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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공부법--노무현<3>

리첫 2019. 6. 24. 14:30

대통령의 공부법--노무현<3>

 

둘째, 왕따에게는 가족의 배려가 필요하다.

 

가족 중에서 누군가가 귀를 기울여 주고 관심을 가져 줄 때 왕따는 어느덧 왕이 되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노무현의 가족 멘토는 맏형 영현이었다. 둘째 형 건평이 친구 역할을 해주었다면, 맏형은 든든한 기둥이자 우상이었다. 노무현이 학교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면 맏형이 곧장 학교로 달려가 해결사 역할을 해 주곤 했다. 그런 맏형이 갑자기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때, 노무현은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고통과 슬픔을 느꼈으리라.

 

셋째, 왕따에게는 작은 성공 사례의 창출이 필요하다.

 

왕따는 사소한 것이라도 성공한 사례가 있으면 좌절감을 떨쳐 버리고 왕의 자신감을 갖는다. 노무현은 중학교 2학년 때 시골 학교 학생으로는 드물게 부일 장학생 시험에 합격하여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꼭 장학생 시험일 필요는 없다. 어떠한 사건을 통해 작은 성공 사례를 만들면 풀 죽은 왕따들은 의외의 용기와 자신감을 갖게 된다.

 

학창 시절 노무현은 왕따였지만 훗날 그의 1남 1녀 자식들은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아들 건호는 연세대학교 법대를 졸업한 후에 대기업에서 근무하였고, 딸 정연은 홍익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한 후에 주한 외국 대사관에 근무하고 있다. 그들은 왕따를 당한 아버지의 전철을 되밟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

 

이 땅의 왕따들이여! 힘을 내라! 노무현처럼 왕따도 얼마든지 왕이 될 수 있다.

 

고시공부의 왕도

 

노무현은 스물아홉 살 때인 1975년에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의 고시 합격은 평범하고 고단한 인생으로부터 전도양양한 인생으로의 새로운 도약을 의미했다. 만약 그에게 고시 합격이 없었다면 한낱 상고 출신 샐러리맨으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는 가난과 고교 졸업이라는 불리한 환경을 어떻게 극복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할 수 있었을까?

 

노무현은 고시에 합격한 해에 월간지 <고시계> 7월호에 ‘과정도 하나의 직업이었다.’라는 제목으로 합격 수기를 기고했다. 그는 수시 내용의 일부를 자서전 <여보, 나 좀 도와줘>에 옮겨 적었다. 여기에서 노무현은 나름대로 ‘고시 공부의 왕도’를 제시하고 있다.

 

제대로 고부를 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이룰 것이라는 강력한 의지와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노무현은 자신의 우상이었던 맏형이 가난 때문에 고시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형이 못다 한 꿈을 이루고야 말겠다.”며 이를 악물었다. 후에 고시 합격 소식을 들은 노무현은 머릿속에 형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한다. 그의 자서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형님! 지하에서도 신문을 보십니까? 아버지, 어머니도 형님 생각에 자꾸만 우십니다.”

 

노무현은 중학교 3학년 때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5급 공무원 시험을 거쳐 독학으로 고시에 도전하려다 형의 만류로 그만둔 적이 있고,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고시 냄새라도 맡고 싶은 마음에 <고시계>를 사서 밤새 읽기도 했다.

 

노무현은 1966년에 4개월 동안 맹렬하게 공부하여 고시 자격에 해당하는 예비시험에 합격했다. 비록 예비 시험이기는 하지만 불과 4개월 만에 합격하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 동기부여가 놀라운 힘을 발휘하게 만든 것이다.

 

1971년에 군대에서 제대한 노무현은 본격적으로 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는 다독 후 정독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짧은 시간에 전 과목을 훑어본 뒤에 우선순위를 정해 정독을 하는 방식이었다. 예컨대 4개월 동안 전 고목을 세 차례씩 독파한 뒤에 민법과 상법, 행정법, 소송법을 차례대로 읽어 나갔다. 하지만 노무현은 계속해서 시험에서 떨어졌다.

 

그때 노무현에게는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권양숙과의 결혼, 출산과 같은 커다란 심리적 부담감을 이겨 내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버거운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계속되는 낙방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은 마음을 다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로 인해 결국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 형의 죽음이라는 심적 고통을 강한 투지로 전환시켰고, 결혼과 출산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 불리한 심리적 여건을 오히려 유리한 심리적 여건으로 바꾼 것이다.

 

또한 효율적인 공부를 위해서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뒤늦게 심리적 안정을 되찾은 노무현은 마옥당이라는 움막에서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노무현은 자서전에서 “하루에 보통 10시간 넘게 공부했고 일단 책상에 앉으면 무서운 집중력을 구사했다.”고 밝혔다. 그는 머리가 혼란해지고 잡념이 생길 때마다 독서를 하면 머리가 맑아지고 안정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노무현은 10년 만에 고시에 합격했다. 종합해 보면, 노무현이 제시한 고시의 왕도는 다음과 같다.

 

철저한 동기부여+자기와의 싸움+집중력

 

지금 이 순간에도 외롭게 공부하고 있는 이들이여! 불굴의 투지를 쏟은 청년 노무현의 인간 승리를 벤치마킹하여 반드시 좋은 성과를 거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