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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공부법--노무현<5>

리첫 2019. 6. 27. 12:01

대통령의 공부법--노무현<5>

 

취미를 공부로 연결시켜라

 

역대 대통령 중에서 노무현만큼 다양한 취미를 가진 사람도 없을 것이다. 취미가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개성이 강하고 성격이 변화무쌍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의 취미는 세월이 흐를수록 다양하게 변화되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노무현은 취미를 단순리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푹 빠져서 열심히 공부한 덕에 전문가 수준으로 거듭났다는 것이다. 노무현이 가벼운 취미를 심오한 공부로 연결시키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했던 것은 호기심과 몰입 그리고 자료 탐구였다. 그로 인해 다음과 같은 등식이 성립된다.

 

취미=호기심+몰입+자료 탐구=공부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던 노무현은 일단 취미를 갖게 되며, 그 취미에 대한 호기심을 뜨겁게 불태웠다. 예컨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둘째 형 건평과 함께 물총과 칼 등의 장난감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장난감을 워낙 열심히 만들다 보니 손재주가 늘었고, 이는 훗날 ‘누워서도 읽는 독서대’의 특허 상품을 개발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노무현의 붓글씨 솜씨는 전교에서 1,2등을 다툴 정도로 뛰어났다. 다만, 차분함이 요구되는 붓글씨는 급한 성격의 노무현과는 잘 맞지 않았다.

 

중학교에 다닐 때는 권투에 호기심이 발동하여 학교 권투반에 들어가 활동했다. 권투 솜씨가 매우 좋아 스파링을 할 때마다 덩치 큰 선배들을 때려눕히자 코치가 집까지 찾아가 부모에게 권투 입문을 권할 정도였다. 그의 불타는 투지와 두뇌로 볼 때 만약 권투선수가 되었다면 머리를 잘 쓰는 세계 챔피언으로 명성을 날렸을지도 모른다.

 

노무현은 특별히 좋아하는 취미에 대해서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몰입했다. 누가 뭐라 해도 개의치 않고 깊숙이 빠져들었다. 변호사 시절인 30대에는 요트에 빠져 일본으로 요트 강습을 받으러 가기도 했다.

 

이런 일화도 있다. 노무현은 1993년에 참모들과 함께 인물 정보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을 개발하려 했다. 컴퓨터 만지기가 취미였던 노무현은 깊은 연구 단계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나 참모들은 명함 관리만 잘하면 됐지 굳이 어려운 프로그램까지 만들 필요가 있느냐며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많은 사람이 “전문가 30~40명이 머리를 맞대도 될까 말까한 프로그램을 비전문가 몇 명이서 어떻게 만드느냐?”고 불평하자 노무현은 “내가 미친놈처럼 보이느냐? 전산화하면 편한데 왜 하지 않으려고 하느냐?”하고 몰아붙였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결국 1년 만에 인물 정보 DB 시스템은 성공적으로 완성되었고, 인물 관리는 매우 효율적으로 이루어졌다.

 

참모들은 당시 노무현의 놀라운 집념을 오랜 시간이 지나도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노무현의 인물 DB는 취미가 공부로 이어져 빛을 본 대표적인 사례다.

 

노무현은 취미에 빠져들면 관련된 전문 서적을 탐구했다. 취미를 공부로 연결시키려면 반드시 관련 서적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노무현은 요트는 물론 볼링을 즐길 때도 서점에서 관련 서적을 구입하고 인터넷에서 관련 정보를 입수하며 집중 연구 단계에 들어가곤 했다. 30대 변호사 시절에는 자동차에도 관심이 있었는데, 전문 서적을 여러 권 구입하여 주말마다 탐독하기도 했다.

 

또한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과 같은 진보 지식인의 책을 탐독하며 새로운 세상을 접했고, 대통령이 된 뒤에도 정치와 경제, 사회, 역사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많은 책을 읽었다. 그는 독서를 통해 관심이 가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파고들며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려고 애썼다.

 

앞서 말했듯 노무현은 무척이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노무현이 가장 좋아한 취미는 독서였다. 그는 다섯 살 때 <천자문>을 달달 외우고, 일곱 살 때부터 큰형의 공부방에 드나들며 책과 가깝게 지냈다.

 

취미를 공부로 연결시키는 법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호기심과 몰입 그리고 자료 탐구! 이 세 가지를 항상 잊지 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