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속뇌--팝송의 함정
이 책의 다른 내용도 그렇지만 특히 팝송의 함정에 대한 내용은 지금까지 출간된 어떤 영어 관련 도서에도 소개된 적이 없는 중요한 내용이니 각별히 신경 써서 들여다보시기 바란다. 한 때 대한민국에는 팝송으로 영어를 배우자는 열풍이 일었던 적이 있다. 그 열풍은 지금도 식지 않고 보들보들 달콤한 솜사탕처럼 순진한 학생들을 유혹한다.
나 역시 통키타를 매고 호프집을 드나들며 통키타 아르바이트를 하던 철부지 시절, ‘그래, 이거야. 팝송이 답이었어!’라는 들뜬 마음에 책을 몇 권 구입했던 기억이 있다. 영어의 ‘영’자마나 들어도 골이 지끈거리는 판에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팝송으로 영어까지 배울 수 있다니 이보다 행복한 공부가 또 어디 있을까? 하지만 팝송에는 아는 사람만 아는 크나큰 함정이 있다.
일단 팝송의 장점이라면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를 덜 주기 때문에 기억과 정서를 담당하는 변연계에 긍정적인 감정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 자주 접해도 질리지 않는다는 점, 로맨틱한 표현을 익힐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 팝송은 영어의 단편적인 소릿값을 귀로 익히는 데 도움이 되고, 따라 부르다 보면 혀를 영어발음에 필요한 위치에 갖다 놓기 때문에 발음을 익히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팝송은 아이러니하게도 실질적인 영어 말하기에는 도움이 안 된다?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람?
만약 팝송을 잘해서 영어회화까지 잘할 수 있다면, 팝송을 많이 아는 사람은 영어로 말도 잘해야 한다. 예를 들어, 팝송을 100곡 알고 있다면 영어문장을 줄잡아 1,000개는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럼 팝송 100곡만 즐겁게 배우면 기본적인 회화는 고구마줄기처럼 줄줄 꿸 줄 알아야 한다. 아니, 10곡만 확실히 알아도 100문장은 거저먹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환상적인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혹시 주변에서 다른 훈련은 안하고 팝송 위주로만 공부를 해서 영어회화 실력이 아주 좋아졌다는 얘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는가? 많은 영어 고수들을 만나봤지만 나는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다. 왜 그럴까?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뇌에서 음악을 담당하는 영역이 언어를 담당하는 영역과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실험과 임상 사례를 통해 이 영역이 존재한다는 검증은 되었지만, 애석하게도 아직 정확한 부위는 알려지지 않았다.) 즉, 음악을 담당하는 부위를 다치면 말을 할 수는 있지만 노래는 못 부르고, 언어를 담당하는 부위를 다치면 노래는 할 수 있지만 말은 할 수 없는 상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말을 할 수 없는 증상을 ‘실어증’이라 하듯이, 말은 하지만 노래를 못하는 증상을 ‘실음악증(Amusia)’이라고 한다.
그러나 팝송은 영어 듣기와 발음 향상에는 확실히 도움이 된다. 뇌에서 음조를 파악하는 영역은 언어를 이해하는 데에도 관여할 뿐만 아니라 팝송을 부르면서 혀를 움직이면 영어로 말을 할 때와 같은 위치에 근육을 갖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팝송 자체만으로는 말하기능력을 기르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영어동요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혹시 팝송으로 영어 말하기를 잘하겠다거나 영어동요로 아이를 영어 신동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진 분들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포기하시고 그저 영어에 대한 괌심을 북돋아주는 산뜻한 청량제 정도로만 팝송과 동요를 즐기십사 권해 드리고 싶다.
하지만 팝송도 잘만 활용하면 영어 말하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 아예 없지는 않다. 조금 번거롭기는 하지만 팝송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팝송이 아니면 차라리 죽음을 달라는 분이나, 팝송이나 동요를 이용한 책이나 교재로 제대로 돈을 좀 만져보고 싶으신 분들은 이렇게 해보자.
첫째, 팝송을 즐기듯이 익힌다.
둘째, 회화에 도움이 될 개소주 엑기스 같은 핵심문장을 추려낸다.
셋째, 핵심문장으로 응용문장을 만든다.
넷째, 핵심문장과 응용문장으로 딕테이션, 쉐도잉, 에코잉 3종 세트를 실시하고 정크빨로 입을 통해 뇌로 입력시킨다.
특히 팝송이나 동요로 제대로 된 교재를 만들고 싶으신 분들은 이 방법을 눈여겨보시기 바란다. 하지만 서두르시라, 그대들이 재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내가 선수를 치는 수가 있다!
뇌를 제대로 알면 이렇게 영어학습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원소스 멀티유즈 방식의 학습방법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만 노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자기 자신이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사람들을 혼란과 도탄에 빠뜨릴 수밖에 없고, 아무리 주옥같은 콘텐츠라도 약에 쓸 수 없는 개똥을 만들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