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못해? 그럼 글로비쉬로--글로비쉬는 이렇게 시작
국제 업무를 맡고 있던 나는 특히 1990년대에 여러 나라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마련하며, 진행사항을 점검하는 것이 나의 주된 임무였다.
그러던 차에 미국 IBM의 유럽 본부 부사장을 맡게 되었는데, 당시만 해도 미국의 유명한 다국적 기업인 IBM에서 국제 업무를 맡고 있는 책임자들은 거의 대부분 미국인이었으므로 프랑스인인 내가 국제 마케팅부의 대표씩이나 맡게 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정말 대단한 집안 출신이거나 미국의 애국가인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줄줄이 부를 정도가 아니면 쉽지 않은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승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낙하산 인사 때문도 아니고, 고급 영어를 구사하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었다. 당시 내게 영어는 시급하게 필요한 언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방치해둔 상태였고, 뒤늦게야 상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내 나름대로 독학을 한 것이 전부였다 우선, 나는 간단한 어휘부터 시작해 매일 조금씩 어휘를 확장해 가면서 영어활용 능력을 늘려갔는데, 놀랍게도 오래지 않아 미국 원어민으로 이루어진 동료들 대부분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 학교에서 배운 문법 실력도 그런대로 도움이 되었다. 내 발음도 상대가 알아듣는 데 별 무리는 없어 전반적으로 일을 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과연 나는 언어의 천재였을까?
일을 하면서 극동지역, 라틴 아메리카, 유럽, 그리고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방문할 기회가 많았던 나는 사람들이 영어나 프랑스어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관찰할 수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영어를 사용했다. 원어민이 아닌 우리의 영어는 불완전했고, 억양도 어색했으며, 대화 내용은 뒤죽박죽이 되기 일쑤였지만 기본적인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서로의 영어 수준을 이해하면서 효율적으로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미국인들보다 나와 이야기하는 것을 더 선호하기도 했다. 이러는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말을 이해시키려면 뉴요커들의 도도한 말투와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저런 경험을 통해 효과적이라 판단되는 방법들이 늘어났고, 이를 다른 지역에서도 실행에 옮겨 보니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실행한 방법 중에 예전에 학교에서 가르치던 훌륭한 영어 교수법과 맞아 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방식으로 말하는 언어는 영어와는 다르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고, 이런 생각을 발전시키게 된 것이다.(그 생각들은 책의 뒷부분에서 자세히 소개할 것이다.)
나의 이런 생각은 순전히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어느 교수나 언어학자의 글에서 떠온 것이 아니다. 즉, 이론이 아닌 실무가의 손끝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나도 영어를 잘 하려면 영어권 국가에서 태어나 자라거나 직업상 영어를 계속해서 사용하는 것이 이롭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 하나의 언어가 아니라 세계적인 의사소통 도구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그간의 나의 경력과 다양한 국제 업무 경험이라면 이런 논의를 하기에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만약 영어학자들이나 이런 주제로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남자는 산부인과 의사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ㄴ 것과 다를 바 없다.
나는 독자들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정확하면서도 분명하고, 좀 더 유용한 접근 방법을 시도할 것이다. 독자들의 목표는 뉴욕이나 런던뿐만 아니라, 블라디보스토크나 베이징 등 전 세계 어디에서나 효과적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다. 이 책의 목적은 피카디리(*런던 제일의 번화가 중 한 곳. 우리나라의 ‘명동’에 해당한다.) 서커스에서 들을 수 있는 정통 영국식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영어와 글로비쉬에 관한 다양한 에피소드와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피카디리 서커스와 관련된 이야기도 포함해서 말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