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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못해? 그럼 글로비쉬로--영미어는 진정 세계어인가?

리첫 2016. 9. 13. 15:15

영어 못해? 그럼 글로비쉬로--영미어는 진정 세계어인가?

 

전 세계에서 가장 빈번히 사용되는 언어

 

오늘날 불과 몇 년 사이에 역사상 유례없는 초강대국이 패권을 장악하면서 영어는 이제 모든 분야를 점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핵심 기술의 독점 소유와 전 세계 어디든 분쟁이 일어나면 이를 해결하겠다는 명목 하에 군대를 파견할 수 있는 능력, 상품 판매에 버금가는 문화적 부흥, 혹은 재능있는 작가, 예술가, 대변인, 그리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혀끝으로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성장 등등--- 대영제국 시절 영국인들의 언어와 흡사한 이들의 언어만 있으면 전 세계의 문을 모두 두드릴 수 있다. 영어는 모든 분야를 정복했다. 티셔츠마다 새겨져 있으며 레스토랑 메뉴를 뒤덮고 있다. 술집이며 텔레비전을 파고들었고, 청바지(blue denim)로 만든 옷에 jeans라는 이름을 붙여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닌다. 파리에서도 광고 간판의 5~10%가 영어로 작성되고 있으며, 방송 광고 카피에도 영어가 넘쳐난다. 2003년 2월, 영화 <피아니스트>의 성공으로 공식 행사를 마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화가 국제적으로 성공하려면, 안됐지만 영어로 만들어야 한다---.”

 

1989년 6월 나는 북경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는 천안문 광장에서 무력진압이 있은 후 며칠 연이어 시위가 전개되고 있었다. 매일 저녁, 나는 외국인과 적극적으로 토론을 벌이는 대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려는 중국 대학생들의 태도 때문이 아니라 현수막에 쓰인 구호가 대부분 영어라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이는 고르파초프의 역사적 방문을 앞두고 전 세계에서 몰려든 기자들의 주의를 끌려는 목적에서였다. 젊은 혁명가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성공적으로 전 세계에 전달하려면 영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미국의 진정한 발명품인 인터넷은 영어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에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된다. 인터넷이 주로 영어로 이루어지는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영어의 지배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불독청소년사무국 서기관인 바벳 니더는 말한다.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유럽 전체에서도 영어는 이제 국제화의 상징이 되었다.”

 

괘씸하게도 유럽중앙은행은 회원국 중에 영국이 속해 있지 않은 데도 모든 문서의 공식 공용어를 영어로 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모리스 드뤼옹은 유럽의 여러 기관들이 처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선다. “현재, 유렵의 여러 기관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전부 하용하려면 32번에 걸쳐 번역을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폴란드나 헝가리 등 10개국이 EU에 추가로 가입하며, 우리는 바벨탑 속에서 사는 것과 다를 바 없게 된다. 따라서 반드시 시스템의 통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더 이상 언어 문제의 해결을 미룰 수만은 없다.”

 

실제로 지구촌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종류를 결합해보면 그 수치는 가히 폭발적이다. “가능한 조합을 해보면 언어의 수는 110~420가지에 이른다. 그렇게 되면 회의를 한 번 개최하는 데 통역사 105명이 필요하다---. 추가 언어를 통역하는 데 드는 비용만 매년 약 8백만 유로에 달할 것이다. 핀란드어를 구사하는 몰타인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여기서 잠시 지난 1990년 1월 25일 케네디 공항에서 일어나났던 비행기 사고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사고 비행기는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출발항 아비앙카 항공 소속 항공기로, 심한 눈보라에 휩쓸려 항로를 이탈했다가 마침내 케네디 공항 근처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기장은 무전으로 ‘사용가능 연료 최저’라고 알렸다. 하지만 불행히도 눈보라 속에서 시도한 첫 번째 공항 접근은 불발로 날아갔다. 케네디 공항의 관제탑 통제요원이 비행기의 착륙을 허가하지 않아 계속해서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가장과 부기장은 계속해서 항의를 했지만, 항공 전문용어만 겨우 알고 있던 이들의 영어를 미국 관제탑 직원은 이해하지 못했다. 승무원들은 무기력하게 착륙 허가 신호가 들어올 때까지 공항 주위를 선회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장은 다급하게 상황 설명을 해보았지만 관제탑에서는 그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결국 엔진 네 개는 하나씩 꺼졌고, 비행기는 늪 속에 처박혔다. 이 사고는 73명의 사상자를 냈다. CVR에 녹음된 승무원들의 마지막 대화는 “미친놈들!”이었다. 보고타에서 두 조종사는 영어 때문에 이런 불상사가 생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스페인어로 마음껏 수다를 떨면서 비행기에 올랐을 것이다. 현지 조사, 그러니까 미국 측 조사 결과에 의하면, 사고의 원인은 ‘승무원의 과실’로 결론지어졌다. 73명 희생자의 가족들은 ‘조종사들이 매일 조금씩만 영어를 배웠더라면---’하는 생각에 오열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에어프랑스 국내 노선의 조종사들이 오를리 공항이나 드골 공항에서 매일 영어로 의사소통을 했으면 한다. 그래서 내가 탄 비행기가 갑자기 유럽 대륙 서쪽에서 눈보라를 만나 에든버러 공항에 불시착할 일이 생기더라도 이런 어이없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처럼 영어가 전 세계로 침투하는 현상은 어떤 조직적인 공동 노력의 결과로 보이지는 않는다. 힘 있는 나라에서 어떤 의도를 갖고 음흉하게 계획적으로 만들어낸 현상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어쨌든 결과는 그렇게 나타났다. 전 세계 의사소통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도구는 누구나 동의하듯이 영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말하려고 시도하는 언어, 비영어권 사람들이 어렵게 떠듬떠듬 말하는 언어가 정말 영어일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