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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의 교육<2>

리첫 2018. 3. 14. 15:42

에도시대의 교육<2>

 

먼저 데라코야는 에도시대의 사회구조에 맞추어, 신분별로 실생활에 도움 되는 것을 가르친다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 옛날에는 흔히 최소한의 교육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읽기, 쓰기, 주판’이라는 말이 있었다. 요즘에 주판은 과거의 유물 같은 것이지만, ‘읽기, 쓰기, 주판’이라는 말은 지금도 남아 있다. 그러니까 데라코야에서도 이것을 가르쳤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예를 들면 무사나 농민에게 읽기, 쓰기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주판은 필요 없다. 주판 공부가 필요한 것은 상인의 아들이다. 그래서 에도시대의 데라코야에서도 산수(주판)를 가르친 것은 주로 상인의 아이들이 많은 대도시의 데라코야이며, 이것은 전국의 데라코야의 20퍼센트 정도였다. 농촌이나 어촌, 소도시 등지에 있는 데라코야에서는 주판을 별로 가르치지 않았다.

 

둘째로 데라코야는 가고 싶은 사람만 간다. 즉 유지자(有志者) 교육(학문에 뜻이 있는 자를 위한 교육)으로 의무교육처럼 모든 학생이 가야 하는 곳은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의 공립 초, 중학교와는 달리 스승에게 사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므로 가난한 농민이나 주민의 아이들은 경제적 여건이 안 되어 갈 수가 없었다. 우선 생각해보면, 가난한 농민의 아이는 미래에도 가난한 농민이 되도록 정해져 있다. 게다가 아이들은 농가나 상가에서 귀중한 일손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을 데라코야에 보내 사례를 지불하고 읽기, 쓰기 따위를 공부시킬 시간이나 돈이 있다면, 농업이나 장사를 거드는 것이 낫다고 부모들은 생각하기 일쑤였다. 예를 들면, 촌장의 아들은 장래에 마을의 분쟁을 조정하는 역할을 할 촌장이 될 것이므로, 관리들과 주고받는 편지를 쓰기 위해 읽고 쓸 필요가 있다. 이런 경우는 데라코야에서 읽고 쓰기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부모들은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가난한 농민의 아들이나 여자에게 공부 따위는 필요도 없고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셋째로 데라코야는 지금의 소학교처럼 단체수업방식도 아니고, 교육과정이 정확히 정해져 있던 것도 아니었다. 또 여섯 살에 입학한다든지 4월에 입학한다든지 정해진 규칙도 없었다. ‘단체수업’은 선생님이 학생들 앞에 서서 가르치면 학급 전원이 같은 내용을 배우는 방식을 말한다. 그리고 ‘교육과정이 정해져 있다’는 말은 현재의 소학교에서는 문부과학성이 소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내용을 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지금은 어느 소학교에 가도 기본적으로는 문부과학성이 정한 방침에 따라 교육이 행해져 모든 과정을 마치면 문부과학성이 공인한 졸업증서를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