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전(食傳)--고깃배가 바뀌면 물고기도 바뀐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우리 연안의 고기들은 우리 것이 아니었다. 메이지유신으로 서구의 신기술을 받아들여 건조한 일본 어선들이 어장을 독차지했던 것이다. 우리 어부들도 어촌계를 조직해 신식 어선과 발달한 어구들을 도입했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해안의 물고기들은 거의 일본 어선들이 독식했다. 한일어업협정 때문에 두 나라 사이에 다툼이 일어날 때, 이런 역사적 사실은 고려대상이 되지 않는가 보다.
다만,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우리와는 다르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척 즐기는 조기와 명태는 일본 사람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일본 사람들이 즐기는 도미나 붕장어 같은 생선은 우리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이제는 이 경계도 다 허물어졌지만, 아직도 일본 사람들이 명태나 조기를 썩 좋아하지 않는 것이 그나마 우리가 지금도 이것들을 비교적 싸게 먹을 수 있는 이유다.
이제는 고깃배가 바뀌고 어망이 바뀌고 음파탐지기 같은 새로운 장비들이 등장하면서 잡을 수 있는 물고기도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잡지 못하던 멸치 떼를 쫓아 잡고 배에서 직접 쪄서 말리기도 하고, 꽁치나 고등어는 잡아서 아예 배에서 통조림을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연안에서 물고기를 잡는 데서 그치지 않고 큰 배로 먼 바다에 나가 원양어업을 하기도 한다.
요즈음 원양에서 잡아오는,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물고기인 참치는 몸집이 크고 살이 실해서 참 물고기라는 뜻으로 ‘참치’라고 이름을 붙였다지만, 예전의 관점으로 보면 ‘참어’ 또는 ‘진어’라고 불러야 맞지 않나 싶다.
광어는 광어로되 광어가 아니다
요즘은 생선하면 으레 구이나 조림보다는 회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고기를 회로 먹은 것은 우리의 오랜 전통이지만, 싱싱한 물고기를 접할 수 있는 곳에서만 회를 즐길 수 있으니 실제로 바닷고기를 회로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내륙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바닷고기는 대체로 말린 것이나 지독히도 짜게 염장한 것뿐이고, 회라 하면 냇가에서 잡은 민물고기나 육회를 즐길 뿐이었다.
날것을 좋아하는 풍습 탓에 민물고기를 날로 먹어 1970년대까지는 디스토마 중독이 심했을 정도다. 그때만 하더라도 서울에서조차 생선을 회로 먹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던 것이 고소도로의 개통과 운송수단이 발달한 1980년대부터는 번화가에 일본식으로 회를 파는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반일감정이 여전히 심할 때여서 버젓하게 ‘일본식’이라 표기는 못했지만, 일본을 연상케 하는 이름을 달고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다가 살아 있는 물고기를 직접 현지에서 해수탱크에 담아 운송하는 시스템이 발달한 뒤로는 전국적으로 ‘일식’과 횟집들이 번창하기 시작한다. 그 뒤로는 ‘스시’를 파는 집들도 우후죽순처럼 많이 생겼다.
지금은 전국 어디를 가나 회 한 접시 먹기 어렵지 않다. 이제는 잡힌 고기만으로는 모자라 바다에서 양식한 생선들을 먹고 있다. 대규모 양식장들이 들어서서 횟감뿐만 아니라 고등어를 비롯해 다양한 어종들을 양식으로 기르고 있다. 이제는 원양의 깊은 바다에서 자라는 참치까지 양식에 성공했다고 한다. ‘자연산’이 아니면 그 가격이 몹시 낮으니, 광어는 광어로되 예전과는 또 다른 광어회를 우리 입에 넣는 것이다.
요즈음은 남획으로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아예 ‘바다목장’이라 이름을 붙일 정도로 물고기의 서식처를 마련해주고 어종을 보호하려고 한다. 하지만 물고기 잡는 법은 점점 더 발달하여 바닷속의 물고기가 남아날지 모르겠다. 이제 참치는 구경하기도 어려울 만큼 값이 치솟는다. 특히 대구는 갈수록 남획으로 그 크기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큰 놈은 사람들이 잡아먹어 살 수가 없으니 다시 작은 몸집으로 돌아가려는, 인간에 의한 인위적인 자연선택이 이루어지는 셈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