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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을 탈퇴해서 ‘서양’과 한패되기<2>

리첫 2018. 2. 22. 16:07

‘동양’을 탈퇴해서 ‘서양’과 한패되기<2>

 

‘서양’이 ‘동양’을 점차 식민지화하는 대세는 이미 멈출 수 없다. 일본도 결국 식민지가 될 운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후쿠자와는 어떻게든 ‘일본이라는 나라’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최후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그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후쿠자와가 주장한 방법은, 일본이 ‘동양’임을 포기하고 ‘서양’과 한패가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에도시대의 신분제도를 포기하거나 ‘서양’의 기술과 제도를 받아들이자는 것만이 아니었다. 다른 ‘서양’의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동양’을 침략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자는 의미도 있었다. 1885년 3월 후쿠자와의 <탈아론>, 즉 ‘일본은 아시아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라는 제목의 시론은 그러한 주장을 내세운 선언이었다. 거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문명이라는 것은 홍역이 유행하는 것과 같다. ------이 유행병의 해로움을 증오하고 이것을 막으려고 해도 그 수단은 있는 것일까? 나는 결코 없다고 증명한다. ------차라리 힘써 이 유행병의 전염을 도와, 일본 국민을 빨리 그 기풍에 물들게 하는 것이 지자(智者)가 해야 할 일이다. ------문명을 막아 그 침입을 금하면, 일본은 독립을 유지할 수 없다. 세계문명의 분쟁 소동은 동양의 외딴 섬이 혼자 자고 있는 것을 허락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일본의 국토는 아시아의 동쪽 끝에 있지만, 국민의 정신은 이미 아시아의 케케묵은 구태의연함을 탈피하여 서양문명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불행한 일은 이웃에 나라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중국이고 또 하나는 조선이다. ------이들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나라가 망해, 국토는 세계의 여러 문명국에게 분할될 것임에 한 점 의혹도 없다. 왜냐하면 홍역과 같은 문명개화의 유행에 직면하면서, 양국은 그 전염의 자연적 추세에 등을 지고 무리하게 이것을 피하려고 밀실 안에 틀어박혀 공기의 흐름을 막고 질식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웃나라의 개명을 기다려 함께 아시아를 부흥시켜 갈 여유가 없다. 차라리 아시아의 대열에서 벗어나 서양의 문명국과 진퇴를 같이 하며, 중국이나 조선을 접하는 방식도 이웃나라라고 해서 특별히 심려하지 말고, 그야말로 서양인들이 이들 나라에게 접하는 방식에 따라 처분해야 한다.

 

전염병이라고 말할 정도이므로, 후쿠자와는 서양 문명을 무조건 칭송만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피할 방법이 없는 전염병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일본 국민에게 문명을 널리 퍼뜨려 ‘침략받는 나라’에서 ‘침략하는 나라’가 되자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 국민에게 바로 이 전염병을 확산시키기 위해 그는 <학문의 권장>을 썼다. 서양 문명을 빨리 흡수한 자는 ‘승자’가 되고, 그렇지 못한 자는 ‘패자’가 되어 ‘비천한 사람’이 된다고 설명한 것이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근대화는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서양 문명을 받아들여 국내에서는 ‘학문’을 하여 경쟁에서 이겨내고, 국제적으로는 ‘침략받는 쪽’에서 ‘침략하는 쪽’으로 정책을 바꾼다. 이를 위해 국민 전원에게 의무(강박)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메이지 정부는 학교를 많이 세우고, 후쿠자와도 게이오 의숙(慶應義塾)을 열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학교제도 흐름의 마지막 부분에 현재의 우리들이 있는 것이다.

 

덧붙여 말하면, 후쿠자와는 <학문의 권장>을 쓰고, 원래의 신분이 무엇이었든 간에 학문을 익힌 자가 훌륭하게 된다고 설명했지만,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시킬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1882년 3월 <유전능력>이라는 시론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홋카이도(北海島) 토착민의 자식을 키워 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려고 시간을 들이고 돈을 들여 고생해가면서 지도하더라도, 그 성취의 결과가 우리 게이오 의숙의 상등교원에 미치지 못할 것이 명백하다. 그 장본인에게는 죄가 없고, 선조 이후로 정신을 연마할 기회가 없어 유전되는 지덕이 부족한 것뿐이다.” 즉 후쿠자와에 따르면, 아이누(홋카이도 토착민)는 유전적인 능력이 뒤떨어지므로, 아무리 교육을 시켜도 게이오 의숙의 교원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차별도 내포하면서 ‘일본이라는 나라’의 근대는 시작되었다. 다음은 이 나라의 근대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조망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