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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의 영어이야기--조미조약의 통역관과 교포 아더(阿土)

리첫 2018. 3. 20. 14:07

개화기의 영어이야기--조미조약의 통역관과 교포 아더(阿土)

 

김윤식이 청국에 갔던 것은 유학생의 현지 감독 이외에 조미통상수호조약의 체결을 위한 예비 교섭에 목적이 있었다. 1882년 2월 17일 이홍장(李鴻章)과 김윤식(金允 植), 이응준(李應俊)의 3자 회담에서 이홍장은 조선에 영어와 영문을 아는 사람이 있느냐면서 만약 없다면 일을 처리하기가 어렵다기에, 김윤식은 조선에는 본디 외교가 업는 터라 영문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 조미 외교 때는 청국인을 써서 일이 서로 어긋나는 폐단이 없기를 바란다면서 청국인 통역관의 초빙 의사가 있음을 비쳤다.

 

또한, 3월 4일 북양대신아문에서 이홍장, 마건충(馬建忠), 주옥산(周玉山), 윤석정(尹石汀) 등이 함께 이는 자리에서 김윤식은 다시금 “우리나라는 교제사무에 정통하지 못하고 영문, 영어를 아는 사람도 없으니 중국에서 천거하는 사람을 나와 함께 가도록 하여 달라”는 청을 하였고, 이홍장으로부터 일찍이 서양 각국에 유학하여 영어와 불어에 능통하고 만국교제공법에 정통한 마건충을 천거 받게 되었다.

 

당시 조선 안에는 방방곡곡을 뒤져 보아도 영어를 아는 사람이라곤 한 사람도 없었으나 어려서 중국 상해로 영국인에게 팔려가서 이름을 아더(阿土, Arthur)라 지은 교포가 있었다. 그는 상해의 신태흥양행에서 기계류와 총포류를 사고 파는 영국의 언어의 문자에 능통한 20여세의 청년이었다. 김윤식은 귀국할 무렵인 1882년 10월 21일 남국(南局)의 회판 서중호(西仲虎)를 만났을 때 영어에 능통한 교포 아더를 데리고 가면 크게 유용한 데가 있을 것이라는 권고를 받았고, 김윤식이 좋겠다면서 당연히 귀국을 도모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마건충을 조미통상조약의 통역관으로 쓰기로 한 이홍장과의 선약(先約)을 어긴다면 큰일을 그르치게 될 것이 염려스러웠던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아더의 신분이 낮은데다가 마건충만한 외교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여서였는지 결국 아더를 기용하지 않았는데, 이는 대단히 애석한 일이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의 이름도 아더였지만 만약 아더를 통역관으로 내세웠다면, 조미조약을 주선한 이홍장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원격조종외교에서 그 하수인 마건충이 조선에 대한 청국의 종주권을 주장하면서 거드름을 피우는 오만불손한 추태를 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신헌(申櫶) 정사와 김홍집(金弘集) 부사가 한낱 통역관에 불과한 마건충에게 “대인”, “각하”하면서 굽실거리면서 지도를 바란다고 했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었다. 마건충은 조약문에 쓰는 연호까지도 조선 개국이 아닌 청국의 ‘광서(光緖)’를 사용하였으며, 조미조약에 이어 조-영, 조-독, 조-불 조약을 체결하고 난 뒤, 대원군을 납치하는 행패까지 자행한 자였다.

 

또한 그의 형 마건상(馬建常)도 영국, 프랑스, 독일 유학을 한 지식인이었는데, 이홍장의 추천에 따라 조선 정부의 외아문에 고문으로 고빙된 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