 지낸 윤제술(尹濟述) 옹과 오화섭(吳華燮:1916-1979)<* 고려대학교, 부산대학교, 연세대학교의 영문학 교수로 재직하였고, 영어영문학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한국셰익스피어협회 이사로서 셰익스피어 연극의 한국 소개에 힘썼다.>교수도 중동학교에서 그로부터 영어를 배웠고 외국어학교 영어부 출신 이희승(李熙昇) 박사는 외국어학교와 중앙학교에서 전후 두 번이나 배웠다. 오화섭은 “일백명이나 되는 교실에 끼어 앉아 있노라니까 흰두루마기를 입으신 선생님이 들어오신다. 지금 기억으로는 그 분의 이마가 넓으신 편이었다. (중략) 그 분이 바로 영어 선생님었다. (중략) 그 분은 윤태헌 선생님이셨다. ‘자, 영어를 배우자.’ 우리는 알파벳 이전에 만국음표문자(International Phonetic Signs)를 먼저 배웠다. (중략) 나는 나중 그 선생님의 발음이 영국식(* 허치슨과 핼리팩스로부터 영국식 영어를 배웠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중략) 저학년일수록 경험이 있는 분이 가르쳐야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회고하였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