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행복은 10대에 결정된다--오늘을 달리 보내면 내일은 다른 사람이 된다
매일 매일의 생활을 우울하고 무미건조하게 보내느냐, 아니면 밝고 행복하게 보내느냐는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낙관적인 사람은 아침에 가볍게 일어나며 표정 또한 밝다. 왜냐하면 그날 일어날 일을 낙관적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관적인 사람은 잠에서 깰 때 몸이 한없이 무겁고 표정이 어둡다. 하루가 마지못해 해야 하는 일로 가득 차 있다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아, 일어나기 싫어. 또 지겨운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하루를 이렇게 시작하는 사람이 멋진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잠자리에서 일어나마자마자 그날이 지겨울 거라고 습관적으로 단정하는 사람이 행복한 하루를 보낼 가능성은, 이미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는데 오늘은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투덜거려라. 그러면 투덜거릴 일이 생길 것이다.
눈을 뜨자마자 하루가 지겨울 것이라고 생각해 보라. 말할 것도 없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귀찮을 것이다. 미적거리다가 겨우 일어나 화장실에서 아침 신문을 본다. 신문지상의 온갖 사건 사고가 눈에 들어온다. 살인, 고위 공직자의 뇌물 수수, 정치인들의 추태, 교육 제도가 잘못되었다는 칼럼 등등이 눈에 띌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보면서 투덜거릴 것이다.
“정말 지겨운 세상이군. 도대체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군.”
이런 사람에게는 신문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미담 기사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짜증난 표정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비춰 보면서 다시 한 번 지겨운 하루가 시작될 징조를 눈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아침 식탁에 앉아 국이 짜니, 먹을 것이 없니 하면서 엄마에게 투덜거릴 것이다.
학교에 가는 버스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정말 짜증나는 일이다. 허겁지겁 학교에 도착해서 아침 조회 시간에 듣게 되는 담이 선생님의 훈계 역시 나라다 듣는 잔소리이므로 그 역시 짜증이 난다. 어떤 과목은 재미가 없고, 어떤 과목은 어렵고, 어떤 과목은 도대체 쓸모가 없고, 어떤 과목은 적성에 안 맞고, 어떤 과목은 교사가 마음에 안 들고 등등 온갖 핑계를 들이대면서 툴툴 거릴 것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학교에 다니는 것이 마치 부모를 위해 온갖 희생을 치르고 돌아온 양, ‘힘들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책가방을 팽개칠 것이다. 잠자리에 들 때 역시 “어휴, 피곤해. 정말로 힘들고 짜증나는 하루였어. 지겹다. 지겨워. 내일도 또 고단한 하루가 되겠지.”라고 독백할 것이다. 그것만으로 끝날까? 천만에. 이런 사람의 투덜이 증상은 잠꼬대로까지 연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