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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학력사회가 만들어지기까지

리첫 2018. 2. 28. 15:21

일본 학력사회가 만들어지기까지

 

에도시대의 교육<1>

 

일본의 근대화라고 해도 여러 가지 측면이 있다. 에도시대의 산업이나 경제, 기술, 군사, 행정 등 여러 가지 제도가 새롭게 바뀌었다. 그것을 전부 설명하는 것은 좀 무리다. 따라서 여기서는 학교교육의 근대화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일본의 학력사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면 현재 일본의 상황을 재인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메이지시대부터 일반 민중에게도 의무(강박)교육을 실시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에도시대에는 교육이 없었단 말인가? 있기는 있었지만 에도시대는 지금과는 구조가 다른 사회였으므로 교육이나 학교의 형태도 달랐다.

 

우선 앞에서 반복된 것처럼, 에도시대에는 농민의 자식이 무사나 상인이 되기 위해 공부해도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농민으로 정해져 있다면, 어려운 산수나 읽기, 쓰기 따위를 배우는 것보다 모심기라든가 잡초 뽑기를 배우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래서 에도시대의 교육의 제일 커다란 부분은 학교에 가는 것보다 ‘부모의 일을 거드는 것’이었다. 농민의 자식이라면 부모와 같이 논을 손질하고 벼를 수확한다. 상인의 아이라면 역시 부모의 가게 일을 돕는다. 그렇게 해서 부모가 하는 일을 배워가는 것이 ‘교육’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을 지금의 사회에 적용해서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여러분이 ‘00상사 영업담당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장래의 여러분도 ‘00상사 영업담당’이 되는 것은 정해진 사실이다. 그러므로 부모의 뒤를 따라다니며 영업하면서 명함을 건네는 법이라든가 인사나 접대의 방법 등을 배우는 것이 ‘교육’일 것이다. 여자 아이라면 장래에 ‘무사의 아내’나 ‘농가의 마나님’이 되는데 유용하도록 자기 어머니의 일을 도와야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지금의 교육의 과는 정반대로 완전히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교육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부모의 신분으로 자기 자신의 미래가 정해지는 것과 일치한다. 요즘 교육은 결과적으로 실생활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것은 자신의 장래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어디까지나 가능성이지만)이 있다는 것과 맞바꾸는 측면이 있다. 어느 편이 좋은지 판단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그러면 에도시대에는 학교가 없었던 것일까? 그와 비슷한 것이 있기는 있었다. 무사에게는 ‘한(藩<번>: 에도시대 다이묘의 영지 및 그 정치 기구)’의 학교인 ‘한코(藩校:번교)’ 등이, 평민에게는 촌락이나 읍내에 ‘데라코야(寺子屋:사자옥)’가 있었다. 스님이 절에서 아이들에게 불경 등을 가르친 것이 ‘데라코야’의 시초이며, 이윽고 에도시대 무렵이 되자 농민이나 상인의 아이들에게 읽기와 쓰기 등을 가르치게 되는데, 이를 종합해서 데라코야로 부르게 되었다. 절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데라코야라고 부르고, 여기를 다니는 아이들을 데라코(寺子:사자)라고 불렀다.

 

그렇지만 이 한코나 데라코야는 지금의 소학교나 중학교와는 매우 성격이 다르다. 에도시대의 데라코야와 메이지 이후의 소학교를 비교하면, 크게 세 가지 차이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