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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설런스(Excellence)<13>--모든 것을 좌우하는 정신 과제

리첫 2022. 8. 5. 17:54

 

모든 것을 좌우하는 정신 과제

 

우버 택시가 기존택시에 타격을 주고 에어비앤비가 호텔을 물 먹인 이후로, VUCA 세계의 변화 강도가 달라지고 있음이 명확해졌다. 변화는 이제 단계별로 진행되지 않는다. 승자독식원칙이 지배한다. 코로나 위기가 닥치기 한참 저부터 비즈니스 모델과 기술이 전복되었다. 일하고, 생활하고, 소통하는 방식이 분야에 따라 미묘하게 혹은 거세게 뒤집혔다. 성장을 거듭하는 이른바 한 기업이 단지 대담한 솔루션 하나로 기존 기업에 도전한 건 아니다. 그들은 기존 기업을 고루해 보이게 만들었다. 설령 당신이 이제 겨우 변화의 표면을 긁기 시작한 회사에서 일하더라도, 손가락 하나로 끝내는 결제 시스템이나 구글의 자율주행차 같은 놀라운 혁신이 우연히 생겨난 게 아님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혁신은 남다르게 생각하고 공상 과학에 머물렀던 상상을 과감하게 시도한 사람들의 성과이다.

 

점점 많은 기업이 깨닫고 있듯이, 탁월한 관리자와 직원은 기술이나 마케팅 노하우 이외에 무엇보다 새로운 관점과 비범한 접근법에 열려 있다. 그러나 노년층과 중년층은 물론이고 Z세대까지도 이런 개방성이 확연히 부족하다. 하룻밤 사이에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고치기란 모두에게 힘든 일이다.

 

모든 학교가 등교를 중단했다. 하지만 공원과 카페는 더욱 붐볐다. 2미터 거리두기? 신경 쓰는 사람은 소수였다. 모두가 봄을 누리고 싶어 했다. 코로나 초기 상황은 사람을 바꾸기가 얼마나 힘든지 보여 주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개방성이 부족하단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전체의 95퍼센트가 자기 자신을 평균 이상으로 개방적이라 여긴다는 사실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한다. 사실 개방성 부족은 인간의 본성과 관련이 있다. 인간은 연속성을 지향하고, 인간의 뇌 또한 익숙한 것을 완하거나 확장하는 정보를 가장 효율적으로 작업한다.

 

그러므로 코로나 시기에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는 일이 왜 미친 짓인지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이 결혼식을 1년 전부터 계획했다면 뇌에서는 경제원리가 작동하게 된다. 그러면 계획 변경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되고, 성대한 결혼식은 꼭 필요한 일처럼 보인다. 뇌의 경제원리는 일반적으로 아주 유익하다. 복잡한 도시에서 가이드북처럼 길을 안내해 준다. 덕분에 우리는 길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가이드북에 의존하게 되면, 더 이상 새로운 길을 개척하지 않게 된다.

 

익숙한 틀이 깨지면 매우 창조적인 사람조차 길을 잃는다. 2020년 연극 감독인 크리스티안 슈튀클은 자신이 감독한 그리스도 수난극이 역사상 처음으로 2년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게 되자 이렇게 생각했다. “미치겠는 건, 내가 이상황을 받아들였으면서 동시에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멍하니 앉아 속으로 물었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지?”

 

기본 체계가 무너지면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무의식적 차단기가 정신적 개방을 방해하고 새로운 제안을 거부하게 된다. 때론 새로운 맛이 요거트를 사는 일에도 어색함을 느끼고, 대부분 약 33세 이후로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지 않는다. 같은 드라마를 시즌 3까지 보거나 추리소설 시리즈를 4권까지 읽으면 이내 새 시리즈에는 흥미를 잃는다. 다른 멋진 드라마와 재밌는 소설이 분명 있다 해도 위안이 되지 못한다. 페스티벌이나 공연이 취소되면 수많은 사람이 우울해한다. 왜 우리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익숙한 것에 집착할까? 왜 우리는 새로운 삶이 주는 충만함 속으로 기쁘게 뛰어들지 않을까? 훌륭한 연구들이 그 이유를 밝혀냈다.

 

익숙한 것은 동화되기 쉽다. 새로운 것을 수용하려면 사고 구조를 재구성해야 한다.

 

인지발달심리학의 선구자 장 피아제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는 동화할 수 있는 정보를 거부감 없이 더 쉽게, 더 많이 수용한다. 그런 식으로 우리의 소중한 우주를 단계적으로 보완하고 확장한다. 낯선 정보에 적응하기는 확실히 더 어렵다. 낯설어 보이는 가치관과 행동방식은 우리의 사고 구조에 거의 추가되지 않는다. 잘못된 자리에 맞추려는 퍼즐 조각처럼, 그것들은 좀처럼 우리의 머리로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과 씨름해야 한다. 거부감을 극복하는 것은 물론, 기존의 사고 구조는 현 상황에 적합하지 않아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이 자아상을 흔들고 괴롭힌다. “인간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현 위치를 고집한다. 어떤 공간에서 자기 자리를 정하면, 그 자리가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기분이 든다.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의 칼럼니스트 프리드만 카리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점유권을 방어하기 위해 새로운 사고를 거부한다.

 

우리는 이런 편협한 사고방식으로 구석에 붙어 있는 작은 행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넓고 큰 세상에서 편협한 정신은 진보를 방해한다. “바다 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때 육지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은 형편없는 탐험가이다.”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이다. 혁신도 마찬가지이다. 새로움에 적응하려 애쓰는 사람만이 새로운 땅으로 갈 수 있다. 우리의 인지 구조는 동화가 아니라 적응할 때 넓어지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이 옛것과 마찰할 때 지평이 넓어지고, 한 단계 진보하며 창조성이 생긴다. 정말 희망차게 들리지 않는가? 다만, 앞서 말했듯이 우리의 뇌는 즉시 뭔가를 시작할 있는 익숙한 정보를 선호한다. 기존 견해에 도전하는 정보는 낯설고 심지어는 틀리게 보인다.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자동차에서도 그러한 형태가 드러난다.

 

테슬라는 전기차의 기준이다. 그럼에도 테슬라 자동차 역시 외관은 마차의 연장선이다. 장치와 부품 때문이 아니다. 전기차에는 주유통이 없고, 엔진은 대략 소시지 통조림 크기만 하며, 배터리 무게 역시 500그램이 안 된다. 그러므로 과거에는 없던 완전히 새로운 설계가 가능하다. 실제로 흥미진진한 설계들이 개발자와 디자이너의 노트북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왜 테슬라는 폭스바겐이나 BMW와 마찬가지로 전기차의 외관을 옛날 모습 그대로 만들었을까? 자동차 디자이너 안드레아 자가토가 그 이유를 밝혔다. “나는 기존의 익숙한 외관으로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소비자를 혁신으로 안내해야 하는데, 만일 혁신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면 소비자는 새로움과 다름을 거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