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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ger to Harvard--어머니를 여의다<2>

리첫 2019. 7. 30. 12:59

Hunger to Harvard--어머니를 여의다<2>

 

1993년 12세 봄

 

나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내 나이 12세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조금은 통통한 체구에 다정다감하셨던 어머니는 늘 부드럽게 나를 안아 주셨다. 3남 2녀의 5남매 중 넷째이며 3남이었던 나와 한 살 위인 형, 세 살 아래인 여동생 사이에서는 늘 어머니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일었다. 잠들기 전 어머니가 책을 읽어 주실 때면, 형과 여동생은 어리광을 부리며 언제나 어머니의 양 겨드랑이에 자리를 잡았고, 부끄러움이 많았던 나는 어머니의 머리맡 자리에 배를 깔고 엎드려 눕곤 했다. 그 자리는 비록 어머니의 다사로운 체온을 느끼기는 어려웠으나 그래도 특별한 자리에 있는 것 같아 기뻤다.

 

그런 어머니가 내가 중학교 입학하기 바로 전에 천국으로 떠나셨다. 학생복 입은 내 모습을 그토록 기대하셨지만.

 

어머니가 떠나시고 아버지 홀로 우리를 키우셨다.

 

아버지는 바삐 일을 하시다가 짬을 내어 직접 밥을 해 주셨는데, 20~30이면 요리를 완성하시는 장기를 발휘하셨다. 그 요리의 맛은------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요리는 대개 같은 색------ 갈색 한 가지. 유효 기간이 아슬아슬하여 당일 반액으로 파는 어묵이랑, 시장에서 싸게 구입한 야채를 냄비에 한꺼번에 넣고 끓이는 식이었는데, 그래도 맛이 있었다. 특히 집에서 담근 채소 절임은 특히 맛있었다.

 

오이, 가지, 순무, 겨된장에 절인 야채에 매혹된 아버지의 요리 솜씨는 날로 발전했다. 그럴수록 우리집 냉장고와 주방으로 겨된장 냄새가 더욱 깊게 배어들었다. 그리고 밀가루 경단을 넣어 국물을 낸 ‘경단국’, 오이타(大分) 지방의 향토 요리라는 그것의 본래 맛이 어떤지 알 수 없으나, 아버지가 끓여 주신 그 맛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된장국 같은 맛이지만, 그 씹히는 식감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아버지가 만들어주시는, 우리집에서 유일하게 ‘맛있는 음식’이었다.

 

아버지가 직접 만들어 주시는 요리들은 맛이 깊었으나, 그것을 도시락으로 싸가고 싶지는 않았다. 갈색 일색의 아버지표 수제 반찬 도시락은 형형색색 화려한 반찬으로 채워진 친구들의 도시락과 확연히 비교되었다. 나는 내 도시락을 친구들이 볼까 봐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그래도 맛은 너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