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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받는 나라'에서 '침략하는 나라'로<2>

리첫 2018. 2. 9. 14:49

'침략받는 나라'에서 '침략하는 나라'로<2>

 

'동양'과 '서양'<2>

 

그러나 후쿠자와는 이 ‘서양 문명주의’의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욕망의 발달에 비해, 정신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일반 국민을 교육시켜 심신의 발달을 촉진시키면 “자신도 훌륭하게 되어 사치를 부리고 싶고, 누구에게나 인정도 받고 싶다”는 욕망이 점차 커진다. 그렇지만 커져버린 욕망에 걸맞을만한 돈이나 지위는 모든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교육을 받고 정신을 잘 발달시킨다면, 자신의 욕망과 사회적 지위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즉 “세상은 무엇이든 자신의 생각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점을 알 것이다. 이치대로 따진다면 그렇지만, 아무래도 정신의 바랄보다도 욕망의 고조가 아무래도 커지게 마련이다. 결국에는 세상에 대해 사람들의 불만이 격화된다. 후쿠자와는 1889년 3월에 발표한 빈부지우설(貧富智愚說)이라는 시론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가장 두려운 존재는 가난하면서 지혜가 있는 자이다.------(그들은) 세상의 모든 구조를 불공평한 것으로 간주하고 끊임없이 이를 향해 공격을 시도하며, 혹은 사유재산제도를 폐지하라든가 토지를 공유지로 만들라고 말한다. 그 밖에 임금의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은 모두 이러한 일당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지혜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처지를 고통이라고 느끼는 능력이 있어 만족할 수가 없다. 그 불평이 쌓여서 마침내는 파열되어 사회주의당이 나오게 된 것이다. 가난한 자에게 교육을 시키는 것은 이익도 있지만 해도 있다는 점을 생각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시 일본에는 아직 사회주의당이 없었다. 그렇지만 후쿠자와는 유럽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주의나 노동운동이 어떠한 배경에서 나오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확실히 후쿠자와가 말한 대로, 일반 국민을 교육시키면 아무래도 ‘가난하면서 지식이 있는 자’가 나오기 마련이다. 에도시대의 ‘동양성인의 교법’처럼 ‘농민의 자식은 농민’으로 정해져 있어 교육 따위를 시키지 않으면, 일반 국민은 자신의 처지를 불평할 지혜조차 없다. 그렇지만 일반 국민을 교육시켜 각자의 욕망을 자극해 자유경쟁을 시키면, 불평을 갖는 자가 나오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지나(중국)를 멸망시켜 구주(유럽)와 동등해진다>라는 인용문을 다시 보자. 후쿠자와의 견해로는 당시의 유럽 국가들은 실로 불평불만이 쌓여 있는 상태였다. 국내에서 그것이 폭발하면 사회주의당이나 노동운동이 발생하고, 나라의 안정에 곤란한 일이 된다. 그래서 불평불만의 배출구를 나라 밖에서 찾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럽 국가들에게 국내 불평불만의 배출구로서 적당한 재료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를 식민지로 삼는 것이었다. 식민지에서 돈이나 산물을 빼앗아 국내로 보내면, 국내의 가난한 사람들의 불평도 누그러뜨릴 수가 있다는 이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