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못해? 그럼 글로비쉬로--글로비쉬에서는 유머를 사용하지 않는다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 때 가장 번역하기 어려운 두 가지는 욕설과 농담이다. 다른 사람을 흉내 내길 좋아하는 미국인들은 이 두 가지를 자주 사용한다. 그들은 어느 연설이든 매번 우스운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하면 분위기를 띄우고 청중의 긴장을 풀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보기에는 청중이 아니라 연설자 자신이 긴장을 풀려고 농담을 던지는 게 아닌가 싶다. 자신이 내뱉은 첫 마디에서부터 분위기가 고조되면 안심하고 연설을 이어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어떤 일본인 동시통역사의 일화가 생각난다. 그 통역사는 연사가 농담을 시작한 순간부터 통역을 멈추었다가 농담이 끝나면서 짧게 한마디로 요약을 했는데, 그 때 청중들 사이에서 폭소가 터졌다. 영어에 비해 지나치게 일본어 통역이 간략했다는 질문을 받은 통역사는 사실대로 고백했다. “놀라울 것 없습니다. 저는 지금 미국인이 농담을 시작했다.” 라고 말한 뒤, 입을 다물고 있다가, 농담이 끝나자 “미국인이 농담을 마쳤다. 이제 웃으면서 박수를 쳐라.”라고 말했습니다.
IBM 사장 비서실에서 근무할 다시 나의 경험담을 들려주려고 한다. 사장은 농담거리가 떨어지면 매우 불안해하는 사람이었기에, 나는 손쉽게 농담거리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프랑스에 있는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특급 우편으로 유머 관련 책 몇 권을 보내달라고 했다. 책이 도착하자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책 내용 중 섹스나 종교, 인종에 관한 내용은 빼고, 나머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미국인들에게는 신선한 유머일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것은 대단한 착각이었다. 매번 동료들을 웃기는 데 실패한 것이다. 그들은 지루한 눈빛으로 ‘이야기가 언제 재미있어질까’ 하는 표정으로 내 말을 듣고 있다가 이내 실망하곤 했다. 나는 현장에서 한 방 얻어맞고 제대로 교훈을 얻었다. ‘유머는 국경을 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글로비쉬에서 유머가 차지할 자리는 없다.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다면 농담을 건네지 말고, 여러분의 재치를 뽐낼 생각도 말아라. 전혀 쓸모없는 짓이다. 그냥 여러분이 전달해야할 주제만 정확히 이야기하면 족하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