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의 권리
민주주의에 대한 해석은 이론이나 실천에서 세계 곳곳에서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해석의 범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넓다. 어떤 곳에서는 자신과 입장이 다른 이들을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부정하며 반대자들을 처단할 수도 있다. 서유럽의 정치적 전통에서 말하는 민주주의란 자유로운 투표를 통한 의사결정 행위로 설명할 수 있으며, 따라서 다수의 결정을 타당한 것으로 본다.
이를 출발점으로 삼는다면, 민주주의 대해 두 가지 입장이 부딪치는 상황이 나타난다. 하나는 다수의 민주주의로서, 다수의 의견을 언제나 지지하고 따라서 늘 다수에 밀리는 소수자들이 이다음에는 다수가 되기를 바라는 상황을 말한다. 이아 또 다른 견해는 소수자들의 민주주의다. 현실적으로 볼 때 다수가 결정력을 가지기는 하나, 다수가 반드시 진리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진리는 원리상 소수에게도 똑같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수는 보호를 받아야 하고, 무조건적으로 다수의 결정을 따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유럽의 여러 나라는 위의 두 가지 중 하나를 취하고 있다. 덴마크에서는 민주주의 도입 초기부터(최초의 민주주이 헌법이 제정된 1849년을 기점으로) 소수자의 민주주의 헌법에 우선으로 반영했다. 특히 그룬트비와 그의 친구들은 이 헌법의 도입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다. 이들은 소수자들이 다수자에 반하여 생각하고 행동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할 뿐 아니라, 다수자(국가)로 하여금 소수자의 견해가 실현될 수 있도록 재정지원을 것을 요청했다.
여기에 덴마크에서 발전한 소수자 민주주의의 핵심이 있다. 소수자를 보호하는 것은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소수자의 권리가 확고히 뿌리내린 학교법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다. 소수는 다수를 위해 모자를 벗어 들고 서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정치경제적 권리를 위해 싸울 수 있으며 나아가 다수에 대항해 싸울 수도 있다.
이런 방향에서 진보를 이룩한 나라는 별로 없다. 덴마크에서 소수자는 자기들 의사에 따라 학교를 세우고 이 학교가 국가적 지원을 받도록 함으로써, 다수자의 지나친 횡포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도록 보호를 받고 또 그럴 수 있도록 허용되어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런 견해는 결국 소수자가 세운 학교에 많은 자유를 보장하게 되었다.
실제로 덴마크의 민주주의 헌법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덴마크 영토 안에서 살게 된 독일인 소수민들에게도 적용되고 있다. 1920년 슐레스비 주에서는 주민 투표가 실시되었고 이에 따라 덴마크와 독일 간에는 새로운 국경선이 만들어졌다. 이 새로운 경계선으로 인해 덴마크 영토 안에 많은 수의 독일인이 편입되었다. 이들은 소수자 민주주의의 이념에 따른 특별법에 의해 자신들만의 학교를 세울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국공립학교와 마찬가지로 국가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이는 사실상 덴마크 사립학교가 자유학교법에 따르는 것보다 더 많은 지원과 혜택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 법의 규정은 2차 세계대전 후 종료되었고, 오늘날 독일 소수민 학교들은 다른 사립학교와 마찬가지로 동일 헌법의 적용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