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食傳(식전)--우리가 고추에 미친 까닭

리첫 2016. 8. 8. 11:29

食傳(식전)--우리가 고추에 미친 까닭

 

우리가 먹는 고추의 과육은 씨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에게 불용한 물질들을 배출하는 곳이다.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이 고추의 종자를 보호하는 이득은 다른 동물들이 그 매운맛 때문에 씨앗까지 먹어버리는 일이 없다는 점이다. 매운맛이 씨앗 보호용이라는 것은, 고추 안의 씨앗이 달린 태좌라 부르는 흰 곳이 고추에서 가장매운 곳이라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생체 내에서 쓸모없는 것을 버리고 다른 동물이 씨앗을 먹지 못하게 보호하는 역할까지 하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이 캡사이신이 이상한 동물인 인간의 눈에 띄면서 고추는 전 세계를 여행하게 되었다.

 

고추는 종류가 아주 많다. 피망과 같이 매운맛을 거의 느낄 수 없는 종자도 잇고, 파프리카처럼 단맛에다, 빨강, 노랑으로 시각적 효과까지 뛰어나 샐러드에 많이 쓰이는 종자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방마다 지명이 붙은 고추가 있을 정도로 종류가 여러 가지다.

 

하지만 우리가 주로 먹는 고추는 매운맛보다 단맛이 우세한 종자들이다. 물론 청양고추처럼 아주 매운 것을 즐기기도 하지만 이것조차도 멕시코나 일본의 작은 고추에 비하면 매운맛이 훨씬 떨어진다. 보통 우리가 김치에 넣는 고추는 매운맛보다는 단맛이 강한 고추가 대종이다.

 

우리나라에 고추를 전해준 것은 일본으로 알려졌다. 일본에는 고추가 16세기 중반에 전해졌지만 우리에게 전해진 것은 대략 17세기 초반으로 본다. 일본에서의 고추는 그 쓰임새가 그리 크지 않다. 본래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는 특성 때문인지 우동에 들어가는 고춧가루와 장아찌 외에는 별다른 용도가 없고, 나중에 스시에 첨가하는 향신료도 고추냉이의 뿌리를 간 와사비를 쓴다.

 

한국이 고추에 열광적이게 된 것은 아마도 산초와 초피를 즐기던 입맛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산초나 초피는 일부러 기른다 하더라도 많은 수확을 올릴 수 없고, 후추는 수입해야 해서 가격이 높았다. 하지만 고추는 가짓과에 속한 식물이라 가짓과 특유의 풍부한 생산력을 자랑한다. 고추를 길러보면 한 그루의 고추에서 얼마나 많은 열매가 매달리는지 감탄스럽다. 이런 이유로 고추가 단시일 안에 대체작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매운 것은 먹던 사람이 잘 먹고 찾게 마련이니, 매운 산초에 입맛을 들인 사람들은 고추도 손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의 사천과 운남이 고추를 즐기는 지역이 된 것도 이전부터 매운 것을 즐기는 음식 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이탈리아 반도도 중세 때부터 후추의 사용량이 가장 많은 곳이었다.

 

하지만 멕시코나 중국의 운남, 사천 지방에서는 입이 얼얼할 정도로 강도가 훨씬 센 고추를 먹는다. 적당히 맵고 단맛이 비교적 풍부한 고추의 맛을 즐기는 지역은 우리나라 대표적일 것이다. 우리의 매운맛이 다른 지역들보다 훨씬 보편적이라는 뜻이다.

 

차마 끊을 수 없는 매운맛 중독

 

맛에는 중독성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먹던 것을 먹던 방식으로 먹는다. 사람의 입맛 가운데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가장 중독성이 강한 것이 바로 짠맛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바다에서 태어난 생명체의 한계 때문에 우리 몸은 소금 없이는 작동하지 못한다. 소금을 섭취하라는 유전자의 명령인지 몰라도 사람은 짠 것에 대한 근원적인 욕구가 있다.

 

음식 간이 싱거우면 잘 먹지 못하고, 도 이 짠맛에 길들면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한 자꾸 더 짠 것을 찾는 경향이 잇다. 생활수준이 올라가 음식의 섭취와 양이 증가할수록 짠맛이 강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다음으로 중독성이 강한 맛은 단맛일 것이다. 단맛에 한번 길들고 난 다음에는 쉽사리 끊지 못한다. 뚱보들은 몸에 좋지 않다는 경고에도 열심히 단것들을 찾는다. 청량음료에 입맛을 길들이면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매운맛에도 중독성이 있다. 유럽에서 후추가 필수품이 된 데에는 고기의 풍취를 더해준 면도 있지만 매운맛도 한몫했을 것이다. 멕시코의 음식도 맵기로는 악명이 높지만 타바스코소스의 유행처럼 매운맛에 익숙해지면 더 매운맛을 찾는다. 매운 김치와 고추장도 한번 맛을 들이면 계속 찾게 된다.

 

처음에는 매운맛에 놀라움을 표시하던 사람들도 차츰 익숙해지면 매운 것이 없이는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된다. 우리의 매운맛은 단맛과 어우러진 매운맛이다. 지금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불닭이 그렇고 떡볶이가 그렇다. 떡볶이는 원래 매운맛이 없는 음식이었다. 그것이 대중화하면서 자연스럽게 고추장이 첨가된 것이다.

 

고추장의 매운맛은 복합적인 매운맛이다. 메주의 구수함에 곡식을 삭힌 단맛, 고추의 매운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세계적인 소스로 발전할 수 있는 높은 단계의 소스다. 여기에 식초를 첨가해 초고추장을 만들면 신맛이 하나 더 추가된다. 서양의 핫소스와 비교해 봐도 훨씬 풍부하고 깊은 맛을 지니고 있다. 다만 아직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 맛에 익숙해지지 않았을 따름이다.

 

고추장의 미래를 위한 제언

 

그런데 고추장 자체가 공장제품으로 변모하면서 너무나 단순한 고추장만 판치는 게 아쉽다. 예전의 고추장은 지방마다 집집이 곡식도 찹쌀, 보리, 수수, 팥, 고구마와 같이 다양한 재료를 써서 맛을 돋우었고, 부재료도 누룩이나 엿기름을 쓰거나 말린 생선, 다시마, 미역을 첨가하는 등 다양한 맛을 지니고 있었다. 공장제품이라고 해서 이렇게 다양한 시도를 못하라는 법은 없다. 여기에 서양 사람들이 좋아하는 여러 향신료와 식초를 첨가하면 전 세계인이 즐기는 고추장으로 거듭날 수도 있다.

 

덧붙여, 고추장은 서양이나 다른 곳에서 소스로 쓰기에는 형태가 문제가 된다. 우리에게는 된장과 비슷한 형태이니 문제가 될 게 없지만, 반고체 상태인 형태로는 사용에 여러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고추장의 유동성을 강화해 여러 형태의 음식에 쓰게 한다면 쓰임새가 더 늘어날 것이다.

 

김치와 자장면에서 보듯, 새롭고 참신한 맛의 개발에 재주가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루지 못할 것은 없다. 짠맛, 단맛, 구수한 맛, 신맛, 매운맛이 어우러진 다양한 고추장을 맛보고 싶다. 고추장은 가장 중독성이 강한 짠맛, 단맛, 매운맛, 아미노산의 맛을 포함하고 있기에 충분히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고구려의 말발굽과 수레가 드넓은 만주 벌판을 달렸듯, 고구려의 산물인 메주에 한반도의 천일염과 떡과 고추가 보태진 고추장이 드넓은 세계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아주 매혹적인 맛으로 다가갈 때를 기다려본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