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食傳(식전)--생명의 근원에서 맛의 근원으로

리첫 2016. 8. 11. 12:55

食傳(식전)--생명의 근원에서 맛의 근원으로

 

소금의 사용이 농경시대의 산물이라면 어쨌거나 문명의 발생과 관련되었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하지만 소금에는 생리적 작용 이외에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소금을 생리적 필수품으로 여긴다면 소금은 한 사람당 1년에 1킬로그램의 소금이면 충분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의 몇 배가 넘는 소금을 소비한다. 이렇게 많은 소금을 사용하는 까닭은 소금이 지닌 짠맛의 매력에 있다. 진화의 과정이 몸에 필요한 소금을 섭취하도록 짠맛에 대한 욕구를 입맛에 심어놓았겠지만, 이제는 이를 훨씬 넘어 짠맛 자체의 매력에 흠뻑 빠진 것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 조난당해 홀로 남게 된 사람이 짐승을 잡아먹어 고기에 들어 있는 염분과 영양으로 연명했다면 영양상으로는 큰 문제가 없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가 다시 문명으로 돌아온다면 그냥 고기가 아닌 소금을 친 것을 먹을 게 분명하다. 그 맛이 야생의 고기와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소금을 찾는 것은 본능이겠지만 소금은 이처럼 음식 본연의 맛과 어울려 맛을 향상시키는 놀라운 작용을 한다. 고기뿐만 아니라 곡식, 채소 등 어떤 재료와도 어울려 우리 입맛을 유혹한다. 또 그냥 찍어 먹으면 너무 짜고 쓰기까지 하지만 다른 맛과 어울리면 기가 막힌 맛을 내는 것이 바로 소금이다. 실제로 우리가 먹는 음식 가운데 소금이 들어가지 않는 음식은 거의 없다. 술, 차, 커피, 과일과 같은 기호품을 빼고는 거의 모든 음식에 소금을 넣는다. 심지어는 여름에 토마토나 수박을 먹을 때에도 소금을 뿌려 먹는다.

 

김치를 담글 때도 우선 소금에 절여야 한다. 김치를 짠지라고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잇다. 소금에 절인 푸성귀는 자체적으로 유산발효를 하여 신맛을 지닌 김치가 된다. 우리 밥상에 오르는 나물도 소금기 없이 싱겁다면 반찬으로는 낙제점을 받을 것이다.

 

생선이나 고기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구워 먹을 때에는 소금을 뿌려야만 제 맛이 난다. 생선과 고기의 본디 맛에다 소금이 어우러져 한층 더 고급스러운 맛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고기를 가장 싱겁게 먹는 방법인 수육조차도, 비록 삶을 때에는 간을 하지 않더라도 김치나 새우젓, 또는 된장 같은 짠맛과 함께하지 않으면 먹기 어려울 것이다.

 

밥에는 소금을 쓰지 않지만 그것은 소금기 있는 반찬과 함께 먹기 때문이다. 오곡밥을 지을 때는 소금을 약간 넣어 짭짜름하게 한다. 반찬과 함께 먹기는 하지만 오곡밥은 자체로의 맛을 즐기는 것이기에 그렇다. 맨밥은 먹기 어려워도 소금기가 있는 주먹밥은 그런 대로 먹을 만하다.

 

단독으로 먹는 떡을 만들 때에는 조금이나마 소금으로 밑간을 하게 마련이다. 미량의 소금간은 단맛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백설기를 만들 때 소금을 넣지 않는다면 설탕을 많이 넣어도 단맛이 살아나지 않는다. 짠맛 자체는 모든 식품의 맛을 살리고 단맛, 신맛, 매운맛 등 모든 맛과 잘 어울리는 맛이다.

 

손님 가신다, 소금 뿌려라!

 

소금의 용도는 단지 몸에 꼭 필요한 이온을 공급하고 짠맛을 보태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식품의 보존에도 커다란 역할을 한다. 생선을 소금에 절인 젓갈은 보존기간이 엄청나게 길어진다. 소금이 음식을 썩게 하는 미생물의 발생을 막기 때문이다.

