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자유학교의 전개 양상, 교육 단계와 유형별 특징
20세기 초엽의 상황과 독일 개혁교육학의 영향
20세기 초엽의 덴마크에서는 그룬트비-콜 식의 접근과는 또 다른 양상이 전개된다. 그것은 바로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 형성된 개혁교육학(Reformpädagogik)의 영향으로 가장 중요한 전달자는 페터 페터젠(Peter Petersen, 1884~1952)이다. 예나대학 교수였던 페터는 예나 플랜(Jena Plan)을 발전시킨 인물로 덴마크의 수많은 강연에서 자신의 사상을 전파했다. 핵심 부분에서 그룬트비-콜의 방식과 페터젠의 방식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삭막한 책 지식을 거부함, 체벌 금지, 벼락치기 공부와 암기 거부, 엄격히 구획한 교과 구분에 따른 도식적 시간 분배 거부, 아동의 활동 욕구 촉진,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수업 촉진, ‘살아 있는 말(이야기, 대화, 노래)’의 촉진, 학부모 역할 구현, 교직을 소명으로 받아들이기, 인간적 규모의 학교, 가족적이며 친근한 관계 방식 등.
하지만 개혁교육학과 그룬트비-콜 식의 접근법 사이에는 명백한 차이도 존재했다. 이를테면 개혁교육학의 경우 도시를 기반으로 이어난 지적 운동으로 국제적 성격을 띠고, 사해동포주의적이며, 급진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국가와 학부모에 맞서 어린이 스스로의 자기규정을 촉진하고자 했고, 이런 방향에서 공교육제도를 개혁하고자 했으며, 교육학을 자기 목적적인 것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이에 비해 그룬트비-콜 식의 자유학교운동은 농촌 지역을 기반으로 비교적 안정된 농촌 문화에 뿌리를 박고 전개되었으며, 덴마크 역사와 신화를 중시했고, 가부장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국가에 대한 학부모의 자기규정 행위로서 국가 공교육제도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으며 교육학을 종교적, 민족적 깨우침과 갱생이라는 목적의 수단으로 이해했다.
그런 방향에서 개혁교육학적 학교를 설립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실제로 코펜하겐에 공립학교가 하나 세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1920년대와 1930년대에 걸쳐 덴마크에서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무엇보다 자유학교처럼 국가로부터 법적, 재정적 지원을 받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1933년부터 1937년에 걸쳐 학부모의 참여에 의해 확산된 세속화 과정 속에서 사회민주주의 이념에 따른 학교개혁이 시도되었던 점을 들 수 있는데, 이런 와중에서 개혁교육학적 사상을 순수한 형태로 구현하려는 힘은 상실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1933년 독일에서 등장한 국가사회주의 때문에 독일로부터 오던 영감의 원천도 단절될 수밖에 없었다.
농촌 지역에서 확산되던 자유학교와는 대조적으로 도시에서는 좀 보수적인 경향의 실업학교(realskole)가 확산되었다. 규모가 작은 학교들은 1958년 학교법에 따라 좀 더 규모가 큰 학교로 통폐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