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기억력이 똑같은 것은 아니다(2)
이런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기만의 ‘기억 기술’을 개발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이 기술의 특별한 힘은 기억해야 할 대상을 빠르고 확실한 방법으로 장기 기억 저장소에 기억해야 할 대상을 빠르고 확실한 방법으로 장기 기억 저장소에 저장하는 데 있다. 그들은 단기 기억력이나 전통적인 의미의 장기 기억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처음으로 이런 설명을 내놓은 앤더스 에릭슨과 월터 킨치(Walter Kintsch)는 이것을 장기 작업 기억(long-term working memory)이라고 부르며, 어떤 학자들은 전문 작업 기억(expert working memory)이라고 한다. 이 기술의 핵심 요소를 이해하기 위해 3장에 소개한 SF의 사례를 떠올려 보자. 그는 엄청나게 긴 무작위의 숫자 배열을 기억해 냈다. 그 숫자들을 자신에게 의미 있는 형태의 수와 연관시켰던 것이다. 예를 들어, 4131은 1마일(약 1.6킬로미터) 달리는 데 걸리는 시간의 형태로 4분 13.1초라고 기억했다.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개념에 숫자 데이터를 연결시켜 검색 구조를 만든 것이다.
SF는 단지 숫자들을 기억해 내려고 애쓸 뿐이었다. 그래서 마침 사용이 가능하고 주어진 과제와 전혀 관련이 없는 개념으로부터 검색 구조를 만들어 냈다. 현실에서 장기 기억 작업의 엄청난 힘--최고의 성과자들을 구별 짓는 힘--은 그 활동의 핵심에 연결된 검색 구조에서 나온다. 최고 상과자들이 자기 분야에 대해 그토록 깊고 폭넓은 이해력을 갖출 수 있는 비결은 엄청난 양의 정보들을 서로 연결해 주는 체계적인 구조 덕분이다.
한 실험에서 학자들은 각각 열성 야구팬들과 가볍게 야구를 즐기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두 집단에 야구 경기 한 회의 절반을 흥미진진하게 설명해 놓은 글을 읽게 했다. 얼마쯤 지나 글의 내용을 기억해 보라고 하자 열성팬들은 주자나 득점 같이 결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사건들을 훨씬 더 잘 기억했다. 반면 경기를 가볍게 즐기는 사람들이 기억하는 내용은 각양각색이었지만 대개 관중석 분위기나 날씨처럼 경기 결과와 무관한 세부 사항이 주를 이루었다. 열성팬들의 경우 이미 야구에 대해 갖고 있던 수준 높은 지식이 방금 읽은 정보를 해석하는 기본 틀이 되었던 것이다.
최고 성과자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자기 분야에 대한 이해의 폭이 훨씬 넓다. 따라서 관련 정보를 더 효율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뛰어난 검색 구조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최고 수준의 진찰 전문의들은 보통 수준의 전문의들보다 환자 개개인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기억한다. 습득한 정보를 더 높은 차원의 추론에 사용하기 때문이다. 최고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은 초보자들보다 전체 프로그램의 고조를 훨씬 더 잘 기억한다. 그렇게 구조를 만든 의도와 방법을 더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전자공학 초보자들은 전자 회로를 보고 구성요소를 생각하는 반면, 전문가들은 주요 기능 집합을 생각하기에 그것을 더 잘 기억한다. 이 외에도 철저한 연구를 통해 검증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앞에서 보았듯 체스 선수들의 놀라운 기억력은 단지 대상을 인지하는 능력만을 토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체스 말들의 집합을 전략적 중요성, 공격과 방어에서의 역할, 상대편 속이기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이해한다. 문자 대 단어 분석 사례에서 초보자는 문자를 보고, 전문가는 단어를 보는 것만이 차이의 전부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단어의 의미까지 생각한다.
분명 위대한 성과자들의 뛰어난 기억력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해당 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고, 따라서 수년 동안 철저한 연구를 거친 다음에야 얻을 수 있다. 또한 새로운 정보를 더 높은 수준의 개념들에 끊임없이 연결시켜야 하는데, 이 또한 그리 만만한 과정이 아니다. 전문가들의 뛰어난 기억력이 자기 전문 분야를 벗어나지 않는 이유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기억력은 전문성의 핵심 요소이며, 둘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기억력이 일반 능력인 것과는 별개로, 그것은 수년 동안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을 꾸준히 해서 얻어지는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