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기의 영어이야기--김옥균의 영어 학습
개화사상의 구심적인 인물이요 갑신정변의 주역인 김옥균(金玉均)은 개화의 상징적인 존재로서, 윤치호(尹致昊) 청년에게 영어공부를 권하는 한편, 자신도 몸소 영어공부에 앞장을 섰던 영학(英學)의 선구자이기도 하였다.
1883년 일본 동경에 체류 중이던 김옥균은 그 해 1월 7일에 동경대학의 박언학(博言學)¹ 교수로 있던 체임벌린(Basil Hall Chamberlain: 1850-1935)의 집으로 찾아가서 알파벳을 처음으로 배웠는데, 체임벌린 교수는 공교롭게도 배즐 홀(Basil Hall) 함장의 맏따님이 윌리엄 체임벌린(William Charles Chamberlain)에게 출가하여 낳은 홀 함장의 외손자였다. 체임벌린 교수는 일본에 관한 많은 연구서를 남겼는데, 특히 주한 영국 총영사로 있던 애스톤(W. G. Aston: 1841-1911) 및 주일 영국 공사관에 근무하면서 일본어와 한국서지 연구에도 조예가 깊었던 새토우(Sir Ernest Satow: 1843-1929)와 함께 지어낸 “한국 지명 및 고유명사 편람(A Manual of Korean Geographical and Other Proper Names)”²은 게일(J. S. Gale) 박사가 1897년 요코하마에서 출판한 “한영자전(韓英字典: A Korean English Dictionary)”에도 인용된 바 있다.
조선정부의 초청을 받고 육영공원(育英公院)의 교사로 초빙되어 오는 뉴욕 유니언 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 출신의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1863-1949), 벙커(Dalzell Adelbert Bunker: 1853-1932), 길모어(George William Gilmore: 1858-1933)가 1886년 7월 4일 제물포 항구에 도착하였을 때는 김옥균이 마중 나가서 제물포 시내를 가리키면서 일본에서 배운 영어로 “My country. I very glad.”라는 말을 했다. 그는 지금의 외무부격인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의 내당청(內堂廳)에 영어 통역관의 속성 양성을 위하여 1883년 8월 3일에 동문학(同文學)을 설립한 묄렌도르프(Paul Georg von Mollendorff)가 살던 박동³ 저택에 마련된 정구장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테니스를 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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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 박언학: 말의 본질, 기능, 상태, 변화 등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연구 대상에 따라 국어, 언어학, 비교언어학 등이 있음.
² 1883년 요코하마에서 발행됨
³ 옛 중동고교 자리 부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