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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의 영어이야기--영국과 미국 배들의 내항

리첫 2018. 1. 29. 13:36

개화기의 영어이야기--영국과 미국 배들의 내항

 

1653년에 하멜(Hamel) 일행이 제주도에 표착하였을 때는 이미 1627년 표착하여 서울에서 30여 년간 억류생활 중인 벨테브레(Weltevree)¹가 제주도로 내려가서 통역을 맡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1797년의 프로비던스 호, 1816년의 라이라, 알세스트 호, 그리고 1832년 구츨라프(Karl Fridrich August Gutzlaff: 1803~1851)가 이끌었던 영국 상선 로드 암허스트(Lord Amherst) 호, 1843년 벨처(Belcher)가 이끄는 사마랑(Samarang) 호, 1855년 강원도 통천에 포착한 미국선, 1866년의 서프라이즈(Surprise) 호, 1866년 제너럴 셔먼(General Sherman) 호 등이 내항하였을 때는 한문이나 우리말로 의사소통이 되기도 하였는데, 류큐에서처럼 영어로 문정된 직접적인 기록은 없으나 황해도 관찰사 박승휘(朴承輝)가 미국 문자와 양박정형(洋舶情形)에 관해 한양 정부에 보고했던 근거가 남아있다. 그러나 당시 사역원(司譯院)에서 잇달은 이양선(異樣船)의 내항에 대처한 영어 통역관의 양성 방안을 세우지 못했으니 답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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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 한문 이름은 박연(朴燕). 수부로 홀란디아호에서 일하다가 1627년 우베르케르크호로 바꿔 타고 일본을 향하여 항해하던 중 제주도에 표착했다. 동료 D. 히아베르츠, J. 피에테르츠와 함께 음료수를 구하려고 상륙하였다가 관헌에게 붙잡혀 서울로 호송되었다. 훈련도감에서 근무하였는데, 병자호란 때 세 사람 모두 출전하여 박연을 제외한 두 사람은 전사하였다. 그는 포로가 된 왜인들을 감시, 통솔하는 한편 명나라에서 들어온 홍이포(紅夷砲)의 제조법, 조작법을 지도하였다. 1653년 H. 하멜이 일행이 제주도에 이르렀을 때 그들을 서울로 호송하고, 하멜이 도감군오(都監軍伍)에 소속되자 그를 감독하는 한편 조선의 풍속을 가르쳤다. 조선 여자와 결혼하여 남매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