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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자유교육<6>

리첫 2020. 8. 21. 12:13

 

 

 

그룬트비의 자유교육과 시민교육

 

그룬트비의 사상과 활동은 기독교 신앙과 덴마크 문화와 민중들의 삶에 대한 독특한 문제의식을 근거로 전개되었다. 그 사상을 요약하자면, 현재 일어나는 사건으로서의 살아 있는 말과 살아 있는 삶, 덴마크 국민과 문화, 국민의 계몽, 특히 농민 계층의 독자적인 의미와 가치, 자유와 자유교육 등이라 할 수 있다.

 

살아 있는 말이란 성서 해석 대상으로서의 텍스트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성례전에서 현재 시점에 생생하게 선포되는 신의 말씀이요, 책에 있는 글이 아니라 구전과 이야기, 대화를 통해서 현재 이 시점에서 말해지는 말이다. 또 살아 있는 삶이란 단지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힘과 온기, 그리고 사랑으로 추동된 삶을 뜻한다.

 

자유는 그의 사상적 이력과 긴밀히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는 주제로, 그에게 자유는 삶이 다양한 영역에서 충만하게 전개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었다. 그는 종교적 영역에서 기존의 교리적 틀이나 이론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말하고자 했으며, 정치적 영역에서 자기 자신뿐 아니라 국민과 농민 계층이 자기 권리를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기를 원했으며, 교육 영역에서는 아이들과 국민 대중의 고유한 삶이 자유롭게 전개되기를 원했다.

 

기본적으로 그룬트비의 교육론은 정치적 성격을 함축하고 있다. 당시 세간에는 학교와 여타 모든 교육의 목적은 자라나는 세대들을 지배 계층의 상에 따라 형성해야 하며, 도시 중상층의 가치로 하층민을 이끌어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룬트비는 이에 맞서 평민과 농민에게 깃들어 있는 내적 가치에서 그들을 위한 고유한 가능성을 보는 동시에 미래는 이들 자녀들이 주도할 것이라 주장했다. 따라서 평민과 농민에게 마땅한 교육은 그들이 사는 세계 외부에서 주어지는 형태가 아니라, 내부로부터 출발해야만 한다는 것이 그룬트비의 생각이었다.

 

이 맥락에서 그룬트비는 '폴켈리(folkelig)'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다. 이는 덴마크 국민들이 전통적으로 향유해 온 삶과 문화에 관련한 말로, 민중적이라는 뜻도 있지만 민속적 생활양식, 구전에 의한 설화와 시를 뜻하기도 한다. 이 말은 국민 모두가 관련된 전통과 가치로부터 오는 문화적, 사회적 삶을 일컫는 것으로, 다시 말해 국민 모두에게 덴마크어와 문학, 역사에 기초한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각자의 인격적 삶을 풍요롭게 하고 스스로 자기 확신과 위엄을 가지고 공적 생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 뜻에서 학문적인 개념과는 상반된다. 그룬트비의 정신세계를 사로잡았던 것은 덴마크 국민과 농민에게 깃들어 있는 특정한 삶의 양식, 공동체적 삶의 활기와 풍요로움이었다. 그는 덴마크 농민 문화가 비록 충분히 발전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리스-라틴 문화와는 별도로 독자적 문화를 구성할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 관습과 실용적인 지식, 문제 해결 능력, 민담과 민요, 언어, 삶과 죽음의 근본 원리에 대한 농민들의 표현에서 확인하고자 했다.

 

그는 농민 문화 안에서 그리스-라틴 문화와는 달리 민족 정체성과 민족문화를 일구어 내기 위한 순수함과 굳건함을 찾아냈다. 이는 부르주아 계층의 견해와는 명백히 상충되었는데, 당시 발흥한 낭만주의와 민족주의가 이러한 사상의 배경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