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ger to Harvard--꿈을 세워라: 고3 진학을 앞두고 동경대를 목표로 세우다<6>
1998년 16세 겨울
아르바이트 생활은 약 1년 반 정도 계속되었다. 그간 “료마는 간다”를 읽으면서 헤이세이(平成) 유신을 몽상하거나, 도호쿠 밤하늘을 가득 채웠던 별들을 떠올리며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호킹, 우주를 말하다”에 빠져들곤 하였다. 그러면서 진로를 구체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마침 그 시기에 아버지가 중남미 온두라스에서 일시 귀국하셨기에 의논드릴 수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존경한다. 어머니를 일찍 잃고 ‘갈색 일색인 도시락’으로 우리 5남매를 기르신 아버지. 자식들에게 천국으로 가신 어머니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전해 주시는, 누구보다 어머니를 사랑하신 아버지. 유명 대학을 졸업하였으면서도 화려한 이력을 좇지 않고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삶만을 생각했던 아버지. 나도 아버지가 추구하는 삶의 철학을 따르겠다고 생각하였다.
집에 있던 세계 위인전 시리즈를 숙독하며 슈바이처, 마더 테레사, 킹 목사, 간디와 같이 확고한 신념으로 사회에 공헌하는 삶을 살았던 인물을 동경하였던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아버지처럼 해외에서 세상을 위한 일을 하고 싶기도 하였고, 아니면 해외에서 신학을 배우며 사회봉사 활동으로 공헌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을 가져보기도 하였다.
신학을 염두에 둔 것은 지난여름 순례에서 우주와 자연의 장대한 아름다움을 접하며 외경심으로 상상해 본 대존재(大存在), 그것이 살아 있는 신(어떻게 불러도 상관없지만)이었음을 마음 깊이 느끼고 나서였다.
국토 순례를 마치고 새해를 맞은 나는 홀로 겨울 산에서 명상(冥想)에 잠겼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무엇을 위하여 태어났을 까. 세계에는 왜 평화가 깃들 수 없을까. 나 자신은 도대체 무엇을 하면 좋을까.
그것을 화두로 명상을 하는데 까닭 모를 눈물이 흘렀다. 그때 웅대하면서도 온화한 기운이 전신을 감싸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버지, 천국에 계신 어머니를 대신하듯 크고 온화한 사랑이 나를 감싸 주는 체험을 하며, 나는 그 기운이 나 자신에게 그리고 인류에게 친숙한 신이리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체험이 내 인생에 어떠한 의미를 남기는지, 그리고 해외에서 사회봉사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희망하는 진로를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가쓰히로야, 네 뜻은 잘 알았다. 네가 하려는 것은 분명 옳은 일이란다. 네 생각이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구나. 그렇지만 그 활동이 자신의 탐구욕이나 종교적인 차원에서 끝나지 않고, 사회에 널리 도움이 되는, 사람들을 위하고 국가를 위하는 그리고 세계에 도움이 되는 일이어야 한단다. 너에게는 그러한 재능이 있으니 지금은 그 활동을 위하여 폭넓고 다양한 것을 배워야 한다.”
고민이 되었다. 존경하는 아버지가 살아가는 방식을 따르려 하였으나 그 삶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널리 사회를 우하여 국가를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사는 삶, 그렇듯 큰 그림을 그려 살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였다.
그 무렵 읽고 있던 책의 한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다.
“뒤따르는 천 사람보다, 천 사람을 이끌 수 있는 한 사람이 필요하다.”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밑줄을 그어가며 마음속 깊이 새겼다. 그리고 깊이 고민한 끝에 결심하였다.
“더 많은 사람을 이끌 수 있는 지도자가 되자. 그리고 일본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그 꿈을 위해 일본 최고 학부인 동경 대학에 진학하여 장래를 준비하자.”
“동경대는 개교 이래 많은 국가적 지도자를 배출하여 왔다. 그리고 세상에 공헌하는 치열한 삶을 살기 위해 대학에 가야 한다면 일본에서 가장 어렵다는 곳, 가장 수준이 높다는 곳으로 가봐야 하지 않을까. 동경대에 가는 것은 국가를 위해, 세계를 위해, 그리고 천하를 위해 활동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동경대에 갈 것이다.”
존경하는 아버지와 천국에 게신 어머니 그리고 하늘을 향해 굳게 맹세하였다.
고3 진학을 앞둔 봄 방학, 생애 열일곱 번째 생일을 맞은 나는 꿈을 향한 첫 목표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