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는 왜 체스에서 이기지 못했을까?(2)
이 의문과 관련하여 어느 분야에나 적용될 법한 대답 중 하나는 아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학자들은 고수급 체스 선수들의 지식이 보토 수준 선수들의 지식보다 10배에서 100배까지 많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사실은 광범위한 분야의 최고 성과자들이 자기 지식을 더 체계적으로 조직하고 통합하여 보다 유용하면서도 근본적인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숙련된 물리학자와 평범한 물리학도에게 물리학에 관한 24개의 문제를 제시하고 유형에 따라 분류하게 해다. 이에 물리학도들은 ‘마찰에 관한 문제’ 또는 ‘경사면에 관한 문제’ 등과 같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에 따라 분류했다. 반면 숙련된 물리학자들은 ‘뉴턴의 제2 법칙’처럼 문제 해결에 필요한 기본 원리에 따라 분류했다.
다른 많은 분야에서 행해진 연구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전문 심리 상담가들은 진술을 치료법 선택과 가장 연관성이 높은 요소에 따라 분류한 반면, 초보 상담가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사소한 단서에 따라 분류했다. 전문 낚시꾼들은 습성이나 상업적 가치 등 실질적인 연관성에 따라 어류를 분류한 반면, 초보 낚시꾼들은 생김새에 따라 분류했다. 일반적으로 최고 성과자들의 지식은 더 수준 높은 원리에 따라 연결되고 통합된다.
비즈니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기업들이 회사 내 최고 성과자들에게 최대한 많은 지식을 쌓을 기회를 주려고 애쓴다. 이것은 업무 성격이 다른 다양한 일을 맡기거나 세계 각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식으로 가장 중요한 몇 가지 혹은 필요한 모든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최고 기업들이 일반 관리 능력이 아닌, 특정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의 중요성을 분명히 깨닫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구별은 몇 년 전 컴퓨터 과학자들이 일반 문제 해결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했을 때 다루었던 바이기도 하다. 미국의 기업들도 대체로 같은 과정을 거쳤다. 최고 경영대학원들과 많은 선도 기업들은 사실상 수십 년 동안 어느 조직에나 잘 적응할 수 있고 이미 습득한 기술력만으로 조직을 경쟁력 있게 꾸려갈 일반 관리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그런 관리자는 특정 사업 영역에 대해 많은 것을 알 필요가 없었다. 단지 사업상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전략만 알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최고 기업들이 그런 식으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제프리 이멜트는 2001년 GE 회장으로 취임한 직후, 지난 몇 해 동안 경제 성장률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고 주주들에게 큰 이익을 안겨 준 세계 최고 기업들을 연구했다. 그런 기업들의 공통점은 무엇이었을까? 연구를 통해 알게 된 한 가지 중요한 단서는 이들 기업 관리자들이 갖춘 ‘특정 분야의 전문성’, 즉 자기 기업 관련 분야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높이 평가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멜트는 이제 GE에서 성공하기 위한 필수조건으로 ‘특정 분야에 대한 심도 깊은 전문지식’을 꼽는다. 그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 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GE에서 가장 성공적인 부문들은 책임자들이 오래 몸담았던 분야다. 비행기 엔진 제조 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브라이언 로(Brian Rowe)를 생각해 보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항공 산업에 관한 지식에 기대어 그가 내린 네다섯 가지 큰 결정 덕분에 우리는 50년이나 앞선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다. GE 캐피탈도 마찬가지였다. 재보험(특정 보험회사<원보험자>가 인수한 보험계약의 일부 또는 전부를 다른 보험사에 다시 넘기는 것. 재보험은 통상 원보험 계약의 가입금액 규모가 너무 커서 특정보험사가 독자적으로 책임지기 어려울 때 이루어진다.)처럼 우리가 사람들을 화나게 했던 업종에서는 실패했다.”
지식을 쌓고 개발하는 일도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으로 이룰 수 있는 것들 중 하나다. 해당 분야에서 능력을 키우려면 반드시 관련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이 과정을 몇 년 동안 지속하면 그동안 쌓아 온 모든 지식을 체계화하여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연결망이 만들어진다. 덧붙이는 말이지만, 위대한 성과에서 지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천부적 재능 이론에 심각한 문제를 떠안긴다. 어떤 분야에 대해 그토록 방대한 지식을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지식이 위대한 성과를 이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려면 그에 앞서 갖추어야 할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결국 아무리 산더미 같은 지식이라도 기억을 못 하거나 결정적인 순간에 써먹을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