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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자유교육<27>

리첫 2020. 10. 27. 11:18

 

 

간추려 본 덴마크의 학부모들

 

덴마크의 자유학교는 학교나 교육학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19세기 중엽 이래 덴마크 사회를 근본적으로 뒤바꾼 시민사회 풀뿌리 운동과 함께 시작되었다. 절대왕정시대의 왕은 일종의 국부로서 떠받들어졌고, 국민은 미숙하고 우매한 존재로 여겨졌다. 정치, 경제, 교육, 교회 등 모든 영역에서 그러했다. 그러나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덴마크 민중들은 스스로의 문제를 자기 책임으로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먼저 종교적 각성 운동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교회와 목사만이 구원에 이르는 길을 제시할 수 있다는 오래된 믿음에서 벗어나 신과 직접적 관계를 맺으려 했다. 종교 문제를 이런 식으로 통찰하자 다른 문제들도 쉽게 해결되었다. 교육과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문제도 그들 스스로 해결해 보려 했다. 또 계속해서 경제, 정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 했다. 아무리 복잡하게 보이는 일이라 할지라도 신과 관계 맺는 문제와 아이들을 좋은 삶으로 이끄는 물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 사람들은 목회자가 무능력하면 스스로 자유교회(free congregations)를 세워 목사를 초빙했다. 농사를 지어서 돈을 벌고 싶으면 낙농협동조합이나 도축협동조합을 세웠다. 상인들이 폭리를 취한다고 느끼면, 곧바로 소비자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눌 장소가 마땅치 않으면 커다란 집회 장소를 만들었다. 덴마크 사람들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관리들이 일을 시작할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다. 정부나 관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곧바로 주도권을 행사했다. 비록 때마다 재정적인 어려움이 따르고, 해결 방법도 잘 알지 못했지만 그렇게 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학교도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 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학교들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에게 무엇이 좋은지를 판단했다. 지역의 공립학교가 좋으면 전폭적으로 신뢰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스스로 학교를 세웠다. 가장 좋은 것으로는 집에서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는 것이라 생각했다. 만일 한 가정의 힘으로 할 수 없을 경우에는 여러 가정이 함께 모여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쳤다. 그리고 스스로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졌다. 여기서 자유학교가 탄생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 후견인이나 전문가를 초빙하지 않았고, 다만 부모의 자리를 대신해 줄 교사만을 필요로 했다.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는 원칙적으로 부모가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는 것을 최선으로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는 몰랐기 때문에 공동육아법을 도입했다. 그리고 스스로 책임을 떠안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자유학교가 시작되었다. , 자유학교에는 교육행정가나 전문가는 없었지만, 아이들에게 부모와 같은 관계를 맺고 교육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을 갖춘 교사는 반드시 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