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들이 경험하는 ‘침묵의 10년’(2)
비틀스도 음악계에 일대 혁신을 일으키기 전 길고 고된 준비 기간을 보낸 데는 예외가 아니었다. 와이스버그 교수는 비틀스를 연구하면서 그들이 유명해지기 전까지 합주로 수천 시간을 보낸 사실을 알아냈다. 초기에 비틀스는 자작곡이 거의 없었고, 그나마 있는 곡들도 평범한 수준이었다. 그런 곡들은 비틀스가 성공하고 한참 뒤에 사람들이 들쑤셔서 찾아내지 않았더라면 결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비틀스 최초의 히트곡은 그들이 5년 반 동안 함께 활동했을 무렵 존 레넌(John Lennon)과 폴 메카트니(Paul Mccartney)가 공동 작업하여 1963년에 발표한 <플리즈 플리즈 미(Please Please Me)>다. 하지만 혹자는 이 곡이 인기를 끌기는 했으나 그 정도로는 대중음악에서 결코 중요한 혁신을 일으켰다고 할 수 없으며, 이 곡의 어떤 점이 창의적이냐고 따져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논쟁은 비틀스가 <러버 소울, 리볼버(Rubber Soul, Revolver)>와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를 발표한 활동 중기 이후로 미뤄야 한다. 자작곡으로만 이루어진 이 두 장의 음반은 대중음악계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서전트 페퍼스> 발표 당시 존 레넌과 폴 메카트니는 10년 동안 지치지 않고 열심히 함께 작업해 온 사이였다.
그렇다면 그토록 긴 준비 기간 동안 정확히 무슨 일이 진행되었을까? 그것은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과 관련하여 언급했던 해당 분야에 관한 지식 습득과 아주 흡사하다. 이 시기는 대개 교사의 지도 아래 해당 분야를 상당히 깊이 있게 파고드는 과정이며, 교사의 지도가 없더라도 혁신가 스스로 개인적 한계를 뛰어넘어 그 분야의 한계에 도전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것을 익히려고 애쓰는 과정이다. 가드너는 일곱 명의 위대한 혁신가들의 이야기에서 많은 공통점을 찾았고 그것들을 조합하여 ‘모범 창조자(Exemplary Creator)’라고 이름 붙인 복합적 인물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청소년이나 이제 막 성인이 되는 시점에 “E.C.는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을 쌓느라 이미 10년을 투자했고 거의 최고가 되기 직전의 수준에 이르렀다. 가족이나 지역 전문가들에게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었으며, 같은 길을 걷는 뛰어난 인재들 사이에서 자신을 검증해 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그 결과 “E.C.는 해당 분야의 활동 중심지로 향하는 모험을 감행한다.”
여기서 우리는 해당 분야를 완벽히 이해하기 위해 들이는 막대한 시간과 노력, 더 수준 높은 지도자 찾기, 안전 영역을 통과하기 위한 자발적인 분발과 노력 등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의 몇 가지 요소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시간이 이어지면서 “E.C.는 마침내 자기가 스스로 개척해 나갈 특별한 관심 분야를 찾거나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여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다양한 분야의 위대한 성과자들에게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E.C.는 거의 매 순간 자기 일에 매진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엄청난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윌리엄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안에 있는 E.C.는 인생의 완벽함을 제쳐놓고 작품의 완벽함을 선택했다.” 우리는 이미 앞에서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을 통해 위대한 성과를 이루는 경우를 살펴볼 때마다 사저에 이런 극단적인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