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르치는 교수<29>
'교수 주도형'을 '학생 주도형'으로 바꿔라
대학에서는 '교수목표'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수업계획서 양식에도 이 용어가 들어 있다. '교수목표'란 교수가 그 수업을 통해서 이루려는 목표를 말한다. 이 말은 가르치는 사람 입장의 용어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느 정도까지 가르치겠다는 '교수목표'는, 학생이 이 수업을 통해 무엇을 어느 정도까지 학습할 수 있느냐는 '학습목표'로 그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 교수목표의 궁극적인 목표는 '학습목표'이기 때문이다.
교수법 혁신의 궁극적 목적은 학습효과를 키우는 데 있다. ‘교수가 무엇을 가르치느냐?’가 아니라 ‘학생이 무엇을 배우느냐?’가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교수의 기대목표가 너무 높으면, 학습의 성취감은 떨어지고 시간이 부족해질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학습효과를 키우는 방법 중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자기주도학습이다. 자기주도학습이란 학생 스스로 자신의 학습에서 주도권을 갖는 것이다. 자신의 목표를 스스로 정하고 계획하며 공부에 필요한 적절한 전략과 방법을 터득하고, 실행한 후 스스로 결과를 평가하고 점검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스스로 공부하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교육 환경은 크게 다르다. 미국의 학생들은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학생 스스로 주도하는 학습법을 충분히 익힌다. 그래서 미국의 대학의 수업은 철저하게 학생 주도형으로 진행되고 있고 크게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생들은 입시 준비로 인해 교사 주도로 공부를 한다. 즉, 우리나라 학생들은 자신의 필요보다는 부모와 교사의 강요에 의해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책상에 앉아 있고, 누군가를 위해 고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많다.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 혹은 공부가 아닌 다른 길을 가겠다는 자기의지가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명확히 구분된다. 학교나 학원의 교사는 학생의 머릿속에 뭔가를 가득 채워주려고 하고, 학생은 교사가 자신의 머릿속에 뭔가를 가득 채워주기를 기다리는 데 익숙해졌다.
20년 동안 공부만 하고 시험만 보며 살아왔지만, 정작 자기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은 제대로 터득하지 못하고 대학에 들어온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수업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이 약한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대학들은 미국식 시스템을 받아들여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고등학교까지의 수업 방식이 미국과 전혀 다른데, 대학부터 갑자기 미국식을 적용하니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어떻게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맞는 교수법을 개발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교수목표'를 '학습목표'로 바꾼다는 것은 단순히 용어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구체적인 학습목표를 세워 자기주도로 학습하도록 패러다임을 바꿔주자는 것이다. 교수는 먼저 학생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수업목표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수업목표 하에서 학생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구체적인 학습목표를 찾아서 세우도록 해야 한다. 교수의 수업 목표만 있고 학생의 구체적인 학습목표가 없다면, 그 수업은 교수를 위한 수업이 되고 만다. 교수의 수어목표가 아무리 좋아도 학생을 충족시켜줄 수는 없다. 따라서 학생 스스로 자신의 학습목표를 세워야 한다. 그것이 자기주도학습의 시작이다.
필자는 매학기 초에 수업계획을 설명한 후, '학습카드'란 걸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이 학습카드에는 '수업목표'가 있고, 그 옆에 '나의 학습목표'라는 칸이 있다. 거기에 '나의 학습목표' 두세 가지를 구체적으로 적도록 한다. 이번 학기에 자기가 이 수업을 통해 이루고자하는 목표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교수는 간단한 면담을 통해 학생이 수업목표에 맞는 학습목표를 세우도록 도와줘야 한다. 학습카드는 수업 시강에 항상 휴대해야 한다. 학생은 매수업마다 자신의 학습목표를 점검해보게 되며, 학기말에는 그 목표를 얼마나 이루었는지 스스로 평가를 해보게 된다.
학습카드에는 출석부도 들어 있다. 학생 스스로 자신의 출결상황을 정확히 기록하게 하고 있다. 교수도 따로 출석을 점검하지만, 학생 스스로 자신의 수업 출결 정도를 평가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 자료는 나중에 교수가 점검한 출석 자료와 비교하여 출석 점검상의 오류를 방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출석부 아래에는 과제 제출 여부를 스스로 작성하는 칸도 있다. 과제 이름, 제출 마감일, 제출일, 피드백 결과 등을 계속 작성해 나가도록 하고 있다. 자신의 과제 제출 여부를 스스로 챙기게 함으로써 수업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고, 자기주도학습 방법을 체득하게 할 수 있다. 이렇듯 학습카드를 스스로 챙기게 함으로써 수업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고, 자기주도학습 방법을 체득하게 할 수 있다.
이렇듯 학습카드를 스스로 작성함으로서 학생 자신의 수업을 직접 관리하는 습관을 갖게 할 수가 있다. 또 학습카드를 작성하다 보면 학기말에 자신의 학업 성취도나 성적을 어느 정도 평가해볼 수 있다. 교수는 한 학기에 적어도 서너 차례 학생들의 학습카드를 점검해보는 것이 좋다. 필자는 학습카드 관리에 평가의 5%를 배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