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는 왜 체스에서 이기지 못했을까?(1)
안타깝게도 탁월한 성과자들이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안다는 사실은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자기 투자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는 투자가가 당연히 평범한 투자가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보기만큼 분명치 않다. 사실 많은 학자들이 두 부류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이 아직 우리의 생각 어딘가에 약간은 남아 있다.
그렇게 믿는 학자들은 위대한 성과가 대단한 지식의 결과물이 아니라 탁월한 추론 방식과 추론 능력에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즉 어떤 문제를 분석하는 최선의 방식을 알고 그 문제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봤다면, 관련 분야에 대해서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 문제에 관한 분석과 추리를 컴퓨터가 대신해 줄 수 있다면 지식은 더더욱 필요 없다. 이런 생각은 특히 컴퓨터가 처음 등장한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크게 유행했다. 당시 과학자들은 지적인 기계 혹은 그것을 실현할 수 있을 만한 방법을 찾고 있었다. 1957년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과 앨런 뉴웰(Allen Newwell)이라는 두 과학자가 일반 문제 해결자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이 프로그램에는 특정 분야에 관련한 지식은 전혀 없고 이론상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논리 법칙과 문제 해결 전략만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현실 세계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과학적 사고의 방향을 제시했다. 즉 상당히 효율적인 지적 도구만 있다면 특정 지식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학자들은 지식을 갖추지 못한 프로그램이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달았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이 해답을 찾기 위해 인공 전문 기술(artificial expertise) 개발의 가장 성공적 사례라 할 수 있는 컴퓨터 체스 프로그램을 생각해 보자. 체스 프로그램이야말로 ‘지식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최적의 사례다. 이 프로그램은 게임 규칙과 게임 대상만 입력하면 환상적인 속도로 경기를 펼쳤다. 인간이 이 프로그램을 이기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계속 컴퓨터를 이긴다는 사실이었다. 체스 연구자들은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현재 말의 위치에서 실행 가능한 여러 가지 행마법을 생각해 내는 데 15초 정도는 걸린다고 추정했다. 이에 반해 초기 체스프로그램은 1초에 수천 가지 수를 처리했다. 그런데도 인간이 어떻게 컴퓨터를 연거푸 이길 수 있었을까? 1996년 당시 세계 챔피언이었던 가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는 IBM이 개발한 컴퓨터 딥블루(Deep Blue)와 최초로 경기를 펼쳤다. 딥블루는 말의 적절한 이동 위치를 찾아내기 위해 초당 1억 번의 속도로 연산을 수행했다. 그런데도 승리는 카스파로프에게 돌아갔다. 1년 후 딥블루가 업그레이드되어 초당 2억 번의 연산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야 딥블루는 여섯 번의 대결 끝에 2대 1(세 번은 무승부)로 인간에게 승리했다.
압도적인 연산 능력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컴퓨터 프로그램이 체스 선수와의 대결에서 비기거나 지는 일이 일어났을까? 이에 대한 답은 컴퓨터가 아니라 인간이 지닌 무언가에서 찾아야 한다. 바로 체스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이다. 즉 인간은 특정 위치에서 과거 체스 고수들이 선택했던 전략들과 어떤 수를 선택하면 일반적으로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결국 학자들도 여러 분야에 걸친 연구 끝에 이 비밀을 알게 되었다. 전문 컴퓨터 시스템을 개발하던 세 명의 과학자 브루스 뷰캐넌(Bruce Buchanan), 랜들 데이비스(Randall Davis), 에드워드 파이겐바움(Edward G. Feigenbaum)은 이렇게 적었다. “전문가 시스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는 지식이다. 일반적인 추론 방식은 풍부하게 갖추었지만 구체적 지식이 없는(일부는 수리 논리적 기능도 갖춘) 프로그램은 거의 어떤 임무도 능숙하게 처리할 수 없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아는 것이 힘이다.”
한편에서는 역시 체스를 연구 중이던 다른 학자들이 다른 경로로 컴퓨터 과학자들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아드리안 데 그루트(Adrian de Groot)라는 네덜란드 심리학자가 세계적 수준의 체스선수들과 평범한 수준의 선수들을 비교한 결과, 세계적 수준의 선수들이 경기 중에 고려하는 수가 오히려 평범한 선수들보다 적었고, 더 깊이 숙고(몇 수 앞을 내다보기)하지도 않았으며, 경험을 바탕으로 이동 경로를 선택하는 것은 양쪽이 같았다. 즉 최상위 선수라고 해서 판단의 속도가 더 빠른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더 뛰어난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