 

생선에 소금을 부려 보존한 굴비와 간고등어는 내륙 사람들에게도 생선 맛을 볼 수 있게 했다. 냉장시설이 없던 옛날에는 고기의 보존에도 소금이 귀중한 존재였다. 소금과 숯의 연기를 통한 훈제는 고기의 보존기한을 한층 늘어나게 했다. 지금은 흔하지 않지만 동북아 지역에는 고기를 염장한 육젓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소금이 풍부했고 고기와 생선, 콩이 있었기에 세계적으로 흔치 않은, 여러 장이 함께 존재한 지역이다. 장류는 보통 단백질을 기본으로 하기에 육장, 두장, 어장으로 나눌 수 있다. 지금은 흔치 않지만 우리에게는 동북아의 전통에 따라 육장도 있었으며, 콩의 원산지인 만주 덕분에 두장인 딘장과 간장을 담갔으며, 서, 남해안의 풍부한 물고기 덕분에 어장도 존재했다. 그뿐 아니라 다양한 젓갈도 있었기에 나중에 풍성한 김치가 탄생할 수 있었다.

 

채소의 보존에도 소금은 큰 역할을 한다. 온대 지방의 사람에게 추운 겨울 채소의 부족은 비타민결핍을 불러오는 중대한 문제였다. 옛날 사람들도, 비타민의 존재는 몰라도 채소를 먹지 않아서 오는 몸의 이상은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채소를 염장해 겨울철에 적절한 비타민을 공급했다. 김치로 대변되는 염장 채소들은 그 형식과 내용이 제각기 다르지만 거의 모든 온대 지방에서 발견되는 겨울철 보존법이다. 게다가 사람에게 유용한 젖산균 같은 미생물이 이 음식들을 더욱 풍요롭게 했다.

 

고대의 사람들이 미생물까지는 몰랐더라도 이 대단한 소금의 작용은 알고 있었다. 소금의 보존효과는 종교에 이르기까지 대단한 역할을 한다. 서양의 성서에서는 ‘빛과 소금’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을 지칭하는 현란한 용어로까지 발전한다.

 

우리에게도 소금의 정화기능은 신과 같은 존재였다. 무당의 굿에서도 쌀과 소금이 등장하고, 오줌을 산 아이들에게는 키를 씌우고 이웃집에서 소금을 얻게 했다. 재수 없는 손님이 왔다가 가면 가게에서는 소금을 뿌려 액운을 쫓는다. 이런 소금의 신앙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사우나에서 소금으로 양치질하고 소금을 온몸에 문지르며 건강한 삶을 간구하는 것이다.

 

소금의 불순물이 두부를 만들다

 

소금처럼 우리 몸에서나, 맛에서나, 식량의 보존에서나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없다. 하지만 이 짠맛의 강렬한 유혹은 건강을 해치는 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소금의 과잉섭취가 심장병을 비롯해 많은 병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짠맛의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소득 수준이 올라가고 잘 먹을수록 대체로 짜게 먹는 경향이 있다. 과거 유럽의 오스트리아 같은 곳에서는 짜고 단 음식이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내륙은 소금이 비싸고 귀하기에 부유층만이 누리는 특권이었기 때문이다. 설탕이나 꿀도 그러 했다.

 

소금의 중요성을 알기에 값비싼 소금도 등장한다. 어떤 죽염은 거의 약값처럼 비싸다. 하지만 이는 소금 정제의 한 단면일 뿐이다. 바닷물로 만든 천일염에는 마그네슘을 비롯한 여러 불순물이 섞여 있다. 이 불순물이 소금에서 쓴맛이 나게 하기 때문에, 불에 굽거나 다시 녹여 불순물을 침전시키는 등 정제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섞인 불순물은 오히려 우리 몸에 미량의 미네랄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서 지나치게 정제하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정제과정이란 그다지 어려운 게 아니다. 염전에서 생산한 천일염을 쌓아두기만 해도 공기 중의 수분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불순물이 녹아 나온다. 이를 간수라고 하는데 염화마그네슘, 염화칼륨과 같은 것들이 그 성분이다. 이 간수는 아무 쓸모가 없는 것 같지만 콩을 갈아 끓인 두유와 반응해 단백질을 응고시키는 역할을 한다. 소금을 만드는 과정에서 녹아 나오는 불순물이 다시 새로운 식품, 두부의 탄생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또한 간수를 밀가루 반죽에 섞으면 훨씬 쫄깃한 국수를 뽑을 수 있다.

 

소금은 그 자체로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필수품이고, 맛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소중한 것이며, 그 부산물조차 우리 입맛을 즐겁게 한다. 바다를 보면 가슴 뭉클한 감흥을 느끼듯 우리 몸과 마음과 맛까지도 바다를 떠날 수 없다.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이 소금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