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공부법--노무현<2>
왕따가 왕이 되는 법
왕따 문제가 사회 이슈가 된 지 오래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들의 문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본인이 혹은 우리의 소중한 자녀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안쓰럽고 화가 나겠는가? 하지만 어린 시절 노무현만큼 철저하게 왕따를 당한 경우도 드물 것이다.
1950~1960년대에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닌 그는 동네 사람들로부터, 선생님으로부터,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노무현 본인도 그렇지만 어머니도 동네에서 왕따였다. 노무현의 어머니는 40여 호밖에 살지 않는 작은 산골 동네에서 친척들에게조차 냉대를 받았다. 어머니는 종종 밤늦게 집에 돌아와 어린 노무현을 붙잡고 “억울해서 못 살겠다.”며 신세타령을 하곤 했다. 노무현의 어머니는 시골 아낙 치고는 똑똑한 편이었고 말을 꽤 잘했으며 공부를 잘하는 아들 자랑을 곧잘 해서 마을 사람들에게 미움을 산 것 같다. 장남인 영현은 동네에서 유일하게 대학(부산대 법대)에 다녔고, 막내아들 노무현은 ‘노 천재’ 통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의 시기심을 살 만도 했다.
어머니가 동네에서 왕따였다면, 노무현은 학교에서 왕따였다. 보통 왕따를 당하는 아이를 보면 공부를 잘하고 굉장히 똑똑한 아이이거나 반대로 공부를 잘하지 못하고 어리숙한 아이다. 노무현은 전자에 해당되었다. 노무현은 공부를 잘하고 성격이 활발했지만 가난으로 인한 열등감이 커서 부잣집 아이들을 자주 괴롭혔다. 그로 인해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들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반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숙한 짝궁의 필통을 빼앗았다가 친구들로부터 “어떻게 반장이 그럴 수 있느냐!”는 집단 질타를 당하고 되돌려 준 적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체육 시간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읍내 부잣집 아이의 가방을 면도칼로 찢어 놓기도 했다.
6학년 때는 교내 붓글씨 대회에서 사실상 1등을 했는데도 억울하게 2등으로 밀려나자 2등 상을 반납하여 선생님에게 뺨을 얻어맞았다.
중학교 1학년 때는 담임선생님이 부잣집 아이를 반장으로 지명한 것이 기분 나빠 몇몇 친구와 작당하여 걸핏하면 반장에게 시비를 걸었는가 하면, 학교에서 ‘이승만 대통령’이라는 제목으로 작문 시험을 치르자 친구들에게 아무것도 써 내지 말자며 백지동맹을 주도했다. 고등학교 때는 머리 기르기, 수업 시간에 도망치기, 친구들과 술 마시고 담배 피기 등 불량 학생이 하는 짓은 죄다 저질렀다.
이러한 사실들을 보았을 때 노무현은 왕따를 당한 것이 아니라 왕따를 자초한 측면이 많다. 워낙 튀고 말썽을 부렸으니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이 좋아할 리 있겠는가. 그러나 노무현 자신은 친구들로부터, 선생님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다는 외로움과 열등감, 복수심으로 불타올랐다. 왕따를 당한 사람들은 대체로 기가 죽어 조용하게 생활하는 경우가 많지만 노무현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저래 기가 죽지 않았고, 고시에 합격하여 변호사가 되었으며, 마침내 대통령이 되었다. 왕따가 왕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 왕따에게는 구세주가 필요하다.
노무현에게 구세주는 바로 선생님이었다. 학교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선생님이 격려해 주고 위로를 줄 때 왕따는 용기를 어고 왕으로 거듭날 수 있다. 노무현의 구세주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을 맡은 신종생 선생님이었다. 사범학교를 갓 졸업한 20대 초반의 선생님은 노무현에게 강한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휴일이나 방학 때는 학교로 불러 공부를 가르쳐주고, 자기가 살던 자취방에서 재워주고 직접 밥을 차려 주기도 했다. 선생님의 격려로 노무현은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선생님은 노무현에게 전교 학생회장에 출마하라고 권유했다.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버티던 노무현에게 선생님은 “바보 같은 놈, 그런 용기도 없어?”하고 말하며 힘을 실어 주었다. 그로 인해 마음을 잡은 노무현은 마침내 전교 학생회장에 출마하여 전체 502표 중에서 302표를 얻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다. 학생회장 당선은 노무현의 마음속에 ‘불리한 상황도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투지와 자신감을 심어 준 일대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